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방한한 팀 켈러 목사(Timothy Keller)는 한국에서 무엇보다 책으로 널리 알려졌다. 팀 켈러의 책은 <팀 켈러의 기도>, <팀 켈러의 센터처치>, <팀 켈러의 내가 만든 신> 등 3년 연속 선정되고 있다. 이 외에 <팀 켈러의 설교>, <팀 켈러의 하나님을 말하다>, <팀 켈러의 일과 영성>, <팀 켈러, 결혼을 말하다> 등도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최근에는 그의 '복음, 도시, 운동'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돕기 위해 마이크 호튼, 팀 체스터, 앨런 허쉬 등 신학자들과의 토론을 담은 '센터처치 시리즈'도 나왔다. 최근 나온 팀 켈러의 주요 저서들을 살펴본다.
◈예수와 함께 통과하는 인생의 풀무불
팀 켈러, 고통에 답하다
팀 켈러 | 최종훈 역 | 두란노 | 544쪽 | 25,000원
"우리가 풀무불 속에 있을 때 주님은 친히 그 한복판에 뛰어드셨다. 덕분에 돌이켜 그분을 바라보면서 우리도 검불처럼 소진되는 게 아니라 크고 고운 인간으로 빚어지리라는 사실을 온 마음으로 깨닫게 된다."
원제 'Walking with God through Pain and Suffering'인 이 책은 팀 켈러 목사가 방한해 한국 그리스도인들과 만난 지난 4일 북콘서트의 주제이기도 했다.
이 책은 풀리지 않는 인생의 숙제이자 수수께끼인 '고난(고통)'을 해석하려 했던 다양한 시도들을 역사 속에서 돌아보고(1부), 성경과 기독교가 말하는 '고난 신학'을 배우고(2부), 고통의 순간들을 예수와 함께 통과하는 법을 알려주고(3부) 있다. 그리고 각 장이 끝날 때마다 하나님과 더불어 시련을 돌파한 인물들의 실제 사연을 실으면서 '이론과 실제'를 망라했다.
이렇게 세 가지로 고난을 다루는 이유는, 한 가지 시점에 매인 처방으로는 고난이라는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에 도저히 답할 수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팀 켈러는 '선하고 정의롭고 사랑이 넘치는 하나님이 어찌 그리 참담하고 썩어 문드러지고 고통스럽고 괴로운 일들을 허락하실 수 있는가?'라는 오랜 질문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많은 이들이 고통과 고난을 통해 하나님을 만났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
그러면서 고난을 '뜨겁게 달아오른 풀무불'에 빗댄다. 뜨겁게 달아오른 물질은 가혹한 고난과 고통을 줄 수 있지만, 당당히 맞서서 믿음으로 견디면 더 훌륭하고, 강건하며, 고귀한 성품과 활기찬 기운이 넘치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난은 악으로 악을 막는 도구가 될 수 있다. 파괴적인 악의 의도를 무산시키고 어둠과 죽음에 빛과 생명을 끌어들이는 것이다."
'당장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비현실적 이야기처럼 들릴 가능성이 크다'는 1부는 문화와 종교와 시대에 따라 어떤 방식으로 인간들이 고난에 맞서고 헤쳐 나가도록 도왔는지 짚어보고, 신정론을 포함해 '악의 문제'에 대한 대표적인 철학 논의도 훑어본다. 그 결론은 세속적 인생관은 시련을 겪는 이들에게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기독교의 이야기는 이와 달리, 고난과 고통은 하나님을 외면하고 등을 돌린 결과이므로,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 인류를 구원하시려고 친히 걸으셨던 길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제는 우리도 그리스도처럼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는 통로이자 세상에 구세주의 사랑과 영광을 드러내는 결정적인 수단이다. "삶과 영혼의 온갖 실상을 자각하게 만드는 고통이 없이는, 하나님을 찾게 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이 성경의 주요한 가르침이다."
