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역사를 다룬 책들이 많지만, 로마 멸망에 관하여는 에드워드 기번(1737~1794)의 '로마제국쇠망사'를 따라갈 작품은 없다고 합니다. '로마제국쇠망사'는 자료, 기술방식 그리고 유려한 문체로 명작으로 인정받습니다. 이 책은 구상에서 출간까지 23년 걸렸습니다. 27세에 시작해 50세에 완성합니다. 이 로마제국쇠망사는 뛰어난 역사서이자 훌륭한 문학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에드워드 기번(Edward Gibbon:1737~1794)은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평생 경제적 어려움 없이 살았습니다. 대신 아버지의 고집과 열정으로 그의 인생이 요동칩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따라 도서관에 다니며 역사와 고전을 익히고, 아버지의 설득으로 15세에 옥스퍼드大 모들린 칼리지에 입학합니다. 하지만 대학에서 신학을 접하며 가톨릭으로 개종하자 에드워드 기번의 개종을 문제 삼은 그의 아버지는 학교를 그만두게 하고 그를 스위스 로잔으로 보냅니다.
에드워드 기번은 로잔에서 중요한 두 만남을 갖습니다. 먼저는 퀴르쇼를 만나 사랑에 빠집니다. 아버지의 반대로 결혼을 못 하자 그는 "나는 연인으로서 탄식했고, 아들로서 복종했다"라고 고백합니다. 둘째로 그는 칼빈파 파이뱌르 목사를 만납니다. 그래서 그는 개신교 신자가 되고 라틴 고전 문학과 프랑스 문학을 깊이 공부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에드워드 기번은 로마역사를 깊이 공부할 준비를 합니다.
'로마제국쇠망사'는 AD 2세기 트라야누스황제(이그나티우스 감독 사형을 집행한 황제)와 안토니우스 황제 시대로부터 15세기 오스만 제국에 의해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동로마의 멸망)까지 1400년간의 로마역사입니다. 그가 다룬 역사는 대단합니다. 로마 황제들에 관한 세세한 이야기, 기독교의 확립, 게르만족의 대이동, 이슬람의 침략, 몽골군의 서방원정, 그리고 십자군 전쟁에 이르기까지 서구역사의 전반을 다루고 있습니다. 에드워드 기번의 방대한 자료수집과 그의 역사학자로서의 통찰력에 탁월한 문장까지 더해져 '로마제국쇠망사'는 흔들리지 않는 명저의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원래 로마는 조그만 도시국가였습니다. 조그마한 도시국가가 불멸의 성공을 거듭해 거대한 제국을 이뤘던 것입니다. 하지만 결국 로마는 멸망했습니다. 에드워드 기번은 거대한 로마제국의 쇠망 역사를 다루며 로마의 쇠락 이유를 언급합니다. 에드워드 기번에 의하면 로마는 외부 침입이 아닌 제국 내부의 문제로 멸망되었습니다.
기번(Gibbon)이 전하는 로마가 멸망한 이유를 기자 허연은 '명작 산책'이라는 그의 글에서 다섯 가지로 정리했습니다. 허연기자가 정리한 로마 멸망의 이유는 첫째, 경솔한 남녀의 결혼관과 이혼의 급증으로 가정에 대한 경시 풍조가 로마 멸망의 원인이었고, 둘째는 점점 많아진 세금 징수와 대중들에게 제공한 공짜 빵과 서커스 즉 과한 복지로 혈세 낭비입니다. 셋째는 상류층의 지나친 사치와 쾌락 추구와 잔인한 운동 경기로 국민성이 야수처럼 잔인해진 것을 지적합니다. 넷째는 외세를 대비한 군비 확장은 했지만, 내부의 적은 의식하지 못한 것입니다. 다섯째는 기독교의 부패가 로마쇠락의 원인이라고 지적합니다. 타락한 종교가 특권층의 독점물이 되어 시민을 이끌지 못해 로마 멸망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그는 로마제국쇠망사로 많은 찬사를 받았지만, 로마의 쇠락 이유로 기독교를 언급하며 로마교회를 혹독하게 비난했습니다. 그것은 당시 영국은 물론 전 세계 기독교계에 큰 충격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시대는 서구사회에 대한 기독교의 지배력이 상당한 수준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 대 놓고 기독교를 비판하는 것은 비기독교인과 무신론자도 쉽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에드워드 기번은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고 기독교 신앙을 고백한 신자였습니다. 그가 로마교회의 타락을 지적한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훗날 그는 '신학자는 종교가 하늘로부터 순결하게 내려온 것으로 기분 좋게 서술할 수도 있지만, 역사가는 훨씬 음울한 의무를 짊어지고 있다. 종교가 약하고 타락한 인류 사이에 오래 머물면서 오류와 와전 같은 것이 들어갔다는 것을 발견해야 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면 자신이 로마교회의 부패를 비판한 이유를 설명합니다.
로마제국쇠망사는 많은 사람의 애독서가 되었고 명작의 품격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열등생이었던 처칠은 로마제국쇠망사를 애독함으로 훌륭한 지도자로 성장합니다. 그가 탁월한 통찰력을 가진 지도자가 된 이유를 로마제국쇠망사를 애독한 것에 있다고 스스로 설명합니다. 처칠뿐만 아니라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 인도의 수상 네루 등도 본서를 애독서로 꼽았고 받았던 영향력을 자랑합니다.
그들의 고백(?)을 듣노라면 다시 인문학의 중요성을 깨닫습니다. 종교 개혁자들이나 위대한 부흥 운동을 이끈 지도자들의 인문학적 소양이 대단합니다. 그리고 시대마다 탁월한 설교가로 쓰임 받았던 사람들이 모두 탄탄한 인문학적 식견을 자랑합니다. 역사책과 고전 문학작품으로 인문학의 지평을 넓혀가는 가을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