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이른 토요일 새벽, 아침을 맞는 손길이 바쁘다.

글렌데일에 위치한 기쁜우리교회(담임 김경진 목사) 친교부를 담당하는 황치규 안수집사와 황향자 권사는 새벽 기도회를 마친 성도들에게 대접할 따뜻한 밥과 국 250명분을 준비하기 위해 교회에 가장 먼저 도착한다고 했다. 주일에는 체육관을 친교실로 사용하기 때문에 500명 분의 음식 준비 외에도 의자와 테이블 설치까지 마쳐야 하기 때문에 더욱 서둘러야 한단다. 

새벽기도를 마친 성도들에게 배식을 마치고, 혹여 더 필요한 것은 없는지 일일이 확인한 후에야 배식대 한편에서 국밥 한술을 뜨는 황 집사를 만날 수 있었다.

유교집안에서 자란 황 집사가 교회를 열심히 다니기 시작한 것은 1986년 미국에 오면서부터다. '내 손이 필요한 곳은 어디든지 섬기겠다'는 각오로 봉사한 지가 30년도 더 넘었다.

한 주를 여유롭게 보내고 남는 시간에 봉사한 것이 아니었다. 여느 이민자와 마찬가지로 황 집사의 이민의 삶도 고됐다. 건물 관리, 페인트 칠, 청소 등 누구 못지않을 만큼 힘든 이민자의 삶을 살았다. 주말에는 가족들과 여유롭게 쉼을 누릴만한데 평일에도 교회에 가는 주말을 기다릴 만큼 교회에 머물며 봉사하는 시간이 더 많았다. 교회 직원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만큼 열심을 냈다. 교회에서 봉사할 때 기쁨이 더 컸고, 미국에서 교회와 신앙은 삶의 전부였기 때문이다.

"그 당시 이민자들에게 삶의 여유가 어디 있었겠습니까? 교회 생활과 일만 하느라 자녀 교육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돌아보면 자녀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큽니다. 그럼에도 자녀들이 올바르게 자라서 사회에서 제 역할을 감당하고 있으니 하나님께 너무 감사하지요."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 쓰레기통을 정리하는 그에게서 30년도 넘게 봉사의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비결을 들을 수 있었다. 교회 봉사를 하면서 '믿음'으로 체험한 하나님을 증거 할 때는 경험에서 묻어나는 확신과 자신감이 넘쳤다.

"제가 성경적인 지식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봉사를 하면서 때를 따라 채워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예수님 말씀대로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가장 낮은 곳에서 섬길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더 큰 은혜와 사랑, 축복을 체험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요즘도 봉사를 주저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아무 걱정 말고 기쁜 마음으로 '덤비라'고 이야기해줍니다."

봉사를 하면서 힘들 때도 있지 않았냐고 묻자, 오히려 봉사가 자신의 삶을 지탱해줬다고 했다. 한 주의 고된 삶을 마친 성도들이 교회에서 힘을 얻고 기뻐하는 모습을 볼 때면 힘이 난다고 했다. 고국을 떠나 외로운 이민의 삶에서 교회가 울타리와 가족이 되었듯, 그 역시 누군가에게 편안한 안식처와 가족이 되고자 했다.

"사회적인 지위나 신분에 관계없이 교회에 오면 모두가 같은 하나님의 자녀 아닙니까? 모두가 내 가족처럼 소중한 사람들이지요.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고, 내가 할 수 있으면 하면 되는 것이에요. 힘들고 보이지 않는 일일수록, 내 작은 수고로 성도들이 기뻐하면 그것이 너무 좋아요. 그래서 봉사하고 섬기지요."

교회 재정, 선교 구제 봉사에 사용돼야
교회 직분자, 섬김의 리더십 필요

황 집사를 통해 미주 한인교회에 필요한 고언(苦語)도 들을 수 있었다.

30년 넘게 한인사회에 있으면서 한인교회가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많이 봤단다. 결국 돈이 문제라고 했다. 돈이 없어서 문제가 아니라, 돈이 많아서 문제라고 했다. 선교와 구제, 봉사로 사용되어야 할 교인들의 헌금이 교회에 묶이면서 교회 재산만 늘리다 이권 다툼이 일어난다는 정확한 분석이었다.

또 기득권이 문제라고 했다. 목회자와 교회 리더십들이 직분자로 교회를 섬기는 자리인데, 섬기기보다는 섬김을 받으려다 보니까 문제가 생긴다는 지적이다. 특히 담임 목사를 도와 부흥을 견인해야 할 장로들이 기득권을 차지하려고 다툼을 일으키는 사례를 보면 너무 안타깝다고 했다.

황 집사는 "예전에는 교회가 세상을 걱정했는데, 지금은 오히려 세상이 교회를 걱정한다"며 "마태복음 23장 12절 말씀처럼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낮아지는 자는 높아지리라'의 말씀이 복음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엘에이 지역 한인교회가 복음의 본질로 돌아가서, 담임 목사님을 중심으로 온 교회가 힘을 하나로 뭉쳐, 복음 전하는데 힘쓰고 이웃 구제에 힘을 쏟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평신도의 눈으로 본 한인교회를 향한 쓴소리가 아닌 간절한 바람이었다.

교회 봉사에 은퇴는 없다

74세 동갑내기인 황치규 안수집사와 황향자 권사 부부는 지난해 은퇴했다. 그러나 교회 봉사에는 은퇴가 없다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주위에서는 '그만하면 됐다', '다치면 낫기도 어렵다'고 하지만 놀면 뭐합니까? 건강이 허락하고 교회에서 섬길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무엇이든 해야지요."

예수님을 만난 것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라고 말하는 황치규 집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데 은퇴가 있을 수 없지 않으냐"며 "예수님 안 만났으면 지금 누리는 이런 기쁨을 누리기는 어려웠을 텐데, 인생의 후반부에도 예수님을 따라가면서 사랑의 열매, 성령의 열매들을 맺길 원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