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주일을 며칠 앞둔 지금 내셔날지오그라픽은 지난 9일 케이블 채널을 통해서 “유다복음”이란 것을 공개했다. 파피루스에 쓰인 이 사본은 1970년대 이집트에서 도굴꾼들에 의해 발굴되었으나 그때만 해도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러던 것이 정작 학자들의 관심을 끌게 된 것은 한 고미술상이 이를 미국의 학자들에게 300만 달러에 팔겠다고 제안하면서부터이다. 그 뒤 이문서는 여러 명의 주인을 거쳐서 이집트에서 유럽으로 건너갔다가 최종적으로 미국으로 왔으며 현재 소유주는 스위스에 본부를 두고 있는 “메세나 고미술재단”이다.
“메세나” 재단은 뉴욕 주 힉스빌의 안전상자에서 1000여개로 조각이 난 채 16년간 보관되었던 26쪽의 이 사본을 지난 5년 동안 퍼즐맞추기식으로 작업을 해왔으며 현재 전체 분량의 80%가 맞추어진 상태라 한다. “메세나” 측은 이 문서는 1700여 년 전 만든 것으로 진품임을 확신한다했다.
물론 가룟 유다가 쓴 것이 아닐 것이다. 아마도 유다의 추종자들이 유다의 죽음 후 훨씬 뒤에 쓴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문제는 그 내용이 충격적일뿐 아니라 참으로 그럴듯하게 묘사되어 속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 기독교에서 인지하고 공인된 사복음서와 전혀 내용이 상이하다.
그 내용은 유다가 예수를 로마군에 밀고한 배신이 사실은 예수의 지시와 가르침에 따른 것이라는 내용이다. 뿐만 아니라 가룟 유다는 예수의 존재와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한 제자라는 것이다. 유다복음에 따르면 예수는 유다를 따로 불러 “너는 그들(다른 제자들) 모두 능가할 것이다. 너는 인간의 형상으로 이 땅에 온 나를 희생 시킬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즉 예수님은 죽음의 예언을 실현키 위해 유다에게 자신을 고발할 것을 지시했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육신적 부활이 아닌) 죽음으로써 육체를 벗어나 참된 영적인 존재가 된다는 진리를 가룟 유다에게만 알려줬다는 것이다. 이를 모르고 있던 다른 제자들은 결국 가룟 유다를 배신자로 낙인찍었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유다에게 “너는 오랫동안 저주 받겠지만 그들을 다스릴 것”이라고 했다고 유다복음은 말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을 보자.
<마태복음 26:14-16>
“그때에 열둘 중에 하나인 가룟 유다라 하는 자가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말하되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 주거늘 저가 그때부터 예수를 넘겨 줄 기회를 찾더라.”
<마가복음 14:10-11>
“열둘 중에 하나인 가룟 유다가 예수를 넘겨 주려고 대제사장들에게 가매 저희가 듣고 기뻐하며 돈을 주기로 약속하니 유다가 예수를 어떻게 넘겨 줄 기회를 찾더라.”
<누가복음 22:3-6>
“열둘 중에 하나인 가룟 인이라 부르는 유다에게 사단이 들어가니 이에 유다가 대제사장들과 군관들에게 가서 예수를 넘겨 줄 방책을 의논하매 저희가 기뻐하여 돈을 주기로 언약하는지라. 유다가 허락하고 예수를 무리가 없을 때에 넘겨 줄 기회를 찾더라.”
말씀을 보라!
<마태복음 26:21-25>
“저희가 먹을 때에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하시니 저희가 심히 근심하여 각각 여짜오되 주여 내니이까?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리라. 인자는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 대로 (이사야 53:7-9, 시편 41:9, 다니엘 9:26)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예수를 파는 유다가 대답하여 가로되 랍비여 내니이까? 대답하시되 네가 말하였도다 하시니라.”
<마가복음 14:18-21>
“다 앉아 먹을 때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한 사람 곧 나와 함께 먹는 자가 나를 팔리라 하신대 저희가 근심하여 하나씩 하나씩 여짜오되 내니이까? 이르시되 열둘 중 하나 곧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자니라. 인자는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22:21-23>
“그러나 보라! 나를 파는 자의 손이 나와 함께 상 위에 있도다. 인자는 이미 작정된 대로 가거니와 그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하시니 저희가 서로 묻되 우리 중에서 이 일을 행할자가 누구일까 하더라.”
<요한복음 13:18-32> (참조)
성경은 이와 같이 진술하고 있다.
반면 “유다복음”은 만찬 사흘 전에 예수님이 유다에게 밀고를 지시하셨다고 한다.
