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도 벌써 반이 넘게 지나갔습니다. 무더웠던 한국의 여름도 한풀 꺾인듯 아침 저녁으로는 선선하다는 느낌이 드는 날도 있었습니다. 아마 제가 이곳의 날씨에 적응이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내와 저는 이곳에서 장인어른이 한국의 국민으로 다시 돌아와 사시는데 필요한 여러가지 절차를 한가지씩 잘 해결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다음 주에 한가지의 일이 더 남아 있고, 저는 목요일에 시애틀로 돌아가게 됩니다.

지난 주에는 대전에 있는 국립 현충원이라는 곳을 다녀왔습니다. 그곳에는 장인어른의 부모님, 제 아내의 조부모님이 모셔져 있습니다. 제 아내의 조부님은 독립유공자이십니다. 그래서 그곳에 모셔지게 되었습니다. 그곳으로 이장 된 것이 2000년의 일이라 장인어른도 그곳에 한 번도 다녀오신 적이 없었습니다. 이번에 장인어른을 모시고 먼 거리이지만 대전까지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그곳에는 참 많은 분들이 계셨습니다. 그곳에 들어서서 수많은 묘비들을 보는 순간 가슴이 찡해 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독립유공자들도 계셨지만 그외에 한국전쟁이후의 크고 작은 일들로 인해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의 묘비들이 줄을 지어 있었습니다. 제 아내의 조부모님을 모신 곳 바로 옆에는 연평해전 전사자들의 묘지가 있었습니다. 꽃다운 나이에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그 일들을 결코 이 나라가 잊지 않겠다는 의지로 그곳에 묻고 묘비를 세우고, 꽃을 꽂아 놓으며 그분들이 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한 일들을 결코 헛되게 하지 않겠다는 나라의 뜻을 그 국립현충원의 모습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 한국이 지금 누리고 있는 풍요로움이 결코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희생의 값을 통하여 얻어진 것이라는 것을 느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지금 누리고 있는 이 신앙의 뿌리도 결코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라 수 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땀과 피의 결과라는 것도 다시 느끼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나라를 위해서 목숨을 바칠 수 있습니다. 국립현충원에 모셔진 많은 분들이 그런 사실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사람은 또한 하나님을 위해 생명을 내어 놓을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사의 많은 순교자들이 그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한 번 사는 인생, 우리가 사는 것도 멋있게 살아야 하지만, 우리의 죽음도 후세에 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나의 삶과 죽음을 통해서 후세의 사람들은 무엇을 느끼게 되는가? 그러기 위해서 오늘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리고 어떻게 주님의 만날 준비를 하여야 하는가? 나의 모습을 보며 사람들은 가슴이 찡해 옴을 느낄 것인가? 아니면 그냥 또 하나의 그렇고 그런 사람의 인생이라고 볼 것인가? 이런 것들을 생각하게 한 한주였습니다.

형제의 삶의 모습도 다른 사람에게 감동을 주게 되는 인생이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보내시고, 지금까지 복을 주시며 기대하고 계신 것이 있을 것입니다. 그 기대를 멋지게 이루어 드리며, 다른 사람들에게 가슴이 찡할 감동을 주는 인생을 사시는 형제가 되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