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잃은 것 같지만,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돼 버렸지만, 가고 싶은 교회도 성가대도 학교도 맘대로 갈 수 없지만…약함 가운데, 상처투성이 몸 가운데, 짧아진 손가락에도 하나님은 생명을 주시고, 소망을 주시며 날마다 하나님을 향해 손 들고 찬양하고 싶은 마음을 주십니다. 내가 기도했던 모습은 아니지만… 하나님은 삶을 누리게 하시며, 큰 일보다는 의미 있는 일을 하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지선이는 축복받은 사람입니다”-밀알복지재단 홍보대사 이지선 자매의 ‘지선아 사랑해’ 中
지난 2000년 불의의 교통사고로 전신 55% 화상을 입은 이지선 자매(밀알복지재단 홍보대사)는 사고 전보다 사고 후가 더 감사하다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덤으로 주신 삶에 감사하고 찬양할 수 있는 입술과 손... 이 모든 것 하나 하나에 감사하며 살아간다고.
“뇌성마비 1급에다 중복 장애를 앓고 있는 혜성(11)이는 2년 전 아이오와 주에서 산호세로 이사 왔다. 혜성이는 몸을 움직일 수 없어서 옆구리에 연결된 튜브로 하루에 2번 음식을 넣어줘야만 한다. 눈도 안 보이고 말을 걸어도 반응이 없다. 다만 귀가 조금 들린다는 것 밖에…”
그러나 혜성이 어머니는 감사한다. 처음엔 힘들어 절망하기도 했다. 그러나 혜성이로 인해 하나님을 더욱 깊이 만나고 그 분의 뜻을 알게 되는 귀한 체험을 했다고 눈물로 고백한다. 불평하고 원망하던 마음이 감사로, 절망의 눈물이 하나님을 만나게 하신 기쁨의 눈물로 변했다.
지난 달 29살의 젊은 나이에 갑자기 심장마비로 숨져 주변을 안타깝게 했던 김영환 형제(새누리선교교회) 역시 밀알선교단을 섬긴 후 예수를 영접했다. 불신자였던 그가 밀알 봉사를 통해 ‘나를 위한 지식이 아닌 나눠주기 위한 지식’임을 깨달았다고 고백하며 기뻐하던 모습이 역력하다고. 새누리선교교회 권영국 목사는 “주님과의 첫사랑에 취해 해처럼 빛나던 형제”라고 회고했다.
또, 북가주밀알선교단을 섬기는 이정우 간사는 밀알선교단에서 봉사하며 섬김의 인생이 얼마나 가치로운가 알게 됐다. 이후 골든게이트침례신학교(GGBTS)에 입학했고 현재는 장애인 사역에 앞장서는 활발한 활동을 펼치며 차세대 밀알 단장으로 주목 받고 있다.
장애인 사역을 통한 ‘감사 회복의 경험’은 천정구 목사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미국 목회 오랜 꿈을 가지고 있었지만 비자가 거절되면서 한국에서 목회를 시작했던 천 목사. 꽤 부흥이 돼 자리를 잡아가던 어느 날 산호세 출신인 한 사람에게 목회 자리가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자녀와 아내를 모두 데리고 어렵게 결정한 미국 행이었지만 도착 한 후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을 목회 자리로 인도하겠다던 사람이 공항에 나타나지 않았던 것. 이후 어려움도 많았지만 우연히 알게 된 밀알선교단을 통해 장애인 사역의 기쁨과 보람을 발견하고 밀알선교단에 헌신하게 된 계기가 됐다고 한다.
밀알에서 봉사하는 사람만 변화를 받는 것은 물론 아니다. 밀알선교단에 다니고 있는 문소영 자매(45)는 결혼 6개월 만에 교통사고로 1년 간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깨어났지만 온 몸은 마비됐고 위는 절개됐다. 남편 또한 떠났고 하반신 마비로 장애 판정을 받았다. 그 후 이민을 와 알게 된 밀알선교단을 통해 복음을 받아들이고 수어 찬양도 섬기며 기쁨을 회복했다.
천 목사는 밀알을 통해 '작은 것에도 큰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것이 장애우 축복'이라고 말한다. 평범한 사람에겐 1m를 걷는 것이 아무것도 아니지만 잘 걷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1m를 걷는다는 것이 박수를 칠 만큼 기쁜 일이 될 수 있듯이 평범한 삶에서 느끼는 하나님 은혜와 감사가 넘치는 곳, 그 곳이 바로 밀알선교단이다.
천 목사는 “밀알 사역을 통해 하나님께 돌아오고 감사를 회복한 간증이 많다. 밀알은 이 시대 감사회복 운동을 일으키고 있다”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아직 교회 내 장애우 사역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 안타까움을 전하면서 천 목사는 “전체 통계로 보면 약 10%의 장애인이 사회에 존재하지만 교회에는 2%정도 장애 우만이 있다”며 교회에서 장애우 사역에 대한 관심을 촉구했다.
