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독교 짊어질 리더들 도전과 새 힘 주고 싶어 준비
오늘날 한국교회와 대한민국 위기, 저 포함 리더들 책임
3·1절 100주년을 맞아 사회와 교계에서 다양한 기념행사가 계획되고 있는 가운데, 2월 23일 열리는 '크리스찬 리더십 컨퍼런스(Christian Leadership Conference)'가 관심을 모으고 있다.
1천명을 대상으로 정릉 벧엘교회(담임 박태남 목사)에서 무료로 진행되는 이번 컨퍼런스는. 코리아 투게더 주최로 정성진 목사(거룩한빛운정교회)와 박동찬 목사(일산광림교회)는 리더십에 대해, 박명수 교수(서울신대)는 3·1운동과 임시정부에 깃든 기독교 정신에 대해 각각 강의한다.
또 이형노(중앙감리교회)·김성현(청라비전교회)·구동휘(한소망교회)·조지훈(기쁨이있는교회) 목사 등의 토크 콘서트와 송정미·히데오 고보리·김복유의 공연 등이 이어진다. 전체 진행을 맡은 박태남 목사에게 컨퍼런스 취지를 들어봤다.
-3·1절 100주년이라 다양한 행사가 이미 계획되고 있는데, 컨퍼런스를 계획하는 이유가 있다면.
"종교개혁 500주년이었던 2017년이 제게는 다소 아쉬웠다. 우리 입장에선 평생 한 번의 기회였는데, 한국교회가 내부 문제와 외부 비판들로 너무 위축돼 다시 한 번 일어설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나 생각한다.
이번 3·1절 100주년은 우리에게 다시 한 번 찾아온 기회다. 종교개혁 500주년이 전 세계 기독교에 해당되는 것이라면, 3·1절 100주년은 한국교회에 주어진 특별한 기회다.
굳이 기독교적 입장에서 바라보지 않더라도, 많은 역사가들이 100년 전 3·1운동은 기독교가 없었다면 안 됐을 거라고 이야기한다. 참여한 사람들도 기독교인들이 많았지만, 비록 작았지만 당시 전국적 네트워크가 있었던 곳도 교회뿐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일본 경찰에 잡혀갔던 분들 대다수가 크리스천 리더들이었고, 특히 지방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했던 이들은 거의 목회자들이었다. 3·1운동의 기초가 됐던 2·8독립운동 역시 기독 청년들이 중심이었다. 컨퍼런스에서 강의하실 박명수 교수님께서 임시정부가 기도모임처럼 이뤄졌다고 말씀해 주셨을 때 뭉클함을 느꼈다.
그래서 '코리아 투게더' 목사님들을 중심으로, 큰 행사는 아니지만 3·1운동에 깃든 기독교 정신을 되살려, 위축되고 의기소침해 있는 기독교 지도자들, 특히 한국 기독교를 짊어지고 나아갈 리더들에게 도전과 새 힘을 주자는 의미에서 준비하기 시작했다. 저희가 무언가 하고 있음을 드러내기보다, 새로운 무브먼트가 일어났으면 좋겠다."
-'리더십 컨퍼런스'로 진행되는 점이 특이하다.
"부담스럽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한국교회나 국가가 위기를 맞은 책임이 저를 포함한 리더들에게 있다는 점이다. 한국교회가 세상으로부터 받고 있는 도전이나 위기의 시작은 교회 리더들로부터 시작됐다. 3·1운동에 기독교가 영향을 미쳤던 것 역시, 기독교 신앙을 가진 지도자(리더)들이 앞장서서 역사를 이룬 것이다.
우리 믿음에 따르면 한국교회는 회복되어 이 땅을 하나님 나라로 변화시키며 바로 세워 나가야 한다. 그리고 그 기본적인 주체는 리더들이다. 그런데 지금 이대로라면, 후배들에게 좋은 미래를 물려주기 힘들 것이다. '리더십 컨퍼런스' 개최는 책임 있는 자들의 마지막 몸부림이라고 생각해 달라.
우리가 부족하고 연약했던 점들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우리의 바람들을 터놓고 이야기할 것이다. 물론 우리에게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역부족인 것도 사실이다.
감히 말씀드리지만, 우리 스스로가 한국교회의 문제를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공격에 대한 방어에만 급급할 뿐, 전략도 없다. 오히려 다음 세대 리더들이 깨어난다면, 하나님 역사가 더 확실하고 분명하게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고 있다.
리더들이 문제가 있음을, 리더들이 인정하지 않는 것 자체가 문제다. 오늘날 문제들이 대부분 어느 정도 힘을 가진 교회나 목회자들 문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정말 그렇게 잘못 됐다면, 이런 교회를 만들 수 있었겠냐'고. 많은 사람들이 같은 말을 한다. '뭔가 있으니 저런 교회를 할 수 있지, 다 잘 하고 그것 하나가 문제 아니냐'고.
