지난 호에 이어 예수님의 영성을 살펴본다. 이미 말한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자들은 ‘예수 안에서 행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행하는 삶이 영성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기독교 영성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 예수님도 영성을 가지셨다. 예수님의 영성은 1)비우는 영성, 2)채우는 영성, 3) 나누는 영성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이번에는 두 번째, 예수님의 ‘채우는 영성’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예수님은 철저하게 자신을 비우신 분이시다. 왜 자신을 비우셨을까? 타 종교에서 말하는 것처럼 도를 닦으시려고 그런 것이 절대 아니다. 그냥 무조건 자신을 비우신 것은 더 더욱 아니다. 자신을 비워야 할 분명한 이유를 갖고 계셨다. 비워진 자리에 분명하게 채워야 할 중요한 것이 있으셨다.
예수님은 비워진 자리에 무엇을 채우셨는가?
예수님은 비워진 자리에 하늘의 것을 채우셨다. 곧 하나님의 영광(하나님의 생각,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판단)과 하늘의 은혜와 진리로 가득 채우셨다(요1:14). 이 땅의 것이나, 세상의 것이나, 사람의 것이 아닌, 신령하고, 성결하고, 깨끗하고, 능력이 있는, 하늘의 것들로 가득 가득 채우셨다.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 곳에는 하늘 문이 열려있고(요1:51), 성령이 강물처럼 흘러나고(요7:38-39), 풍성한 삶이 실제로 나타나고(요10:10), 진리로 자유를 얻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는 과연 무엇을 채우고 있는가?
스스로 솔직하게 묻고 정확하게 진단해야 한다. 신앙이 아닌 신념과 위선과 자기도취와 자기만족에서 벗어나서 나는 지금 무엇을 채우고 있는지 정확하게 진단해야 한다. 또한 왜 그러한 것들을 채우고 있는지 스스로 결론 내려야 한다. 그리고 정직하게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 물어야 한다. 성령은 우리의 마음을 조명하고 생각을 판단하신다. 가장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시는 아버지께서 성령을 통하여 분명 알려 주신다(요14:26-27).
잘못된 ‘채우는 영성’
‘채우는 영성’이 잘못 될 때가 있다. 자신의 것, 세상의 것, 육적인 것을 비우지 않고 무조건 채우려고 할 때 여지없이 잘못 된다. 이 부분이 바로 많은 기독교인들이 오해하는 부분 인 것 같다.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하나님의 비전을 이루고 싶은 열망이 아주 강한데도 왜 안 될까? 비우지 않고 무조건 하늘의 것을 채우려고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한다면,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하려면, 자신의 것을 비우고 하늘의 것을 채워야 한다.
비우지 않고 하늘의 것을 채운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아야 한다. 비우지도 않고 채워졌다는 것은 착각이다. 아니, 채워졌다 해도 잠깐이다. 오래 못 간다.
비우지 않고 억지로 채울 때, 자신의 고집과 아집과 자신의 의가 나오게 된다. 결국 시간이 지나면서 결국 탈진하고 시험 들고 부담감에 사로잡히게 된다. 왜 성스러운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탈진하고 시험 들고 부담감에 사로잡히는가? 비우지 않고 채우려 하기 때문이다.
무엇으로 채워야 하는가?
비워진 자리에 무엇을 채우느냐는 무척이나 중요한 문제이다. 비워진 자리에 세상의 지식이나 자기의 새로운 영역이나 그 밖에 잘못된 가치로 채운다면 비우지 않은 것만 못하다. 사도바울은 하늘의 신령한 것을 사모하되, 풍성히 채워질 것을 사모하라고 권면한다. 고전 14장 12절은 이렇게 증거한다. “그러면 너희도 신령한 것을 사모하는 자인즉....”