성경은 세상의 고통이 인간이 저지른 죄의 결과라고 말하지만, 인간이 겪는 역경들 하나하나가 모두 특정한 죄의 결과는 아님을 동일하게 강조한다. 그래서 팀 켈러는 "고난은 정당한 동시에 부당하다"고 한다. 그리고 다른 종교와 달리 기독교만이 '특이하게도' 신이 스스로 연약해져서 고난을 받으셨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고통은 인간을 향한 것이다. "마음을 주면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누군가를 사랑할수록 상대방의 아픔까지 떠안게 되기 마련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도 바로 그런 것이었다. 인간이 되셨기에 우리가 겪는 고난에 대해 정확히 아신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이들이 고난을 당할 때, 주님 역시 그 환란의 풀무불 속에서 타오르는 불꽃을 느끼시며 문자 그대로 우리와 '함께 머무실 수 있다."
기독교 신학은 고난에 의미가 있다고 가르치고, 주님은 고난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고난을 '통해' 그분의 뜻을 이루고 계신다. 고난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다. 고난은 그리스도가 친히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우리같이 되심으로써 인류를 구속하신 방법이며, 우리가 주님같이 되어 주님의 대속을 경험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이기도 하다. 그래서 고난은 고통스럽지만, 그럼에도 목적이 있고 분명 쓸모가 있다.
고난은 스스로를 바라보는 시선을 바꿔 놓고, 고난 앞에서 인간은 자신의 연약함과 마주한다. 고난은 우리 삶의 여러 좋은 것들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완전히 바꾸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탄탄하게 만들며, 출구를 찾을 수 없는 막다른 길로 우리를 몰아 하나님께 기도할 수밖에 없게 한다.
또 고난을 통과하지 않고는 고통스러운 누군가를 위로할 수 없다. 그리고 우리가 고난을 당할 때 제대로 대처하거나 다른 이들이 올바르게 맞서도록 도우려면, 고난의 '다양성'을 인식해야 한다. 그래서 팀 켈러는 △자기 죄에서 비롯된 고난(요나와 다윗) △배신에서 오는 고난(바울과 예레미야) △상실에서 오는 고난(마리아와 마르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고난(욥) 등 성경 속 4가지 사례를 설명한다. 역경을 겪는 사람의 성격과 기질 등 내면의 요소들도 고난의 성격을 다양하게 만들기에, 시련은 사실상 모두 독특하다. 그러므로 누군가의 고난을 함부로 판단하거나, 그래서 영적·신학적 교훈부터 주려고 해서는 안 된다.
이어지는 3부에서는 닥쳐오는 고난을 어떻게 통과해야 할지, 그 실제를 다루고 있다. 하나님과 함께 고난을 통과한다는 말은 눈앞의 문제와 괴로움, 두려움에서 즉시 구원을 받는 경험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더구나 고난을 극복하는 일련의 단계나 매뉴얼, 조리법 같은 것은 없다. 지금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고 기도하면서, 감사하고 사랑하고 소망하면서, 날마다 규칙적으로 걷는 활동을 꾸준히 되풀이할 때만 찾아오는 느리고 점진적인 발전이다.
"더없이 캄캄하고 메마른 시기를 지내며 하나님을 조금도 느낄 수 없을지라도, 그분은 여전히 거기에 계신다. 고난에 맞서는 기본 중의 기본이 여기에 있다. 욥처럼 하나님을 찾고 그분께 나아가야 한다. ... 풀무불을 나란히 통과해서 반대편으로 데려가 주실 분은 오직 참 하나님뿐이다."
▲두란노에서 발간된 팀 켈러의 저서들. |
◈하나님 없이 세상을 설명할 수 있을까
팀 켈러의 답이 되는 기독교
팀 켈러 | 윤종석 역 | 두란노 | 424쪽 | 20,000원
이 시대 전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세속주의(Secularism)' 관점의 신념과 주장을 기독교의 신념 및 주장과 비교하면서, 대담하게도 복잡한 세상과 인간 경험에서 '어느 쪽이 더 말이 되는지'를 따지고 있다. 마치 바알·아세라 선지자들과 850대 1로 싸웠던 '엘리야'를 연상케 한다.