하지만 착하고 선하고 좋은 일 많이 해도, 예수 안 믿으면 구원 못 받는 것 아닌가? 99%를 잘 해도 1%가 안 됐다면, 이 세상에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는 그 교회다움의 1%가 무엇일까? 그것이 없다면, 99%를 잘 해도 소용 없는 것 아닐까.
다른 모든 것들을 잘 하더라도, 하나님 뜻을 따르지 않는다면 다 무너지고 만다. 그 하나가 무너지면 다 무너지는데, 그런 문제의식이 없어 안타깝다. 결국 하나님의 주인 되심, 로드십(Lordship)의 문제다."
-리더십 컨퍼런스에서는 이런 이야기를 하실 것인가.
"조금만 언급해 보자면, 미래 크리스천 리더십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인정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다. 3·1운동 역시 기독교가 영향을 끼쳤지만, 이를 주도했던 사람들이 아니라 그렇게 이끄신 하나님에 대한 철저한 로드십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해 역사하셨음을 신뢰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통해 일하시는가,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은 누구인가'를 말해야 한다. 우리가 매일 하나님께 기도하지만,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만한 통로로서의 교회나 리더로서의 삶이 형성되고 있는가? 한국교회의 문제는 로드십에 있다.
기도 중에 '미래'라는 컨셉이 들어갔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주셨다. 그래서 정성진 목사님은 '시작하는 미래', 박명수 교수님은 '돌아보는 미래', 패널들의 토크쇼는 '바라보는 미래', 김복유 형제의 공연은 '꿈꾸는 미래', 히데오 고보리의 무대는 '참회하는 미래', 마지막으로 송정미 사역자는 '기도하는 미래'라는 이름을 붙여봤다."
-'리더십 컨퍼런스'를 한다고 하니, '목사들이 종이 되어야지 왜 리더가 되려고 하느냐'는 말도 나온다고 들었다.
"크리스천 리더십은 물론 주님의 종이 되는 데 있다. 각자의 생각이나 이념, 주장을 들고 나오면 안 될 것이다. 목사로서 가져야 할 태도 역시 '종'이 맞다. 하지만 성경적 관점에서 보면 목사는 '리더'가 맞다. 예수님께서 '내 양을 먹이라'고 하시지 않았나.
리더로서 가져야 할 태도가 '종의 자세'인 것이다. 종이 끌고 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리더들에게 교회를 맡기셨고, 그 리더십의 태도가 '서번트십(servantship)'이어야 한다.
그런 지적이 일리 있는 이유는, 목사들이 다 주인 행세를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를 인정하지도 않는다. 우리는 성도들 앞에서 순종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순종하고 말씀에 따라 성도들을 섬겨야 한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로드십을 따라야 한다.
그렇다고 꼭 목회자들만 참석해야 하는 건 아니다. 미래를 논하는 만큼, 관심 있는 목회자, 특히 부교역자들과 신학생들이 많이 오셨으면 좋겠다. 셀리더와 구역장들도 좋다. 다함께 모여 고민해 봤으면 좋겠다."
-현재 한국교회에는 리더십이 공백 상태인 것 같다.
"모든 사람들이 인정해 주는 리더십이 진정한 리더십이다. 그런데 지금 이러이러한 사람이라고 과시하는 이들이 있지만, 동의를 얻지 못하고 있다. 다음 세대가 존경하고 같은 목회자들이 따라갈 수 있는 리더십이 없다. 자칭 리더십이 있을 뿐, 타칭 리더십이 없는 것이다.
세상도 교회를 인정하지 않고, 목회자들도 목회자를 인정하지 않는다. 과거에는 사회적인 위기가 있으면 기독교 지도자들을 불러서 의논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성도들도 리더십을 인정하지 않는다.
리더십은 스펙에 의한 것이 아니다. 주변에서 인정할 때 리더가 되는 것이다. 예수님에게 스펙이 있었나. 너무 허술한 조건이었다. 하지만 성경은 그 분의 가르침이 어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과도 달랐다고 말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따랐다. 그게 리더십이다.
3·1운동 역시 마찬가지다. 임시정부에 몇 명 안 되는 사람들이 무슨 힘이 있었겠나. 하지만 모든 사람들의 열망을 품고 앞장서서 목숨을 걸고 나아갔더니, 모두들 동조했다. 그게 리더십이다. 비판받고 천대받고 조롱당한다면, 그것은 리더십이 아니다.
