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특강 예배모범>을 출간한 손재익 목사님(한길교회)이 교회에서 전한 특강  '공예배 중에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로 성경책과 찬송책을 대신하는 일에 대해' 원문을 전체 게재합니다. -편집자 주 

시대의 발전

과거에는 많은 사람들이 성경책과 찬송책을 갖지 못했다. 구약시대나 신약시대, 초대교회 때의 상당수 사람들은 성경책이 없었다. 인쇄술이 없었기에 필사(筆寫)해야 했으니 성경책을 여러 권 만들기가 쉽지 않았고, 많은 사람들이 성경책을 소유할 수 없었다. 그래서 교회당에 갈 때 성경책을 들고 간다는 것 자체가 없었다. 대신 성경을 외우거나, 평소에는 읽지 못하고 교회당에서 누군가가 읽어줄 때 비로소 들을 수 있었다.

종교개혁 시기 인쇄술의 발달과 성경번역이 허락되면서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성경책을 갖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도 여전히 미흡했다. 가격이 비쌌고 대부분 가난했기에 모두가 성경책을 가질 수 없었다. 뿐만 아니라 글을 읽지 못하는 문맹(文盲)이 많았기에 소유 자체가 무의미하기도 했다.

시간이 흘러 문맹률이 낮아지고 인쇄술이 더욱 발달하여, 누구든지 손쉽게 성경책과 찬송책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심지어 여러 권을 가진 사람도 많아졌다. 풍족해서인지, 도리어 가치를 크게 여기지 않는 이들도 많아졌다. 귀찮아서 안 들고 가지, 없어서 안 들고 가는 사람은 없었다.

성경책을 누구든지 쉽게 가질 수 있게 된 것의 소중함을 잊은 많은 사람들이 성경책을 들고 가는 것을 번거롭게 여기던 즈음, 스마트폰의 보급은 또 다른 큰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늘 들고 다니는 자그마한 휴대폰 안에 성경책과 찬송책이 있다. 애플리케이션만 깔면 성경책과 찬송책을 읽고 들을 수 있다.

그러다 보니 과거에는 성경책과 찬송책이 없어서 가지고 다니지 못했다면, 지금은 더 나은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 굳이 무거운 성경책과 찬송책을 귀찮게 들고 다닐 필요가 없게 되었다. 스마트폰뿐 아니라 태블릿PC도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감사한 일이다. 언제 어디서든 성경책과 찬송책을 볼 수 있으니. 과거 파트너성경이나 포켓성경처럼 무거운 성경책을 가볍게 하기 위해 분책(分冊)하는 풍경을 이제는 찾아볼 필요가 없어졌다. 이젠 우리 손 안에 성경책과 찬송책이 있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로 성경과 찬송을 봐도 될까? 

과거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질문이 생긴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로 성경과 찬송을 봐도 될까? 당연히 봐도 된다. 봐선 안 될 이유가 없다. 보는 것 자체가 나쁠 순 없다. 성경과 찬송을 본다는데 반대할 이유가 없다. 무거운 성경책을 일일이 들고 다니면서 읽는 것보다는 효율적이니 충분히 가능하다.

문제는 공예배

문제는 공예배 때도 가능하냐 하는 것이다. 사실 대부분 사람들의 질문은 여기에 있다.

많은 면에서 상당히 개방적이면서도 한편으로 여전히 보수적인 나는,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가 보급된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선후배 목사들이 심방을 가면서 그걸로 성경 찬송을 대신하는 것이 굉장히 어색하고 불편했다. 그런데 그건 단순히 문화적인 문제다. 문화적인 문제만으로 옳으냐 그르냐고 말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하지만 공예배에서의 경우는 조금 달라진다. 왜 그럴까?

스마트폰과 태블릿 PC에는 성경찬송 애플리케이션 외에 다양한 기능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성경을 보다가도 다른 일을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성경을 보다가 갑자기 포털사이트에 들어가서 뉴스를 볼 수도 있다. 찬송을 부르다가 카카오톡이나 문자메시지를 확인할 수도 있다.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보낼 수도 있다. 심지어 설교가 따분하다며 게임을 할 수도 있다.

스마트폰과 성경
▲스마트폰이 활성화 된 요즘, 예배시간에 성경 어플이 성경책을 대신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쟁도 계속되고 있다.

공예배 때의 바른 태도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는 공예배 때의 바른 태도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일단 위에 언급한 대로, 스마트폰과 태블릿PC는 그 안에 있는 다른 여러 기능 때문에 마음먹기에 따라 다른 행동을 할 수 있다.

성경을 보다가도 다른 일을 할 수 있고, 얼마든지 그런 유혹에 노출되기 쉽다. 제어와 절제가 만만치 않게 어렵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예배에 대한 바른 태도가 아니다.