하늘의 신령한 것이란 요1:14절에서 말하듯 하나님의 영광과 은혜와 진리를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매일, 매 순간, 하나님과 친밀해야 한다. 매일매일 말씀을 묵상하되 말씀을 마음에 가득 담고 생각에 기록해야 하는 것(히10:16)이 하나님과 친밀함을 이루는 것이다. 또한 모세처럼, 다윗처럼, 아브라함처럼,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로 만나는 것이 하나님과 친밀함을 이루는 것이다. 특히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롬8:16)로, 가장 친한 친구의 관계(요15:15)로 만나는 친밀함이 있어
야 한다.
왜 하늘의 것으로 채우지 못할까?
1)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지 못하게 하는 불신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믿는 다고 하지만 실제 상황에 닥치면 불신하는 우리의 약함이 하늘의 것을 채우지 못하게 한다.
2)유물론적 사상 때문이다.
보이는 것만을 전부로 여기는 신앙을 말한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는 의지와 여유와 생각의 확장이 있어야 한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위대한 손길을 보라(롬1:20-21).
3)아직도 내 자신이 살아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은연중에 나를 신뢰하고 나의 것으로 할 수 있다는 나의 의가 자리 잡고 있다. 철저한 자기 부인과 철저한 자기 무능력의 경험이 있어야 한다.
결론
우리는 어떻게 하늘의 것을 채울 수 있을까? ‘하나님과의 친밀함’이 가장 좋다. 어떻게 하나님과 친밀할 수 있을까? 이렇게 실천해 보자.
첫째, 마음의 기도로 친밀하기
1)매일 하나님의 광대하심과 크심을 마음으로 올려드리기
2)하루의 모든 삶을 맡겨 드리는 신뢰의 마음 드리기
3)하루의 삶 속에서 은혜와 복과 부흥으로 함께 하실 것을 믿는 마음으로 기도하기
둘째, 말씀으로 친밀하기
1)매일 아침마다, 또는 정한 시간에 말씀을 묵상하기(큐티)
2)묵상한 말씀으로 하나님을 배우고 알고 메시지 발견하기
셋째, 잠자기 전 하루를 돌아보며 대화하기
1)하루가 하나님 품 안에 있었음을 믿고 감사하기
2)잘못한 것 용서함 받고 평화하기
3)잠자리에서도 함께 하실 것을 확신하고 새로운 내일을 소망으로 기대하기
/올네이션스교회 양종관 목사
예수님은 철저하게 자신을 비우신 분이시다. 왜 자신을 비우셨을까? 타 종교에서 말하는 것처럼 도를 닦으시려고 그런 것이 절대 아니다. 그냥 무조건 자신을 비우신 것은 더 더욱 아니다. 자신을 비워야 할 분명한 이유를 갖고 계셨다. 비워진 자리에 분명하게 채워야 할 중요한 것이 있으셨다.
예수님은 비워진 자리에 무엇을 채우셨는가?
예수님은 비워진 자리에 하늘의 것을 채우셨다. 곧 하나님의 영광(하나님의 생각,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판단)과 하늘의 은혜와 진리로 가득 채우셨다(요1:14). 이 땅의 것이나, 세상의 것이나, 사람의 것이 아닌, 신령하고, 성결하고, 깨끗하고, 능력이 있는, 하늘의 것들로 가득 가득 채우셨다.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 곳에는 하늘 문이 열려있고(요1:51), 성령이 강물처럼 흘러나고(요7:38-39), 풍성한 삶이 실제로 나타나고(요10:10), 진리로 자유를 얻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는 과연 무엇을 채우고 있는가?
스스로 솔직하게 묻고 정확하게 진단해야 한다. 신앙이 아닌 신념과 위선과 자기도취와 자기만족에서 벗어나서 나는 지금 무엇을 채우고 있는지 정확하게 진단해야 한다. 또한 왜 그러한 것들을 채우고 있는지 스스로 결론 내려야 한다. 그리고 정직하게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 물어야 한다. 성령은 우리의 마음을 조명하고 생각을 판단하신다. 가장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시는 아버지께서 성령을 통하여 분명 알려 주신다(요14:26-27).
