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러시아 월드컵이 한창 진행중인 가운데, 우리나라는 예선에서 아쉽게 탈락하고 말았다. 독일을 잡으면서 대회 최대의 이변을 만들어냈지만, 이럴수록 생각나는 건 2002년 한·일 월드컵의 '4강 신화'이다. 지금 지상파 3사에서 중계를 맡고 있는 안정환·이영표·박지성 선수가 그라운드를 누비던 그때 말이다.
이들 중 '크리스천'인 이영표 해설위원을 지난 5월 말 만나 그의 삶과 신앙, 노력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영표 위원은 지난달 <생각이 내가 된다>를 펴내 많은 사랑을 받았고, 또 한 권의 책 <말하지 않아야 할 때: 이영표의 말>을 출간했다. 이 책은 홍성사 '쿰'에 매달 '밴쿠버 통신'이라는 이름으로 연재한 단상들을 사진과 함께 모은 글이다. 그리고 9년 전인 2009년 <성공이 성공이 아니고 실패가 실패가 아니다>를 썼다.
이영표 위원은 이번 월드컵에 출전한 우리나라 축구대표팀에 대해 쓴소리도 마다 하지 않지만, 국민들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실점 때마다 이 위원은 선수들의 '기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밴쿠버 통신' 지난 1월호에 이미 이런 글을 남겼다.
"축구 경기에서 실점의 95퍼센트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축구의 기본을 수비수들이 최소한 5차례 이상 지키지 않았을 때 발생합니다. 세계적 수준의 수비수가 되는 조건 중 하나는 축구의 기본. 그 기본을 철저히 지키는 평범함에 있습니다.
스포츠에도, 우리 삶에도 기본을 지키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그리고 기본을 지키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것도 없습니다.
각자의 분야에서 최고가 되는 길..., 소수만이 갖고 있는 특별한 재능이 아니라 우리 모두 할 수 있는 '기본'.
그 기본이면 충분합니다.
기본을 철저하게 지키십시오.
당신은 곧 특별해질 것 입니다."
다음은 너무 당연해서 잊어버리거나 잃어버린,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이영표 위원과의 대화.
▲우리 축구대표팀 경기 모습. ⓒKFA |
-선수생활을 마치고 제2의 인생을 살고 계십니다. 급격한 환경 변화를 겪으셨는데, 어떠신지요.
"말씀하신 대로 급격한 환경의 변화였습니다. 지금 하고 있는 해설도 계획한 것은 아니고, 자연스럽게 연결됐습니다. 매일 축구를 하다, 축구를 안 하게 됐습니다. 힘든 것도 사실입니다. 지금도 그 과정 중에 있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축구선수가 되는 것이 꿈이었고, 꿈을 이뤘습니다. 그러나 최선을 다해 꿈을 이룬 것이,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했습니다. 선수 시절부터 그런 것들을 느끼고 있었지만, 선수생활을 계속 하고 있었고 성적을 내야 했기에 깊이 느끼진 못했습니다.
그러다 은퇴하고 그것이 확 느껴졌습니다. 진정한 삶의 가치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행복이란 무엇인가? 자신의 꿈을 이루는 것은 일시적 행복을 줄 뿐, 진짜 행복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만 올 수 있음을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은퇴 후 '삶의 목표는 무엇인가? 왜 사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질문을 많이 했습니다.
결론은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사명이란 특별한 어떤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있는 그곳에서, 목사님이든 선교사님이든 일반 성도님이든 누구든 상관 없이 선교사적으로 살아가는 것이었습니다. 특별한 장소나 일이 아니라 바로 일상에서, 우리가 서 있는 그곳에서 모두 선교사적 사명을 가져야 하고, 그럴 때 비로소 우리는 올바른 삶의 가치와 만족을 느낄 수 있음을 좀 알게 됐습니다."
-다 아는 말씀이지만, 참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아는 것과 믿는 것은 다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고, 다시 오실 것입니다. 이걸 아는 것과 믿는 것은 완전히 다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데, 아는 것을 실제로 믿고 있을까요? 알고 있는데 하지 않는 사람이 있고, 몰라서 못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결론은 같습니다.
진정한 앎이란 무엇일까요? 아느냐 모르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행했느냐 안 했느냐의 문제입니다. 행하지 않았다면, 똑같이 모르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알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 모두 선교사적 삶을 살아야 하지요. 그런데, 아는 대로 살지 않으면 모르는 것입니다. 알고 있었지만, 저를 포함해서 그렇게 살지 않았기에 실은 몰랐던 것입니다. 행동하지 않은 앎은 앎이 아니기에, 행동한 만큼 아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생각이 내가 된다>에서 이 위원은 이렇게 적었다. "사명이란 특별한 일이나 대규모의 프로젝트가 아니었다. 하나님이 나에게 원하시는 사명이란 바로 나의 삶이었다. 반복적이고 지극히 평범한 나의 삶! 이 삶 속에서 하나님은 나에게 선교사적 사명을 요구하고 계셨다.
