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3월 5일자 타임지의 사회면에 최근 일어나고 있는 Havard 대학교의 교육관련 칼럼이 실렸습니다. 칼럼은 교육학에서 가장 골치 아픈 문제 가운데 하나가 “교육받은 사람은 무엇을 알아야만 하는가?”라고 제시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지난 1978년 핵심 커리큘럼을 재정립하면서 겪었던 문제를 다시 제안하였습니다. 그것은 대학교의 커리큘럼이 내용보다는 사고방식을 습득하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는 이론이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이러한 이론에 변화가 생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무조건적 배움보다는 인생 여정에서 부딪히게 될 많은 문제들, 이슈들, 질문들과 관련되어 있음을 깨닫게 될 때 학생들은 더욱 열심히 배우려고 한다는 주장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교육학적 목표를 토대로 새롭게 커리큘럼을 세우려는 학교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즉 학생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를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시도에는 Yale대, Rutgers대를 비롯한 여러 대학들이 동참하고 있습니다. 물론 Harvard대학교 역시 빨라도 2009년 9월이나 되어야 이 새로운 커리큘럼이 효력을 발생하긴 하겠지만 이미 전초적인 시도들이 나타나고 있다는 뉴스였습니다.

교육을 위한 교육, 배움을 위한 배움이 아니라 학생들로 하여금 생각하게 하고, 자신의 지식을 적응하는 능력을 배양하자는 말입니다. 일종의 행동을 위한 지식을 강조한 것입니다. 이러한 교육 이론을 주창하는 학자들의 견해를 따르면 이렇습니다.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 대한 기록을 샅샅이 읽는 것으로는 마라톤을 뛸 수 없는 것처럼, 강의를 듣거나 통계학을 습득함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얻는 것은 아니다.” 즉 강의실 내에서의 공부만이 전부가 아니고 강의실 밖에서의 활동 역시 매우 중요한 교육이라는 말입니다. 마치 homeless를 돕는 일에 자원 봉사를 했던 학생들이 가난의 문제, 빈곤의 문제에 더 가깝게 접근할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실제로 연구에 의하면 강의실에서 듣기만 했을 경우 일주일만 지나면 강의내용의 20%만 기억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처럼 대학의 교육 목표가 변하고 있습니다. 실용학문으로의 변신은 앞으로도 더욱 극심할 듯 싶습니다. 그러다보니 이론학문, 인문학문에 위기가 찾아오고 있습니다. 즉, 신앙과 이성의 접촉점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실제로 Harvard 대학생의 71%가 교회와 성당과 같은 종교적 예배에 주기적으로 참여하고 있으면서 종교학을 배우겠다고 수강신청을 했음에도 대학당국이 이를 허락하지 않고 대신 문화와 신념이라는 강의로 대체하도록 요구했다는 소식입니다. 실용적이지 않은 학문은 이제 더 이상 대학에서도 가르치질 않을 모양입니다.

교회도 그런 것 같습니다. 최근 어느 신학자는 미국 내 주도적인 대형교회의 설교를 분석한 결과 사이비심리치료, 혹은 종교심리학 계통의 설교가 대부분이었다고 합니다. 교인들도 더 이상 순수설교보다는 실용설교를 더 좋아한다는 증거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