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와 북한의 정치구조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공사는 "북한에 대한 여러 논쟁 중 하나가 북한에 종교의 자유가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라며 "북한을 가동시키고 북한 주민에게 어릴 때부터 가르치는 10대 원칙은 김씨 가문만 믿어야 하지만, 북한 헌법상으로는 신앙의 자유를 보장하므로 실제 자유가 있는 듯한 착시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숭실대통일아카데미(원장 조요셉 초빙교수) 오픈강의에서 태 전 공사는 기독교를 누구보다 잘 알았던 김일성, 김정일 일가가 얼마나 기독교를 경계하고 견제하며, 기독교의 교리와 의식, 교육 체계 등을 모방해 왔는지를 증언했다.
그는 "북한의 10대 원칙(당율법)은 수천 년 전에 만들어진 십계명을 순서도 변하지 않고 벤치마킹하여 옮겨놓은 것이다. 저는 (10대 원칙을) 김정일이 만들었는 줄 알았는데, 한국에 와서 십계명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이어 "순서도 엇바꾸지 않고 (십계명을) 그대로 옮겨놓은 이유는 김씨 가문이 기독교를 알기 때문에 하나님이 만든 십계명의 순서만 바뀌어도 이 시스템으로 북한이 움직이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는가 한다"고 추측했다.
북한 스스로가 종교 자유가 있다고 주장하는 근거는 첫째 헌법상 신앙의 자유를 보장하고, 둘째 교회 건물과 당이 파견한 목사와 교인, 물리적 종교의식도 실제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태 전 공사는 "그럼 만약 종교 자유가 있다고 가정하자. 북한에서 가방에 성경책을 가져가다가 경찰에게 잡히면 '내가 헌법에서 부여한 신앙의 자유에 따라 성경책을 가지고 다니는데 왜 잡아가느냐'고 항거해야 한다"며 "그런데 북한 사람 백이면 백 '제발 잘못했습니다'라고 빌든가, '내 것 아니다. 어느 놈이 날 모함해서 넣었다'고 이야기한다"고 했다.
그는 "어느 나라 국민이든 자기 권리가 침해당했을 때 모든 법의 기초인 헌법 권리를 행사하려고 하는데, 북한 사람이 헌법적 권리를 행사하려고 하지 않는 이유는 헌법을 주민에게 안 가르치기 때문"이라며 "대신 아이 때부터 당율법을 가르친다. 또 북한의 모든 당원은 핸드폰보다 작게 만든 10대 원칙을 주머니에 넣고 다닌다"고 말했다.
이와 반대로 한국 목사 등 외부인이 북한을 방문하면 북한은 헌법만 보여주고, 실제로 교회당도 존재하기 때문에 결국 (북한에 종교의 자유가 있는 것 아니냐는) 착시현상, 착각현상이 나타난다고 주장했다.
ⓒ숭실대통일아카데미 자료 제공 |
태 전 공사는 "북한의 세뇌교육도 기독교의 성경책에서 많은 내용을 옮겨놓은 것을 알 수 있다"면서 "김일성이 어떻게 태어나고 어떤 길을 걸었는지 가르치는 서술 내용과 방식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성경의 서술 방식과 그 행보와 정말 비슷하다"고 말했다.
이뿐 아니라 △전 세계가 사용하는 양력이 예수 탄생을 기준으로 한다면 북한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김일성이 탄생한 1912년을 기준으로 삼는 주체력을 사용하며 △많은 종교에서 종교가 시작된 지역을 성지로 생각하고 일생에 한 번 순례행진을 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북한도 아이나 어른이나 '배움의 천리길' '백두산 답사'라는 순례행진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1971년 김일성의 첫 동상을 세울 때 장소에 대한 논쟁이 많았으나 김일성이 지금의 만수대 언덕인 장대제 언덕을 밀고 세우라고 지시한 점 △기독교인이 이주하면 가장 먼저 교회를 세우고 주일날 모여 화목을 도모하는 것같이 북한 전역의 군이나 마을마다 김일성주의 혁명활동연구실을 만들어 놓은 점 △기독교인이 매 주일 교회에 가서 예배드리고 안식일을 지키는 것처럼 북한에서는 매주 토요일마다 일하지 않고 아침에 모여 생활총화를 하는 점 등도 언급했다.