이 유다복음은 유다의 위상만 바꾼 것이 아니라 학자들은 기독교의 근간인 부활자체에 의문을 주는 충격사건으로 이것을 보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유다복음은 유다가 예수를 고발하는 것으로 끝나고 있다. 부활대목이 없다. 예수가 육신을 벗어나는 것으로 영생을 얻기에 굳이 무덤에서 되살아나 승천하시는 과정이 불필요하다는 해석이다.
그럼 이 같은 것이 왜 출몰하였는가?
이것은 예수님의 사후 서행했던 영지주의 (Gnosticism)의 영향으로 분석된다. 영지주의는 육체와 정신을 나누는 이(二)원론으로 인간이 어떤 직관(신비로운 지식)을 통해 육체를 벗어남으로써 신과 같은 영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고 믿는데서 연유된다. 따라서 그들은 구원을 위한 (예수님의) 부활의 의미를 불필요하다 인식했다. 그러기에 기독교는 이와 같은 영지주의를 기독교 초기에 이단으로 규정했다. 리옹의 아레니우스 주교는 AD 180년 그의 쓴 글에서 유다복음을 이단으로 정죄한바 있다. 이번에 공개된 유다복음은 아레니우스 주교가 탄원한 그 복음서의 이집트 판이 아닌가 추정이 된다.
결국 이번 유다복음이 진품이라 해도 이것은 영지주의자가 가룟 유다를 옹호하기 위해 지어낸 이야기일 뿐이지 전혀 진실성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영지주의의 출몰로 인해서 기독교는 영지주의를 반박하는 과정에서 신학적 체계를 더 깊이 갖추는 계기가 되었다.
<결론>
이미 1700여년에 걸쳐 확립 되어온 기독교 신앙체계가 유다복음의 등장으로 흔들릴 가능성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Dan Brown의 “다빈치 코드”처럼 기독교 근간을 의심하는 작가들의 상상력을 자극할 것이 분명하며 그러므로 신앙의 뿌리가 약하거나 기독교안에서의 이성주의자들은 흔들릴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예수님에 대한 공격은 생존 때뿐만 아니라 지난 교회사 2000년 동안 계속 되어왔다. 그래서 주님은 마태복음 24:4에서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하시지 않았나?
예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이런 경우 쉽게 동요되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미혹하는 영에 자신을 의뢰하는 자들이 많다.
BKPC 성도들은 추호도 흔들림 없이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 주님을 실망시키지 말라. 심지어 유다는 신의 계획으로 예수를 배신하고 그의 명맥을 유지하기 위해 수도생활을 했다는 묘사가 받아들여진다면 그는 지금 사탄의 영에 지배를 받고 있지 않나 조심해야할 것이다.
그래서 주님께선 무어라 하시나?
<누가복음 18:8>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지금도 예수님은 지속적으로 못 박힘을 당하시고 인간들에게서 이토록 능욕을 당하고 계시지 않는가?
서신일 목사(버클리 한인 장로교회 설교) 제공
“메세나” 재단은 뉴욕 주 힉스빌의 안전상자에서 1000여개로 조각이 난 채 16년간 보관되었던 26쪽의 이 사본을 지난 5년 동안 퍼즐맞추기식으로 작업을 해왔으며 현재 전체 분량의 80%가 맞추어진 상태라 한다. “메세나” 측은 이 문서는 1700여 년 전 만든 것으로 진품임을 확신한다했다.
물론 가룟 유다가 쓴 것이 아닐 것이다. 아마도 유다의 추종자들이 유다의 죽음 후 훨씬 뒤에 쓴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문제는 그 내용이 충격적일뿐 아니라 참으로 그럴듯하게 묘사되어 속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 기독교에서 인지하고 공인된 사복음서와 전혀 내용이 상이하다.
그 내용은 유다가 예수를 로마군에 밀고한 배신이 사실은 예수의 지시와 가르침에 따른 것이라는 내용이다. 뿐만 아니라 가룟 유다는 예수의 존재와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한 제자라는 것이다. 유다복음에 따르면 예수는 유다를 따로 불러 “너는 그들(다른 제자들) 모두 능가할 것이다. 너는 인간의 형상으로 이 땅에 온 나를 희생 시킬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즉 예수님은 죽음의 예언을 실현키 위해 유다에게 자신을 고발할 것을 지시했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육신적 부활이 아닌) 죽음으로써 육체를 벗어나 참된 영적인 존재가 된다는 진리를 가룟 유다에게만 알려줬다는 것이다. 이를 모르고 있던 다른 제자들은 결국 가룟 유다를 배신자로 낙인찍었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유다에게 “너는 오랫동안 저주 받겠지만 그들을 다스릴 것”이라고 했다고 유다복음은 말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을 보자.
<마태복음 26:14-16>
“그때에 열둘 중에 하나인 가룟 유다라 하는 자가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말하되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 주거늘 저가 그때부터 예수를 넘겨 줄 기회를 찾더라.”