사명은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거창하거나 위대해 보이는 일이 아니었고, 특별한 능력이 있거나 선택받은 소수 사람들만의 전유물도 아니었다."
-그런 실천(사회적기업)을 직접 하고 계신 걸로 압니다.
"예수님께서 두 가지 명령을 주셨습니다. 말씀을 전하고,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사명이 돼야 하니까,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 또 내가 할 수 있는 환경과 조건 내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지속적으로 사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등을 고민했습니다. 많은 분들과 사랑을 전하고, 지속적으로 할 수 있으며, 누군가에게 용기와 사랑을 줄 수 있는 일을 찾다가 시작하게 됐습니다."
▲이영표 위원은 책에서 "우리가 목표를 향해 나아갈 때 어려움과 고통스러운 순간을 만난다면, 그래서 절망감과 패배감으로 가득 차 일어설 힘조차 없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자신이 발전하고 있다는 증거이며, 성공을 향해 제대로 가고 있다는 사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길에서 위기를 만날 때마다 슬퍼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뻐해야 한다"고 전했다. ⓒ김신의 기자 |
-어딜 가도 자신을 알아보는, 소위 '유명인'으로 살고 계신데요. 그 속에서 중심을 잃지 않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시는지요.
"오히려 좋을 수 있습니다. 언제나 누군가 보고 있다고 생각하니까요(웃음). 그런 생각은 합니다. 어떤 사람이 올바르지 못한 행동을 하면 주변 사람들 몇몇만 알겠지만, 알려진 사람이 그런 행동을 하면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된다고요. 그런데 그가 기독교인이라면, 더 나쁜 메시지를 줄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런 것들이 제겐 두려움입니다.
책에도 썼는데, 제 경력의 정점이라고 생각하던 토트넘 시절 '겸손한 사람이 돼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가장 높은 곳에 있을 때 겸손해야 진정한 겸손이 아닐까 했습니다. 그래서 2년간 기도하고 묵상하면서 겸손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2년간 겸손을 묵상했으니, 나는 좀 겸손한 사람이지'. 교만함이 나타난 것입니다. 겸손의 끝에서 잡은 것이 교만함이었습니다. 그리고 저 스스로에게 절망했습니다. '아, 나는 존재적으로 겸손할 수 없는 사람이구나. 그런데 겸손하려고 했구나.' 그때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영원히 겸손할 수 없다는 걸 인정하는 사람이 되자'고요."
-책 속 '노력'에 대한 이야기가 인상적입니다. 위원님이 '노력'에 대해 말씀하시니 반박을 못하겠습니다. 그리고 너무 논리적입니다.
"노력하면 다 성공하나요? 사람들은 노력과 성공을 연결시키려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바로 되는 길은 절대 없습니다. 우리가 보장(guarantee)할 수 있는 것은, 노력하면 발전한다는 것입니다. 더 노력하면 더 발전하지요. 더더욱 노력하면 더더욱 발전하고.... 기본적으로 이걸 의심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노력하지 않으면서, 노력하는 것을 비난만 하기 시작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노력하길 원하시는데, 많은 청년들이 노력은 하지 않고 자신의 게으름을 '세상적인 것은 필요없다. 하나님이 계시니까...' 하는 식으로 포장합니다. 게으름을 변명하기 위해, 노력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노력해서 성공한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성공이란 무엇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성공은 행복을 가져다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노력해야 하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이 성실하셨으니, 우리도 성실해야 합니다. '세상적인 것에 관심없어' 하는 말 속에, 게으름과 나태함도 보인다는 것입니다.
성공을 우상화하는 청년들도 물론 있지만, '하나님이면 돼' 하면서 자기 자신을 속이는 청년들도 있습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하고, 결과를 하나님 앞에서 맡겨야 합니다. 전제 조건은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기도도 일종의 '노력'일 수 있을까요.
"네, 그렇습니다. 기도는 '노동'일 수도 있습니다. 노동 하니 이미지가 별로 같지만, 노동(work)은 원래 신성한 것입니다. 노동이라는 말 속에 '하기 싫은데 억지로 한다'는 느낌이 있기 때문인데, 노동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것이고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입니다. 동물이 노동하나요? 노동은 정말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기도도 노력이고 노동일 수 있습니다. 축구도 그렇지요. '노동'은 일이고, 일은 신성한 것입니다.
기도에도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하나님을 찾지 않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악한 존재니까요. 그런데 하나님을 찾는다는 것 자체가 당연히 노력이고, 선함입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