예배에 있어서의 바른 태도에 대해서는 다음의 내용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웨스트민스터 예배모범. 회중의 모임과 공예배에서의 태도에 관하여

... 공예배가 시작되면, 사람들은 전적으로 참석하여서, 목사가 읽거나 인용하는 것 외에 다른 것을 읽어서는 안 된다. 사사로이 소곤대는 것, 의논하는 것, 인사하는 것, 참석한 사람이나 늦게 들어오는 사람에게 인사를 하거나 하는 행동을 하지 말고, 멍하니 바라보거나 잠을 자거나 다른 보기 흉한 행동을 하여 목사나 사람들을 방해하거나 자기나 다른 사람들이 예배하는 것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 ...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 헌법(2011년판) 예배지침 제3장 제7조 (주일예배 참석자의 자세) 2항

"예배 시간에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 경외하는 마음으로 예배해야 하며 예배를 방해하는 모든 행위를 삼가야 한다."

2011년에 개정된 고신 헌법은 내용을 조금 축소시켜서 아쉽다. 그 이전 판인 1992년 판에는 좀 더 자세하게 다룬다.

대한예수교 장로회(고신) 헌법(1992년판) 예배지침 제3장 주일예배 제7조 주일예배 참석자의 자세

"예배 시간에는 모든 사람이 엄숙한 태도와 공경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예배하고 목사가 봉독하는 성경 이외의 다른 서적을 보거나 귓속말이나, 곁눈질이나, 인사나, 졸거나, 웃거나 등의 일체 불필요한 행위를 하지 말아야 한다."

웨스트민스터 예배모범의 내용과 매우 흡사하게 되어 있었다.

예장 고신 헌법뿐 아니라, 합신 헌법에도 이와 관련된 좋은 내용이 있다.

대한예수교 장로회(합신) 헌법(2010년판) 예배모범 제2장 교회 회집과 예배 석상에서의 신자들의 행위

2. 예배를 위한 모임에 신자들은 단정한 옷차림과 경건한 태도로 참여해야 되나니, 그들은...

3) 인도자의 읽는 말씀 외에 다른 것에 주목하지 말 것이며,
4) 더욱이 귓속말이나 상담이나 인사하는 것도 삼가야 하며,
5) 강단 외에 다른 것을 주의해 본다든지, 졸든지, 그 밖에 경건치 않은 행위를 자제해야 하며,

위 내용을 굳이 보지 않더라도, 예배 시간에는 오직 예배 그 자체에만 집중해야 한다. 기도 시간에는 기도해야 하고, 찬송 시간에는 찬송해야 하며, 설교 시간에는 모든 감각기관을 설교자에게로 향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로 성경책과 찬송책을 대신할 때 여러 가지 위험이 있다. 예배에 전적으로 집중하지 못하게 만들며, 예배를 방해하는 여러 가지 행위가 그대로 노출되기 쉽다. 결국 예배의 경건함을 깨뜨릴 위험이 있다.

모두 다함께 드리는 시간이라는 점

이런 반론이 나올 수 있다. "나는 잘 참을 수 있습니다", "각자 스스로 제어하게 하면 되지요".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사람은 이렇게 하기 힘들다. 자기가 능동적으로 하는 포털사이트 확인, 게임 등은 절제 가능할지 몰라도, 누군가가 보내오는 메시지, 여러 가지 소식을 알려주는 알림 등을 스스로 제어할 수 없다는 점에서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대한 절제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공예배는 다양한 계층과 다양한 사람이 함께 모여 드리는 시간이며,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라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스스로 조절 가능한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이 더 많다. 짧은 시간 동안은 제어할 수 있어도 1시간 남짓 이뤄지는 시간동안 제어가 쉽지 않다.

무엇보다도 공예배에는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다양한 계층이 참여한다. 스스로 제어할 수 있는 어른의 경우 스마트폰과 태블릿 PC로 성경찬송을 보는 것 자체가 문제는 될 수 없다. 하지만, 어린이나 청소년들의 경우 통제가 불가능하다. 그들은 스마트폰과 태블릿 PC로 성경을 보다가 다른 일을 할 가능성이 다른 계층에 비해 높다.

그러면 또 이렇게 반론할 수 있다. "그들만 보지 못하게 하면 안 됩니까?" 하지만 통제 가능한 어른이 스마트폰과 태블릿 PC로 성경을 보고 있으면, 청소년들도 "저 어른도 저렇게 스마트폰으로 보고 계신데요"라고 핑계를 댈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모두에게 금지시킬 수밖에 없는 상황이 분명히 있다.

공예배는 많은 사람이 함께 예배드린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한두 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그렇게 할 때 당회는 통제가 불가능하다. 당회원은 예배 중에 곳곳에 앉아서 교인들이 예배를 바르게 드리고 있는지를 살필 책무가 있는데, 저마다 스마트폰과 태블릿 PC로 하게 되면 살피는 일이 어렵게 되고 의심의 눈초리만 깊어진다.

또한 설교자에게 불편을 줄 수도 있다. 회중석에 앉은 청중이 스마트폰과 태블릿PC로 성경을 볼 때, 성경 외에 다른 것을 보는지 아닌지 정확하게 알기 어려울 뿐 아니라, 혹여나 다른 것을 본다면 설교자에게 큰 방해가 된다.