<마가복음 14:10-11>
“열둘 중에 하나인 가룟 유다가 예수를 넘겨 주려고 대제사장들에게 가매 저희가 듣고 기뻐하며 돈을 주기로 약속하니 유다가 예수를 어떻게 넘겨 줄 기회를 찾더라.”
<누가복음 22:3-6>
“열둘 중에 하나인 가룟 인이라 부르는 유다에게 사단이 들어가니 이에 유다가 대제사장들과 군관들에게 가서 예수를 넘겨 줄 방책을 의논하매 저희가 기뻐하여 돈을 주기로 언약하는지라. 유다가 허락하고 예수를 무리가 없을 때에 넘겨 줄 기회를 찾더라.”
말씀을 보라!
<마태복음 26:21-25>
“저희가 먹을 때에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하시니 저희가 심히 근심하여 각각 여짜오되 주여 내니이까?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리라. 인자는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 대로 (이사야 53:7-9, 시편 41:9, 다니엘 9:26)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예수를 파는 유다가 대답하여 가로되 랍비여 내니이까? 대답하시되 네가 말하였도다 하시니라.”
<마가복음 14:18-21>
“다 앉아 먹을 때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한 사람 곧 나와 함께 먹는 자가 나를 팔리라 하신대 저희가 근심하여 하나씩 하나씩 여짜오되 내니이까? 이르시되 열둘 중 하나 곧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자니라. 인자는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22:21-23>
“그러나 보라! 나를 파는 자의 손이 나와 함께 상 위에 있도다. 인자는 이미 작정된 대로 가거니와 그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하시니 저희가 서로 묻되 우리 중에서 이 일을 행할자가 누구일까 하더라.”
<요한복음 13:18-32> (참조)
성경은 이와 같이 진술하고 있다.
반면 “유다복음”은 만찬 사흘 전에 예수님이 유다에게 밀고를 지시하셨다고 한다.
이 유다복음은 유다의 위상만 바꾼 것이 아니라 학자들은 기독교의 근간인 부활자체에 의문을 주는 충격사건으로 이것을 보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유다복음은 유다가 예수를 고발하는 것으로 끝나고 있다. 부활대목이 없다. 예수가 육신을 벗어나는 것으로 영생을 얻기에 굳이 무덤에서 되살아나 승천하시는 과정이 불필요하다는 해석이다.
그럼 이 같은 것이 왜 출몰하였는가?
이것은 예수님의 사후 서행했던 영지주의 (Gnosticism)의 영향으로 분석된다. 영지주의는 육체와 정신을 나누는 이(二)원론으로 인간이 어떤 직관(신비로운 지식)을 통해 육체를 벗어남으로써 신과 같은 영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고 믿는데서 연유된다. 따라서 그들은 구원을 위한 (예수님의) 부활의 의미를 불필요하다 인식했다. 그러기에 기독교는 이와 같은 영지주의를 기독교 초기에 이단으로 규정했다. 리옹의 아레니우스 주교는 AD 180년 그의 쓴 글에서 유다복음을 이단으로 정죄한바 있다. 이번에 공개된 유다복음은 아레니우스 주교가 탄원한 그 복음서의 이집트 판이 아닌가 추정이 된다.
결국 이번 유다복음이 진품이라 해도 이것은 영지주의자가 가룟 유다를 옹호하기 위해 지어낸 이야기일 뿐이지 전혀 진실성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영지주의의 출몰로 인해서 기독교는 영지주의를 반박하는 과정에서 신학적 체계를 더 깊이 갖추는 계기가 되었다.
<결론>
이미 1700여년에 걸쳐 확립 되어온 기독교 신앙체계가 유다복음의 등장으로 흔들릴 가능성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Dan Brown의 “다빈치 코드”처럼 기독교 근간을 의심하는 작가들의 상상력을 자극할 것이 분명하며 그러므로 신앙의 뿌리가 약하거나 기독교안에서의 이성주의자들은 흔들릴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예수님에 대한 공격은 생존 때뿐만 아니라 지난 교회사 2000년 동안 계속 되어왔다. 그래서 주님은 마태복음 24:4에서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하시지 않았나?
예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이런 경우 쉽게 동요되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미혹하는 영에 자신을 의뢰하는 자들이 많다.
BKPC 성도들은 추호도 흔들림 없이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 주님을 실망시키지 말라. 심지어 유다는 신의 계획으로 예수를 배신하고 그의 명맥을 유지하기 위해 수도생활을 했다는 묘사가 받아들여진다면 그는 지금 사탄의 영에 지배를 받고 있지 않나 조심해야할 것이다.
그래서 주님께선 무어라 하시나?
<누가복음 18:8>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지금도 예수님은 지속적으로 못 박힘을 당하시고 인간들에게서 이토록 능욕을 당하고 계시지 않는가?
서신일 목사(버클리 한인 장로교회 설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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