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아의 영향력있는 월간잡지인 '조지아 트렌드' 6월호에 '2013년 파워우먼' 중 한 사람으로 AALAC 헬렌 김 호 대표가 선정돼 눈길을 끌고 있다.

다른 세 명의 여성들과 함께 실린 인터뷰 가장 앞에 나온 헬렌 김 호 대표는 수입이 높은 안정적인 직장을 버리고 아시안 어메리칸들의 권익옹호와 봉사를 위해 AALAC를 설립하게 된 동기와 활동들, 어릴 적 어메리칸 드림을 안고 온 부모님 이야기 등을 나눴다. 

 "큰 가지를 가진 큰 나무가 되어 네가 할 수 있는 한 많은 사람들에게 그늘과 편안함을 주라"고 말씀하시던 아버지의 조언을 따라 AALAC를 시작했지만, 오히려 처음에는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혀 힘든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고 회상한 그녀는 "하지만 결국 가장 큰 후원자로 자신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신다"고 감사함을 드러냈다.

다음은 기사 내용 요약.

헬렌 김 호는 '어메리칸 드림'의 성취였다. 그녀의 부모님이 헬렌이 3살일 때 한국에서 안정적이고 존경 받는 직업인 '선생님'을 버리고 미국으로 온 것은 꿈을 이루고 자녀들에게 더 나은 기회를 제공해 주고 싶어서였다.

헬렌의 부모님이 '깊은 남부'인 사우스 캐롤라이나로 이민 와 처음 일한 곳은 공장이었다. 이후 신발 수리점, 보석가게, 가발가게 등 몇 개의 스몰 비지니스를 열었고, 애틀랜타로 이주한 이후에는 리커 스토어를 하고 있다.

"저의 아버지는 '우리가 이곳(미국)에 와서 가장 초점을 맞추는 것은 너에게 좋은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러니 네가 할 일은 그 이상을 하는 것이다. 큰 가지를 가진 큰 나무가 되어 네가 할 수 있는 한 많은 사람들에게 그늘과 편안함을 제공하라'고 말씀하시곤 했어요"러고 변호사이자 디케이터에 사무실을 둔 AALAC를 창립자인 헬렌 김 호는 이렇게 밝혔다.

"아버지는 항상 너 자신만 위하지 말고 다른 사람들을 섬기기 위한 무엇인가를 하라고 강조하셨죠."

'자연스럽게' 헬렌은 월급이 높았던 변호사 자리를 박차고 나와 2010년 AALAC를 시작하게 된다. 처음에는 그녀의 이런 결단에 큰 충격을 받았던 부모님도 결과적으로는 그녀를 매우 자랑스럽게 여기게 됐다고. 

"아이러니하게도 부모님은 처음에는 저의 결정에 진노하셨어요. 엄마는 전화로 '넌 결혼도 안 했고, 좋은 직업도 없어졌으니 난 더 이상 뭘 자랑하겠니?'라고 말씀하시기도 했죠. 당시에는 저의 선택이 매우 힘들었습니다"라고 밝힌 헬렌 김 호 대표는 2010년 AALAC를 시작하고 일년 동안은 무급으로 일했다고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녀의 부모님은 많은 지원을 아낌없이 해줬고, 딸이 하는 일을 적극 지지하게 된다.

AALAC를 설립하기 전 그녀는 휴스톤에서 노동과 고용법 분야 변호사로 일하고 있었는데, 이것을 '지역사회 변호사 일'이었다고 회상한다. 당시 아시안 법률 센터에서 봉사하면서, 지역 아시안 어메리칸들의 인식을 깨우고 교육해 지역 선거관리위원회를 압박해 연방법을 따라 (필요한) 무기명 투표를 이끌어 내기도 했고, 많은 베트남 유권자들을 위해 통역하는 일도 했다.

"(이 일을 하면서) 가장 감동적인 것은 아시안 어메리칸들 결심하고 우리를 돕고자 변화될 때입니다. 선거날 그들은 자신의 시간을 대가 없이 제공하곤 합니다. 이것이 바로 AALAC에서 하는 일입니다. 현장에서 사람들의 목소리에 가치를 실어주고 이를 대표하며, 파트너십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우리 커뮤니티에서 우리가 가진 신뢰와 신의는 우리의 가장 큰 힘입니다. 이것이 없으면 우리도 없죠."

헬렌 김 호 대표는 짧은 시간이지만 '새로운 미국인들'의 권리를 위협하는 반이민법이나 정책들을 정기적으로 올리는 조지아 정치인들에 맞서 많은 일들을 이뤄 냈다.

"우리는 사람들이 행동을 취하고 움직이도록 많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슈들은 복잡하고 우리가 섬기는 커뮤니티 역시 복잡합니다. 여기에 문화적 이슈까지 더해지지요. 그래서 우리는 문제를 가져오는 개인을 돕고,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이슈들인 경우 힘을 모아 정책의 변화를 이끌어 내기도 합니다. 사이버 왕따에 대해 연설하게 한 것은 아주 좋은 예입니다."

라오스계인 그녀의 친구 아들이 학교에서 일년 정도 왕따를 당해왔다. 이 문제를 접한 AALAC 측은 문제를 파해쳤고, 아시안 어메리칸 십대들이 다른 인종들에 비해 왕따를 당하는 비율이 높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들은 이 문제를 공화, 민주 양당에 전달해 법안을 제정하게 했고, 이를 막아야 한다는 연설을 이끌어 내는 성과를 얻었다. 또한 영어로만 운전면허 필기시험을 보게 하자는 법안이 수년간 상정되었는데, AALAC와 다른 그룹들이 힘을 모아 이를 막아내기도 했다. 아시안 어메리칸의 경우 약 40퍼센트 가량이 언어의 장벽이 있으며, 이것이 가장 큰 문제이기도 하다.

"이건 정말 흥미로운 여행입니다"라고 말한 헬렌은 "당신도 알다시피, 나는 나 자신을 '수퍼 아시안'이나 뭐 그런 것으로 생각해 본적이 없어요. 하지만 나는 사회 정의와 시민 권리에 관심이 있습니다. 나와 사랑에 빠진 성장해 가는 커뮤니티가 성취해 가야 하는 문제죠"라고 인터뷰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