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도는 다른 무도에 비해 몸을 보호하는 호신구를 착용하기에 운동하다가 부상당할 확률이 비교적 적어서 운동 중에 다치는 경우가 거의 없을 만큼 안전합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운동하다가 다친 기억이 별로 없고 주변에서도 검도하다가 다쳤다는 이야기도 별로 듣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지난 월요일 저녁에 운동을 하다가 왼쪽 다리 종아리 근육을 다쳤습니다. 검도를 다시 시작한 이후 운동하기 위해 호구를 입을 적마다 호구에 밴 땀 냄새를 맡으면서 마치 3-40년 전으로 돌아 간듯해서 좋고, 게다가 꾸준히 운동을 한 덕분에 몸도 많이 건강해져서 더더욱 좋은데,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운동하는데 비해 기술은 그리 향상되지 않는 것입니다. 최근에는 한국만이 아니라 세계 검도계에서도 탁월한 실력을 인정받는 분이 이곳 워싱톤에 오셔서 가끔씩 그분의 지도를 받는데 지도받을 때는 할 수 있을 것 같다가도 막상 실제로 하려고 하면 잘 되지 않아서 은근히 속이 상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월요일에는 스파링(자유대련)하는데 상대방의 허점이 그렇게 잘 보이고 허점이 잘 보이니까 공격 또한 잘되는 겁니다. 이렇게 상대방을 제압한다싶으니까 운동을 꽤나 많이 했는데도 별로 지치지도 않고 힘든 줄도 몰랐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신나게 운동하다가 상대방 머리를 공격하려고 들어가는데 갑자기 왼쪽 종아리를 누군가에게 맞은 듯싶더니 그만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사실은 그날 몸이 안 지친것이 아니라 많이 지쳤는데도 지친 줄을 모른 것이고, 힘이 안든 것이 아니라 힘이 많이 드는데도 힘든 줄을 모른 것입니다. 그래서 저도 모르는 사이에 무리를 했나봅니다. 조금만 더하려고 하는 작은 욕심이 생활의 커다란 불편을 가져온 셈입니다.

다리를 다친 다음날인 화요일부터 꼭 참석해야하는 회의가 애틀랜타에서 있어서 비행기 여행을 해야 하겠기에 부득이 휠체어 서비스를 요청하여 오가는 공항에서 휠체어를 타고 다녔습니다. 평소에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이들을 본적은 많지만 제가 직접 휠체어를 타보기는 이번이 처음이라서 좀 어색하기도 하고 쑥스럽기도 했지만 휠체어를 타고 공항을 오가면서 평소에는 생각하지 못한 것을 새롭게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공항에서 휠체어를 타고 다녀 보니 공항에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이들이 참 많다는 것을 새삼 알았습니다. 물론 휠체어를 타리라고 생각조차 하지 않던 제가 탄 탓도 있지만 휠체어 탄 이들이 많이 보인 것은 요즘 들어 휠체어를 탄 이들이 부쩍 많아져서 라기보다는 제가 휠체어를 타고 보니 평소에는 잘 보이지 않던 휠체어가 제 눈에 잘 띤 탓일 것입니다. 같은 사실이라도 자신의 처한 형편에 따라, 보는 관점이 달라지고, 작은 관점의 차이가 같은 사실도 사뭇 다르게 분수 있다는 것을 새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휠체어를 타니 휠체어를 탄 이들만 눈에 많이 띄는 것이 아니라 공항도 달라 보였습니다. 워싱톤 공항은 물론이고 애틀랜타 공항도 꽤 자주 다녀 제게 익숙한데도 많이 달라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니 공항의 시설이나 환경이 달라져서가 아니라 같은 공항, 같은 시설인데도 그동안에는 서서 걸어 다니면서 보다가 이번에는 휠체어에 앉아서 보니까 걸어 다닐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앉으니 비로소 보인 겁니다. 서서 보는 눈높이와 휠체어에 앉아서 보는 눈높이의 차이가 불과 1미터도 되지 않는데도 그 작은 눈높이, 시선의 차이가 그렇게 달라 보인 것입니다.

회의하는 동안 식사하러 가거나 숙소로 가기 위해 여기 저기 이동하는데 이동할 때마다 다리가 불편한 저는 일행보다 항상 뒤로 쳐지곤 했습니다. 아마 함께 다닌 일행들이 제가 다리를 다쳐서 걷기에 불편하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모두가 평소 자기가 걷는 보폭으로 걸어가니까 자연히 저는 뒤로 쳐지게 된 셈입니다. 그러다가 일행 중에 어떤 이가 의도적으로 자신의 발걸음을 늦추어 저를 기다렸다가 같이 걸어주면 그 배려가 따스하게 느껴졌습니다. 생각해보면 그리 어렵지 않은 작은 배려인데 그런 것이 사람의 마음을 정겹게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조금 더 하겠다는 작은 욕심으로 인해 얻은 부상 때문에 생활하는 데는 불편하지만 그로인해 얻은 깨달음 때문에 감사한 마음으로 며칠을 보내고 있습니다. 조금만 형편이 달라져도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크게 달라지고, 바라보는 시각이 조금만 달라져도 평소에 안보이던 것들이 눈에 보이고, 눈높이를 약간만 낮춰도 평소에 지나쳐버린 것들이 눈에 뜨이고, 작은 배려가 마음을 따스하게 하는... 이러한 작은 변화의 소중함을 마음에 새기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휠체어를 타니 복잡한 공항 보안 검색을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지 않고 별도 검색대를 통과하는 특혜(?)를 누리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냥 걸어 다닐 수 있는 평범한 일상(日常)이 은총임을 감사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글 이승우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