설교 분별을 위해

공예배는 단순히 성경을 읽는 시간이 아니라, 설교를 듣는 시간이기도 하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공예배 중에 성경책을 가지고 오는 이유는 성경읽기가 목적이 아니라 설교듣기가 목적이다. 즉 선포되는 말씀을 들을 때 참고하기 위함이다.

성경책을 들고 온 청중은 설교자가 설교할 본문을 함께 읽는다. 설교자가 설교 중에 인용하는 본문을 찾아보기도 한다. 이렇게 하면서 청중은 설교를 들을 때 분별해야 한다(행 17:11).

그런데 분별의 가장 기본은 문맥이다. 어떤 본문을 인용할 때 어떤 맥락에서 인용했는지를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이 점에 있어 스마트 기기는 한계가 있다. 태블릿PC는 조금 예외일 수 있겠으나, 스마트폰의 경우 앞뒤 문맥을 길게 살펴보기가 쉽지 않다.

성경 찾기 훈련

또 한 가지 예배의 교육적 효과도 생각해야 한다. 예배를 통해 누리는 유익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에 하나는 교육이다. 예배는 그 자체로 교육을 목적으로 한다.

설교 본문을 찾고 설교 중 인용되는 본문을 찾는 것은, 성경을 찾는 훈련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교인들은 일주일 중에 고작 주일 하루 교회당에 와서 성경 이곳저곳을 살펴보는데,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성경을 찾는 방법과 능력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점도 생각해야 한다.

성경책과 찬송책을 준비하자

지금까지 살펴본 이유들에 근거해, 우리는 공예배 중에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로 성경과 찬송을 보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할 수 있는 한 성경책과 찬송책을 준비하여 공예배에 참여해야 할 것이다. 실수로 성경책과 찬송책을 들고 오지 못했을 때, 가능하면 교회당에 비치된 비치용 성경을 사용하는 것이 좋겠다.

함부로 정죄하는 것을 조심해야 함

혹시나 아주 부득이한 상황으로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로 성경책과 찬송책을 대신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기에, 함부로 정죄하는 것도 조심해야 하겠다. 깜박하고 들고 오지 않았거나, 아직 이 부분을 잘 몰라서 그렇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론

문명의 이기(利器)를 잘 활용하는 것은 좋다. 개인적으로 얼마든지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를 이용해서 성경책과 찬송책을 사용할 수 있다. 지하철에서나 집에서 읽고 묵상하는데 사용한다면 충분히 권장할 일이다. 하지만 공예배에서는 절제가 필요하다.

그러나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참여하여 긴 시간 동안 이뤄지는 공예배에서는, 여러 가지 문제를 낳을 수 있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에는 성경찬송만 아니라 너무나 다양한 기능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모든 성도들은 가능한 한 성경책과 찬송책을 준비하여 공예배에 참여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므로(고전 6:12; 10:23), 때로는 연약한 이들을 고려하여 조금은 수고를 행하는 것이 좋겠다.

특강 예배모범
▲책 <특강 예배모범> 표지 왼쪽 위에는 작은 '창문'이 있다. 이 책이 하나의 작은 창문이 되어, 한국교회 예배에 변화의 바람을 맞아들일 수 있길. ⓒ흑곰북스 제공

64회 고신 총회의 결정과 개체 교회 치리회인 당회의 할 일

한 가지 덧붙이려고 한다. 2014년 열린 제64회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 총회 때 올라온 안건 중에 이런 것이 있다. "예배에 스마트폰으로 성경과 찬송을 부르는 예배자가 늘어남으로 예배 중에 예배와 관계없는 정보를 전하고 받는 일까지 자연히 발생하게 되고, 예배에 전념하지 못할 뿐 아니라 기기 사용으로 거룩한 예배가 방해를 받으므로 공예배에 스마트폰 사용을 금지하도록 제안합니다"라는 청원이다. 오늘날 이 문제가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에 대해 총회는 "성경 찬송의 사용을 원칙으로 하되, 각 교회 당회가 적절히 지도하도록 하는 것으로 수정하여 가결"했다.

왜 이렇게 했을까? 아주 다양한 상황과 환경이 있을 수 있기에, 총회가 규정하기보다는 각 개체교회 치리회가 정하도록 한 것이다. 또한 총회가 아니라 하더라도 당회가 충분히 이에 대해 다룰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결정을 통해 우리는 당회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당회는 교인들의 신앙과 행위를 총찰(總察)하고, 제반예배를 주관하는 직무를 맡았다(고신 헌법 교회정치 제121조 당회의 직무).

그렇기에 예배 중 이뤄지는 교인들의 신앙행위와 관련하여 이러한 지침을 제시하고 지도하는 것이 당회의 중요한 직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오늘날 교회의 당회에서 이러한 일을 하고 있다는 말을 들어 본 일이 별로 없다.

손재익 목사(한길교회, <특강 예배모범>, <설교, 어떻게 들을 것인가> 등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