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하나님과 공동으로 창조한 작품입니다."
배우 추상미 씨가 고난을 통해 '킹덤 빌더(Kingdom Builder)'가 되어 돌아왔다.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소명을 갖고 연출가로 변신한 그녀는 첫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 개봉(10월 31일)을 앞두고 있다.
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은 67년의 간극을 두고 그때와 지금 동일하게 벌어지고 있는 우리 현대사의 비극을 소재로 한다. 1951년, 한국전쟁 중 북한은 고아 1,500명을 비밀리에 폴란드로 보냈다. 폴란드 선생님들은 말도 통하지 않은 아이들의 상처를 사랑으로 품어줬고, 아이들도 그들을 선생님이 아닌 '마마, 파파'로 부르며 따랐다.
그러나 가족처럼 지낸지 8년만에, 북한은 '천리마 운동'을 본격화한다는 이유로 1,500명 모두를 본국으로 송환시켜 버렸다. 추상미 감독은 우연히 접한 이 이야기를 추적하기 위해 폴란드로 날아갔다. 극영화를 찍기 위해 만난 탈북소녀 송이와 함께.
어렵사리 찾아낸 그 시절 '마마'와 '파파'들은, 60여년 전 떠나보낸 고아들을 여전히 그리워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들에게도 혹독했던 전쟁의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추상미 감독은 '상처입은 치유자' 폴란드 선생님들의 '위대한 사랑'을 오롯이 담아냈다.
무엇보다 송이가 그들의 눈물에, 얼음장 같던 마음의 빗장을 조금씩 열었다. 탈북 과정의 상처를 꺼내지 않았는데, 선생님들이 송이를 통해 65년 전 아이들을 떠올리는 모습을 보고 너무 많이 울었다. 본지는 추상미 감독이 들려주는 영화와 신앙 이야기를 두 차례에 걸쳐 소개할 예정이다. 아래는 그 첫 번째 이야기.
-배우에서 감독이 되셨는데요.
"연출 공부는 미리 시작했습니다. 배우 시절부터 오랜 꿈이기도 했습니다. 2008년 드라마를 마지막으로 아이가 갖고 싶어 작품을 쉬면서 준비했습니다. 그러다 2009년 한 차례 유산을 하고는 연출 공부를 시작하러 대학원에 들어갔습니다. 단편 두 편을 만든 뒤 아이가 생겨 휴학을 했고, 장편영화 소재를 찾다가 산후우울증이 찾아왔습니다.
영화 연출은 특별한 '사인'이 있었던 건 아닙니다. 우울증을 겪으면서 정말 하나님을 뜨겁게 만나고 거듭나는 경험을 하고 나니, 세상에 대한 욕망이 다 없어졌습니다. 주님과 친밀한 시간이 너무 좋아서 '마라나타' 하고 살았는데 주님이 바로 오실 것 같진 않았습니다(웃음).
몇 개월 뒤 '내 인생에 대한 주님의 계획이 있다면 그것은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적 성취에 대한 욕망은 없어졌지만, 주님께서 내 정체성을 아실테니 그 목적을 알고 그대로 살면 좋겠다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때 주신 마음이 '킹덤 빌더',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예술 감독에 대한 소명이었습니다.
산후우울증은 관리가 안 되면 일반적인 우울증으로 발전되는데, 제 경우에는 아이에 대한 과도한 집착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꽃제비 영상을 보면서, 우리 아이처럼 생각돼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렇게 폴란드에 대한 여정을 시작했고, 이제는 그 집착이 세상 다른 아이들에 대한 애정으로 옮겨지게 됐습니다.
자기 중심성에서 벗어나, 세상 속 굶주린 아이들, 고통받았던 역사 속 아이들을 만나면서 제 우울증은 건강하게 극복됐습니다. 송이도 저도, 촬영을 통해 치유의 여정을 겪었던 셈입니다.
▲영화 속 눈물 흘리는 추상미 감독. ⓒ커넥트픽처스 제공 |
태도 면에서는 배우일 땐 세상과 소통하기보다 분리되어서 저 자신과 제 내면에 집중하느라 고립된 느낌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감독이 되면서부터 세상의 이슈들과 사회적 문제들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떤 방식으로 소통해야 할지 고민하게 됩니다.
사람을 볼 때, 뉴스에 나와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보더라도 그의 스토리가 무엇인지, 어떤 삶을 살았을지 하는 관심을 갖게 됩니다. 타인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크리스천으로서 어떤 마음으로 영화를 만드셨나요.
"기도 응답으로 받은 소재를 영화화했습니다. 기독교 콘텐츠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세상을 향한 작품 속에 복음을 녹여내고자 하는 소명이었습니다.