1979년 한국에서 시작된 밀알선교단은 전 세계 6억 명이 넘는 장애인의 어려움과 고통을 끌어안고 예수 그리스도 참사랑을 전파하고자 지난 1987년 미국, 유럽, 캐나다 등지로 이어졌다. 밀알선교단은 이재서 총장에 의해 세워져 현재 전 세계 63개 지단를 가지고 있다.
지난 2000년 불의의 교통사고로 전신 55% 화상을 입은 이지선 자매(밀알복지재단 홍보대사)는 사고 전보다 사고 후가 더 감사하다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덤으로 주신 삶에 감사하고 찬양할 수 있는 입술과 손... 이 모든 것 하나 하나에 감사하며 살아간다고.
“뇌성마비 1급에다 중복 장애를 앓고 있는 혜성(11)이는 2년 전 아이오와 주에서 산호세로 이사 왔다. 혜성이는 몸을 움직일 수 없어서 옆구리에 연결된 튜브로 하루에 2번 음식을 넣어줘야만 한다. 눈도 안 보이고 말을 걸어도 반응이 없다. 다만 귀가 조금 들린다는 것 밖에…”
그러나 혜성이 어머니는 감사한다. 처음엔 힘들어 절망하기도 했다. 그러나 혜성이로 인해 하나님을 더욱 깊이 만나고 그 분의 뜻을 알게 되는 귀한 체험을 했다고 눈물로 고백한다. 불평하고 원망하던 마음이 감사로, 절망의 눈물이 하나님을 만나게 하신 기쁨의 눈물로 변했다.
지난 달 29살의 젊은 나이에 갑자기 심장마비로 숨져 주변을 안타깝게 했던 김영환 형제(새누리선교교회) 역시 밀알선교단을 섬긴 후 예수를 영접했다. 불신자였던 그가 밀알 봉사를 통해 ‘나를 위한 지식이 아닌 나눠주기 위한 지식’임을 깨달았다고 고백하며 기뻐하던 모습이 역력하다고. 새누리선교교회 권영국 목사는 “주님과의 첫사랑에 취해 해처럼 빛나던 형제”라고 회고했다.
또, 북가주밀알선교단을 섬기는 이정우 간사는 밀알선교단에서 봉사하며 섬김의 인생이 얼마나 가치로운가 알게 됐다. 이후 골든게이트침례신학교(GGBTS)에 입학했고 현재는 장애인 사역에 앞장서는 활발한 활동을 펼치며 차세대 밀알 단장으로 주목 받고 있다.
장애인 사역을 통한 ‘감사 회복의 경험’은 천정구 목사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미국 목회 오랜 꿈을 가지고 있었지만 비자가 거절되면서 한국에서 목회를 시작했던 천 목사. 꽤 부흥이 돼 자리를 잡아가던 어느 날 산호세 출신인 한 사람에게 목회 자리가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자녀와 아내를 모두 데리고 어렵게 결정한 미국 행이었지만 도착 한 후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을 목회 자리로 인도하겠다던 사람이 공항에 나타나지 않았던 것. 이후 어려움도 많았지만 우연히 알게 된 밀알선교단을 통해 장애인 사역의 기쁨과 보람을 발견하고 밀알선교단에 헌신하게 된 계기가 됐다고 한다.
밀알에서 봉사하는 사람만 변화를 받는 것은 물론 아니다. 밀알선교단에 다니고 있는 문소영 자매(45)는 결혼 6개월 만에 교통사고로 1년 간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깨어났지만 온 몸은 마비됐고 위는 절개됐다. 남편 또한 떠났고 하반신 마비로 장애 판정을 받았다. 그 후 이민을 와 알게 된 밀알선교단을 통해 복음을 받아들이고 수어 찬양도 섬기며 기쁨을 회복했다.
천 목사는 밀알을 통해 '작은 것에도 큰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것이 장애우 축복'이라고 말한다. 평범한 사람에겐 1m를 걷는 것이 아무것도 아니지만 잘 걷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1m를 걷는다는 것이 박수를 칠 만큼 기쁜 일이 될 수 있듯이 평범한 삶에서 느끼는 하나님 은혜와 감사가 넘치는 곳, 그 곳이 바로 밀알선교단이다.
천 목사는 “밀알 사역을 통해 하나님께 돌아오고 감사를 회복한 간증이 많다. 밀알은 이 시대 감사회복 운동을 일으키고 있다”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아직 교회 내 장애우 사역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 안타까움을 전하면서 천 목사는 “전체 통계로 보면 약 10%의 장애인이 사회에 존재하지만 교회에는 2%정도 장애 우만이 있다”며 교회에서 장애우 사역에 대한 관심을 촉구했다.
1979년 한국에서 시작된 밀알선교단은 전 세계 6억 명이 넘는 장애인의 어려움과 고통을 끌어안고 예수 그리스도 참사랑을 전파하고자 지난 1987년 미국, 유럽, 캐나다 등지로 이어졌다. 밀알선교단은 이재서 총장에 의해 세워져 현재 전 세계 63개 지단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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