잘못된 ‘채우는 영성’
‘채우는 영성’이 잘못 될 때가 있다. 자신의 것, 세상의 것, 육적인 것을 비우지 않고 무조건 채우려고 할 때 여지없이 잘못 된다. 이 부분이 바로 많은 기독교인들이 오해하는 부분 인 것 같다.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하나님의 비전을 이루고 싶은 열망이 아주 강한데도 왜 안 될까? 비우지 않고 무조건 하늘의 것을 채우려고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한다면,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하려면, 자신의 것을 비우고 하늘의 것을 채워야 한다.
비우지 않고 하늘의 것을 채운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아야 한다. 비우지도 않고 채워졌다는 것은 착각이다. 아니, 채워졌다 해도 잠깐이다. 오래 못 간다.
비우지 않고 억지로 채울 때, 자신의 고집과 아집과 자신의 의가 나오게 된다. 결국 시간이 지나면서 결국 탈진하고 시험 들고 부담감에 사로잡히게 된다. 왜 성스러운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탈진하고 시험 들고 부담감에 사로잡히는가? 비우지 않고 채우려 하기 때문이다.
무엇으로 채워야 하는가?
비워진 자리에 무엇을 채우느냐는 무척이나 중요한 문제이다. 비워진 자리에 세상의 지식이나 자기의 새로운 영역이나 그 밖에 잘못된 가치로 채운다면 비우지 않은 것만 못하다. 사도바울은 하늘의 신령한 것을 사모하되, 풍성히 채워질 것을 사모하라고 권면한다. 고전 14장 12절은 이렇게 증거한다. “그러면 너희도 신령한 것을 사모하는 자인즉....”
하늘의 신령한 것이란 요1:14절에서 말하듯 하나님의 영광과 은혜와 진리를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매일, 매 순간, 하나님과 친밀해야 한다. 매일매일 말씀을 묵상하되 말씀을 마음에 가득 담고 생각에 기록해야 하는 것(히10:16)이 하나님과 친밀함을 이루는 것이다. 또한 모세처럼, 다윗처럼, 아브라함처럼,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로 만나는 것이 하나님과 친밀함을 이루는 것이다. 특히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롬8:16)로, 가장 친한 친구의 관계(요15:15)로 만나는 친밀함이 있어
야 한다.
왜 하늘의 것으로 채우지 못할까?
1)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지 못하게 하는 불신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믿는 다고 하지만 실제 상황에 닥치면 불신하는 우리의 약함이 하늘의 것을 채우지 못하게 한다.
2)유물론적 사상 때문이다.
보이는 것만을 전부로 여기는 신앙을 말한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는 의지와 여유와 생각의 확장이 있어야 한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위대한 손길을 보라(롬1:20-21).
3)아직도 내 자신이 살아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은연중에 나를 신뢰하고 나의 것으로 할 수 있다는 나의 의가 자리 잡고 있다. 철저한 자기 부인과 철저한 자기 무능력의 경험이 있어야 한다.
결론
우리는 어떻게 하늘의 것을 채울 수 있을까? ‘하나님과의 친밀함’이 가장 좋다. 어떻게 하나님과 친밀할 수 있을까? 이렇게 실천해 보자.
첫째, 마음의 기도로 친밀하기
1)매일 하나님의 광대하심과 크심을 마음으로 올려드리기
2)하루의 모든 삶을 맡겨 드리는 신뢰의 마음 드리기
3)하루의 삶 속에서 은혜와 복과 부흥으로 함께 하실 것을 믿는 마음으로 기도하기
둘째, 말씀으로 친밀하기
1)매일 아침마다, 또는 정한 시간에 말씀을 묵상하기(큐티)
2)묵상한 말씀으로 하나님을 배우고 알고 메시지 발견하기
셋째, 잠자기 전 하루를 돌아보며 대화하기
1)하루가 하나님 품 안에 있었음을 믿고 감사하기
2)잘못한 것 용서함 받고 평화하기
3)잠자리에서도 함께 하실 것을 확신하고 새로운 내일을 소망으로 기대하기
/올네이션스교회 양종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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