원제 'Making Sense of God'으로, 앞서 나온 하나님과 기독교를 믿을 수 있는 일련의 이유들을 논증한 책 <팀 켈러, 하나님을 말하다(The Reason for God)>과 함께 그가 쓴 변증서이다. 팀 켈러가 시무했던 뉴욕 리디머장로교회에서는 신의 존재나 초자연 세계에 회의적인 사람들을 위해 매주 토론장을 마련했고, 이는 책의 토대가 됐다.
팀 켈러는 먼저 1부에서 '세상이 점점 세속화되어 간다'는 억측, '종교가 없는 세속적인 사람의 인생관이 주로 이성의 산물이다'는 신념을 각각 강하게 논박한다. 이어 2부에서는 세속주의의 주요 주장들을 (가끔 타종교도 언급하면서) 하나씩 낱낱이 깨부순다. 3부에서는 '하나님을 신앙하는 것, 기독교 신앙'이 '가장 말이 되는 선택'이자 '답을 줄 수 있는 것'임을 역설한다. 전체적으로 수많은 철학자와 관련도서가 등장하는 <팀 켈러, 고통에 답하다>와 비슷한 형식이다.
'굳이 신을 믿지 않아도 된다', '복음에는 문화적 시의성이 결여돼 있다', '사고하는 인간이 기독교를 합리적이라 받아들일 일은 거의 없다'는 수많은 회의론자들에게, 그는 "기독교는 정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가장 이치에 맞고, 삶의 본질적 요소, 즉 의미와 만족, 자유와 정체성, 도덕적 나침반과 희망 등을 가장 예리하게 설명해 주며, 인간의 필연적 욕구를 채워 줄 자원을 제공하는 데 단연 독보적"이라고 시작부터 단언한다.
'종교가 왜 계속 살아남아 성장하는지'의 문제에 대해, 그는 "많은 사람이 보기에 세속 이성에는 삶을 잘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뭔가가 빠져 있다", "허다한 사람이 자연 세계 너머 초월의 세계를 직관으로 인식한다"고 답한다. "사람들이 신을 믿는 이유는 그저 정서적 필요성을 느껴서가 아니라, 그래야 자신이 보고 경험하는 바가 말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속주의를 향해서는 "'신앙의 부재'가 아니라 '새로운 신앙'"이라고 일갈한다.
예를 들어 '삶의 의미'에 대해, 세속주의는 사실상 답할 수 없다. 이러한 본질적 질문에 대해, 세속주의 사상가들은 '동굴이 유의미한지 무의미한지, 폭설이 참인지 거짓인지 따위를 말하지 않듯' 삶에 자체적인 의미란 있을 수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상가들의 '왜 사서 고생이냐'는 이 물음에 사람들은 의아해한다.
기독교인의 삶이 풍성한 이유는, 기독교가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에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를 받아들이기 전에는 삶의 의미가 풍성하지 못했다고 느낀다. 삶의 궁극적 의미가 하나님을 알고 기쁘시게 하고 본받고 그분과 함께하는 것이라면, 고난조차 삶의 의미를 강화해줄 뿐이다. 기독교인이 의기소침하고 삶을 무의미하게 느낀다면, 어떤 의미에서 그는 충분히 이성적이지 않다.
"우리는 우리 쪽에서 나가서 의미를 찾아야 하는 게 아니라, 의미이신 그분이 친히 우리를 찾으러 세상에 오셨다고 믿는다. 그분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죽음의 수용소조차도 앗아갈 수 없는 삶의 목적을 얻을 수 있다. ... 예수님은 각 개인과 문화를 찾아오셔서 우리의 가장 깊은 갈망과 최고의 동경을 채워 주겠다고 제의하신다. 우리를 불러 회개하고, 전부를 그분 안에서 찾으라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