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는 포도를 따서 포도주 틀에다 넣고 포도물을 만들기 위해 발로 밟았습니다. 발로 밟아 짓이겨서 짜면 한쪽으로는 깨끗한 포도물이 나오고 한쪽에는 찌꺼기가 남습니다. 우리의 살아가는 모습도 그런 것 같습니다. 크고 작은 다양한 고난들이 우리 삶에서 일어납니다. 빨리 해결해야 할 문제, 풀어야 할 인간관계, 경제적 어려움 등, 여러가지 시련들이 우리를 짓이겨서 고통을 줍니다.
우리는 나에게 주어진 시련들을 품고 몸부림치다 보면, 필요한 것과 필요하지 않은 것이 갈라집니다. 유익한 것과 무익한 것이 가려집니다. 참된 것과 거짓된 것이 구별됩니다. 내 안에 쓸데없는 욕심이 무엇인지 깨달을 때도 있습니다. 버려야 할 허영심이나 위선, 명예욕, 교만 같은 찌꺼기들이 나오는 것을 경험합니다.
학교를 다닐 때는 정기적으로 시험을 보았습니다. 시험은 학생에게 큰 부담을 주고, 그 결과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보기 싫었지만, 시험은 반드시 필요했던 과정임을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인생에게 각 종 시험을 허락하시는 것 같습니다. 생활속 시험들을 통해서 나 자신의 참모습을 알게도 하시고, 이웃과의 관계를 돌아보게도 하시며, 무엇보다 인생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뜻을 찾도록 도와줍니다.
성경은 여러 가지 시험에 빠질 때에, 그것을 더할 나위없는 기쁨으로 생각하라고 말합니다(약1:2). 그 이유는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낳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인내력을 충분히 발휘하다 보면, 부족함 없이 완전하고 성숙한 사람으로 변해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나에게 지혜가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께 지혜를 달라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필요한 지혜를 공급해주시기 때문에 결국 시험과 시련이 유익한 결과를 낳는다고 말합니다.
위어스비라는 목사님에게 여비서가 있었습니다. 그 여자의 남편은 사고를 당해서 시각장애인이 되었고, 위독한 상태였습니다. 이 여비서는 많은 시련을 겪으며 고생하게 되었습니다. 이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목사님은 딱하고 답답한 나머지 위로의 말을 건넵니다. "나는 당신과 당신 가정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여비서가 묻습니다. "뭐라고 기도하십니까?" 목사님은 대답합니다. "하나님께서 은총을 주시어 당신의 이 고난을 면케 해 달라고 기도하지요."
그랬더니 여비서는 "그렇게 기도하지 마세요, 목사님."하고 뜻밖의 반응을 보였습니다. "저는 이 시련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내게 주시는 은혜를 다 받으려고 합니다. 끝까지 참고 견디어서 받아내고 싶어요. 그러니 목사님, 제가 그 축복을 받아냄으로써 오늘 당하는 이 고난이 헛된 고난으로 끝나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해 주세요." 욥이 겪었던 고난은 헛되지 않은 고난이 되도록 하나님께서 역사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겪으신 십자가 고통도 헛되지 않은, 인류를 구원하는 고난이 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내려오실 때 가룟 유다가 다가오더니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인사하면서 입을 맞춥니다. 얼마나 간사합니까?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이 보낸 무리가 칼과 몽둥이를 들고 예수님께 다가와 손을 붙잡았습니다. 베드로는 참지 못하고 칼을 휘둘렀습니다. 예수님은 이 때, "이것까지 참으라"(눅22:51)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생각하며 시련을 참으면 그 시련은 찌꺼기가 아니라 향긋한 포도주가 됩니다. 손해보는 것이 아니라 유익하게 됩니다.
시련 때문에 강팍해지는 것이 아니라 겸손해지고 온유해져서 주님을 닮아갈 수 있습니다.
[이기범 칼럼]이것까지 참으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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