이런 부분들에 있어 답을 제시하기보다, 스스로의 문제들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대안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이런 말씀을 드리면 '박 목사는 항상 부정적'이라고 하는데, 기독교의 희망과 긍정은 절대 절망과 부정에서 오는 것 아닌가?
우리가 죄인이라고 인정하지 않으면, 구원의 기쁨이 없다. 그 속에서만 회개가 일어날 수 있다. 강단에서는 그렇게 선포하면서, 삶의 현장에서는 모두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 보자'고 말한다. 주님께서 주인 되시는 '로드십'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무언가 해서 드리려는 듯한 움직임들이 많다는 것이다."
-3·1운동은 기독교 정신으로 민족의 염원을 향해 나아갔다. 기독교 정신으로 민족을 이끈 성경의 사례가 있을까.
"물론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 속에 쓰임받은 사람들이지만, 모세와 여호수아는 대표적인 민족의 리더였다. 왕으로는 다윗이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완벽하게 무너졌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쓸 만한 사람들을 무기력하게 만든 후 쓰시는 것 같다(웃음).
그래야 리더십이 발휘된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가 살아있게 된다. 논쟁이 있지만, 마지막에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까지 인도하지 못했던 이유 중 하나가 '혈기'에 있지 않았나. 우리는 거기서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정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리더십은 무엇인가. 완벽하게 무너지고, 철저하게 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반복해서 말씀드리지만 핵심은 하나님께서 하나님 되시고, 그리스도께서 우리 삶의 주인 되시며, 우리 사역의 주인이 되셔야 한다.
지난 2007년 평양대부흥 100주년도, 2017년 종교개혁 500주년도 지나갔다. 우리의 잘못된 모습, 우리가 주인 되려고 했던 데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종교개혁 역시 가톨릭이 하나님 자리를 대신했을 때 일어난 것 아니었나. 신선한 부흥운동은 늘 각성에서부터 시작됐다. 3·1운동도 어떤 의미에서 '각성'이었다. 민족적 자존감을 회복한 사건이었다."
-3·1운동 이후 오랫동안 기독교가 이 나라에서 리더십을 가졌지만 언젠가부터 이것이 무너진 이유와, 회복의 방안이 있다면.
"인본주의와 이기심 때문이다. 6·25 동란 이후 교회가 모든 영역에서 리더 역할을 감당할 수 있었던 이유는, 사람들이 인정했기 때문이다. 어려운 사람들을 살리고 돌보는 일을 감당했다. 그런데 교회가 '성장' 위주로 바뀌면서 '내 교회, 우리 교회'만 외치다, 주변에 관심을 쏟지 않았다.
선교나 구제도 '성장을 위한 도구'가 되고 말았다. 주님께서 하라고 하셔서가 아니라, 이걸 하면 우리 교회가 성장할 것이기 때문에 했다. 좋은 일을 많이 하지만, '우리 교회 성장과 관계가 있는가' 하는 단서가 붙는다. 하나님의 일이 아니다.
무조건적 성장주의와 개교회 이기주의, 이 두 가지가 같은 교회들끼리 경쟁하게 만들었다. 교회와 교회를 분리시켰다. 더 무서운 것은, 세상이 교회를 인정하지 않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우리를 '교회'가 아닌, '선교지'로 부르셨다. 교회는 주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권능을 받는 곳이어야지, 우리 신앙의 목표여서는 안 된다. 위대한 사명을 맡기신 마태복음 28장 19-20절에도 '교회'라는 단어는 나오지 않는다.
모두 해외 선교를 가야 한다는 건 아니지만, '선교사'라는 의식을 갖고 가정과 직장과 학교, 각자가 서 있는 곳에서 리더가 돼야 한다. 이를 잊어버린 채 '교회 중심'을 외쳐선 안 된다. 그러니 경쟁자가 될 수밖에 없다.
영향력이 상실된 리더는 리더가 아니다. 믿지 않는 이들을 예배자로 만들고자 한다면 그들이 우리를 인정할 수 있어야 하지만, 다를 게 없으니 인정받지 못한다. 우리가 달라질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능력으로만 가능하다. 하지만 지금도 많은 교회들이 프로그램과 목회자의 능력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방법론을 갖고 있다.
여리고성 싸움의 전략을 돌아보자. 군사작전이 아니었다. 작전은 단 하나, '순종'이었다. 가나안 정복의 첫 번째 전쟁이어서 그 영적 의미가 더 크다고 본다. 이전에 광야에서 40년간 방황했던 것도 그랬다.
기독교적 리더십은 인간적으로 무너지고 하나님의 손으로 일으킴 받은 사람들을 통해 발휘된다. 민족적 리더십도 마찬가지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일하심을 보여주길 원하신다. 그러려면 우리가 다 내려놓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