기독교적 용어를 특별히 사용하지 않고도, 우리 안에는 하나님을 찾을 수 있도록 장치를 심어 놓으셨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선한 양심이 누구에게나 있고, 이를 통해 하나님을 더듬어 찾을 수 있도록 자극하고 도전할 수 있는 작품들을 만들고자 합니다.
그래서 킹덤 빌더로서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한 영화라는 소명 아래 직접 소재를 찾을 수 있도록 기도드렸고, 1주일도 안 돼 찾게 됐습니다. 탈북민이나 꽃제비 같은 소재에 관심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연예인으로 살았기 때문에 무관심했습니다. 그러나 산후우울증을 통해 하나님을 깊이 만나게 됐고, 소명을 깨닫고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만나게 하신 작품입니다.
그렇다 보니, 제 의지보다는 하나님께서 이 '실화'를 통해 무엇을 드러내고 싶어하실지 고민했습니다. 2년간 편집을 하면서 그런 훈련을 많이 받은 것 같습니다. 처음 주신 말씀을 시나리오 쓴 노트에 기록했는데, 구약의 인물 브살렐에 대한 구절이었습니다. 그날 그 본문 말씀을 큐티를 통해 주신 것도 하나님의 역사였습니다.
'여호와께서 지혜와 총명을 부으셨던(출 36:1)' 브살렐을, 저는 지금의 '아티스트'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브살렐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주신 설계도를 통해 공교한 일들을 했던 인물입니다. 그런 소명을 품었습니다."
▲영화 속 등장하는 폴란드 선생님. ⓒ커넥트픽처스 제공 |
-쉽지만은 않은 과정이었을 것 같습니다.
"성경적 가치를 반영해서 영화를 만들기보다는, 예배자로서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받은 인사이트를 나누고 교감하면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초반에는 저의 옛 자아에서 나오는 상상력들도 사용했지만, 하나님께서 다 무너뜨리셨습니다. 홀로 편집하는 2년간 그런 시행착오를 많이 겪으면서, 힘들었던 시간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먼저 예배자가 되어라'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보통 한 작품을 만들 때는 편집자와 감독, 그리고 프로듀서까지 3명이 브레인스토밍을 하는데, 저는 혼자 다 해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영화가 무슨 내용인지 와 닿지 않을 정도로 판단력을 잃었을 때, '먼저 예배자가 되어라'고 하셨습니다.
2주간 오로지 찬양과 예배, 기도로 보냈습니다. 그렇게 영이 회복되는 경험들을 한 뒤, 기도 가운데 하나님께서 작품을 향한 마음들을 부어주셨습니다. 마치 브살렐에게 법궤의 설계도를 주신 것처럼, 작품의 전체적 구조와 아이디어를 모두 얻을 수 있었습니다. 거짓말이 아니라, 정말 하나님과 공동 창조한 작품입니다."
-이 영화를 통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싶은 바가 무엇일까요.
"영화는 폴란드 사람들이 전쟁에서 받은 상처를 매개로 (북한의) 전쟁 고아들을 품고 그들의 엄마 아빠가 되어줌으로써, 상처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내용입니다. 우리도 통일로 가는 여정에서 한국전쟁이나 분단 같은 역사적 상처가 있는데, 그것을 어떻게 극복하고 바라봐야 하는가, 그리고 우리는 이 65년의 역사 속에서 어떤 성찰을 해 왔는가를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이제까지는 이를 통해 증오를 유발하고 자신들의 이데올로기를 견고하게 했지만, 앞으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용서와 화합, 공감과 이해 아닐까요. 우리도 각자 받은 시련과 상처가 타인에 대한 연민을 품게 만들지 않습니까. '상처 입은 치유자'라는 책이 있듯, 우리의 상처가 다른 사람의 상처를 치유하는데 사용될 수 있다는 원리를 보여주시길 원하는 게 아닐까요. 실화를 통해 드러내시려는 그런 메시지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더 구체적으로는 우리 이웃들인 3만명을 넘어선 탈북민들을 폴란드 선생님들 같은 마음으로 품어야 할 것입니다. 작품을 하면서, 탈북민들에 대한 하나님의 굉장한, 엄청난 애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항상 가장 가난하고 고통받는 자들에게 있습니다. 그래서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돌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들의 아픔을 우리가 감싸주는 것이 하나님의 큰 기쁨이므로, 우리가 해야 합니다. 이 사회가 분열과 분리, 공감 부족으로 그러한 일들을 아직 하지 못하고 있다는 메시지들이 담겨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