태 전 공사는 "생활총화 방식은 마치 교회에서 목사님이 성경 구절을 인용해 설교하는 것처럼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셨습니다'라며 김일성 교시를 그대로 인용부호를 써서 인용한 후 자신의 잘못을 말하게 한다"고 전했다.
이 외에 △기독교에서 하나님께 식기도를 드리는 것처럼 북한은 탁아소에서부터 3살 아이도 콩우유를 먹기 전 '아버지 원수님 고맙습니다. 맛있게 먹겠습니다'라고 말한 후 먹게 하며 △탁아소에 들어갈 때는 정문 입구에 걸린 김일성, 김정일 초상화를 보고 '아버지 원수님 안녕하십니까'라고 인사하고 들어가도록 한다고 했다.
태 전 공사는 "국가 운영시스템을 연구한 인문학자 파블로프는 인간이 대단히 창조적이고 지혜로운 것 같아도 같은 일을 반복해서 시키면 조건반사를 하게 된다고 했다"며 "북한에서는 아이 때부터 김일성, 김정일을 보면 무조건 인사하는 연습을 끊임없이 시키기 때문에 밤에 자다가 갑자기 눈을 떠도 김일성 초상화가 보이면 저도 모르게 머리가 숙여지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많은 사람이 궁금해하는 '북한에서 민중봉기가 일어나지 않는 이유'도 이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북핵 문제 해결의 첫걸음은?
▲태영호 전 공사가 26일 숭실대통일아카데미에서 강의하고 있다. ⓒ이지희 기자 |
태영호 전 공사는 북한의 사법제도에 대해 "북한 주체사상 이론에 의하면 사람은 북한 시스템을 지지하는 '인민'과 북한 시스템을 반대하는 '반동'으로 나뉜다"며 "사람을 칼로 죽인 죄를 범한 '인민'은 재판을 받을 수 있지만, 몰래 김일성 정권을 뒤집어엎으려 모의만 해도 '반동'이 되어 재판 없이 무조건 끌려간다"고 말했다.
비핵화 문제에 대해서는 북한이 주장하는 '비핵화' 개념부터 이해해야 혼동이 생기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태 전 공사는 "김정은이 4.27 판문점 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 6.12 싱가포르 회담에서 말한 한반도를 비핵화하겠다는 것과 핵무기와 핵계획을 포기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개념"이라며 "북한은 지난 12월 22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란 한반도 주변에서 핵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핵 위협요인을 모두 없애는 것으로, 한반도 미군 철수와 일본과 괌의 미국 전략자산들까지 미국 본토로 가져가는 것으로 정리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래서 우리가 김정은으로부터 받아내야 할 것은 '모든 핵무기와 핵계획을 포기하고 NPT와 IAEA에 복귀하겠다'는 공약"이라고 강력히 주장했다.
하지만 그는 "현재 비핵화외교 시간이 갈수록 고도화되는 북한 핵개발을 뒤쫓아가며 보상 규모만 커지는 외교로, 북한 핵개발에 맞대응 카드는 마련하지 않고 설복, 당근, 경제협력으로 핵폐기를 끌어내는 발상 자체가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또 한미연합훈련과 전략자산전개 중단은 물론 주한미군 감축주장까지 나오는 등 김일성의 '조선반도 비핵화' 유훈이 관철되는 과정이 진행되는 것을 우려했다.
당면 과제로는 △김정은의 '한반도 비핵화' 용어부터 폐기하고 '북한 핵폐기, 핵포기'로 통일해야 하며, △한반도의 안보실태가 북한의 핵독점과 우리 국민은 핵인질 상태에 있음을 모두가 인정해야 하며, △북한에 핵이 없던 시절에 만들어진 정부조직, 전략, 국방구조, 사회체계, 교육제도를 개혁하고 북핵 대응 체제로 개조할 것을 요청했다. 또 △완성된 핵무기를 보유한 나라의 핵폐기는 내외적 요인으로 그 나라 체제가 변해야 가능하다는 역사적 사실을 인정하고 합리적인 대북정책을 마련할 것을 요청했다. (끝)
한편, 숭실대통일아카데미는 3월 5일부터 6월 11일까지 매주 화요일 저녁 7시 숭실대 형남공학관에서 진행한다. 오는 5월 14일에는 무기형 선고를 받고 북한에 노동교화소에서 31개월 동안 복역하던 임현수 캐나다 큰빛교회 원로목사를 초청해 '복음통일과 한국교회'에 대해 오픈강의(02-828-7076, www.ccul.kr)를 진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