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에는 '비아돌로로사' 라는 길이 있습니다. 이길은 빌라도가 예수님을 재판했던 법정에서부터 골고다에 이르는 약 8백 미터 되는 길을 가리킵니다. '비아'는 길을 뜻하고 '돌로로사'는 슬픔 또는 고난을 뜻합니다. '비아돌로로사'는 고난의 길을 말합니다. 예수께서 몸소 십자가를 지시고 성 밖으로 나가 골고다로 가신 십자가의 길인 것입니다.
예수님에게 있어서 비아돌로로사는 가지 않을 수도 있는 길이었고, 좋아서 가신 길도 아닙니다. 마6:39에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 하시어든 이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하고 기도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러나 이 고난의 길은 하나님의 뜻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십자가의 길을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분명히 아셨습니다. 예수님 자신의 뜻과 하나님의 뜻이 대치될 때 예수님은 자신의 뜻을 버렸습니다. 십자가를 자원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자원한 것입니다. 비아돌로로사는 나를 버린 길이었습니다.
비아돌로로사는 고통의 길이었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예수님의 고통은 육체적, 정신적, 영적고통 이었습니다. 가시관을 쓰시고 무거운 십자가를 메고 가시는 예수님에게 수없는 채찍이 날아와 살점을 찢으며 고통을 주었습니다. 끝내는 양손 양발에 못이 박힌 채 십자가에 높이 달리십니다. 죄인 된 우리의 고통을 대신 받으신 것입니다. 육신적인 고통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 고통의길 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은혜를 입어 귀신의 결박에서 놓임받고 질병에서 치유되고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배불렀던 군중들이 예수님을 조롱하고 비웃으며 그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쳤습니다. 공생애 동안 내내 함께 먹고 마시며 가르침을 받았던 제자들도 다 도망하고 심지어 예수님을 팔아먹은 제자도 있었습니다. 사람으로부터 버림 받는것도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지만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당함은 더욱 심한 고통 이었습니다. 세상죄를 지심으로 철저히 죄인 된 예수님을 하나님은 외면 하셨습니다. [엘리엘리라마사박다니] 비아돌로로사는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길 이었습니다.
비아돌로로사는 모든 것을 버린 길이었습니다. 비록 현재 고난이 있다 해도 언젠가 이 고난이 밑거름이 되어 성공이 있고, 복락을 누릴 수 있다면 견딜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가시는 길은 그 고생 끝에 죽음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슬픔의 길, 고난의 길 끝에는 잔인한 사형대가 준비 되어 있는 것입니다. 수고에 대한 대가가 보장되어 있지 않은 길 오히려 수고의 대가로 쓴 열매가 기다리고 있는 길 이것이 바로 비아돌로로사 입니다. 이 길은 좁은 길이요, 결코 넓은 길이 아닙니다. 이 길은 사람들이 찾지 않는 길이요, 전혀 인기나 보상과는 상관없는 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이 가는 길이 세상 사람이 올 때에는 절망의 길 허무한 길처럼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진리와 생명에 이르는 길은 세상 사람이 볼 때에는 절망의 길 허무한 길처럼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진리와 생명에 이르는 길은 세상의 모든 것을 버려야 하는 길입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는 불구덩이 앞에서 하나님이 건져주시지 않을지라도 우상 앞에 절할 수 없다는 결연한 자세를 보여준 것처럼 보상 때문에 지는 십자가가 아닙니다.
비아돌로로사는 죽음 너머의 길을 보고 가는 길입니다. 보통 사람의 눈에는 비아돌로로사 끝에는 죽음 이외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길을 걷다가 돌아서는 사람이 많은 것입니다. 비아돌로로사 너머에는 생명의 길, 부활의 길이 예비 되어 있습니다. 비아돌로로사는 고난과 죽음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생명의 길이 열려있음을 보여주는 길입니다. 이 세상에서 자기의 삶이 아무 보상도 없이 죽음으로 끝난다 해도 실망하지 않는 사람, 자신을 완전히 비운 사람, 그 사람의 눈에는 골고다 너머의 부활과 영원한 생명의 길이 환히 보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는 사람들은 비아돌로로사를 끝까지 가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친히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를 향하여 비아돌로로사의 길을 가신 예수님께서 오늘 우리를 향하여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지심은 자신의 죄로 인함이 아니요 우리의 죄악으로 인함입니다. 이제 우리가 지고 가는 십자가는 다른 영혼을 위하여 희생할 수 있는 사랑과 헌신의 십자가, 사명의 십자가입니다.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 것이 복음의 원리입니다.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삶은 나도 살고 남도 사는 길입니다. 예수님이 비아돌로로사의 길을 가실 때 이미 나의 죄를 짊어 지셨고, 아니 모든 사람의 죄를 짊어지고 가셨습니다. 이제 우리의 삶은 나를 위한 삶이 아니라 남을 위한 삶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에게 있어서 비아돌로로사는 가지 않을 수도 있는 길이었고, 좋아서 가신 길도 아닙니다. 마6:39에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 하시어든 이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하고 기도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러나 이 고난의 길은 하나님의 뜻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십자가의 길을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분명히 아셨습니다. 예수님 자신의 뜻과 하나님의 뜻이 대치될 때 예수님은 자신의 뜻을 버렸습니다. 십자가를 자원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자원한 것입니다. 비아돌로로사는 나를 버린 길이었습니다.
비아돌로로사는 고통의 길이었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예수님의 고통은 육체적, 정신적, 영적고통 이었습니다. 가시관을 쓰시고 무거운 십자가를 메고 가시는 예수님에게 수없는 채찍이 날아와 살점을 찢으며 고통을 주었습니다. 끝내는 양손 양발에 못이 박힌 채 십자가에 높이 달리십니다. 죄인 된 우리의 고통을 대신 받으신 것입니다. 육신적인 고통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 고통의길 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은혜를 입어 귀신의 결박에서 놓임받고 질병에서 치유되고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배불렀던 군중들이 예수님을 조롱하고 비웃으며 그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쳤습니다. 공생애 동안 내내 함께 먹고 마시며 가르침을 받았던 제자들도 다 도망하고 심지어 예수님을 팔아먹은 제자도 있었습니다. 사람으로부터 버림 받는것도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지만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당함은 더욱 심한 고통 이었습니다. 세상죄를 지심으로 철저히 죄인 된 예수님을 하나님은 외면 하셨습니다. [엘리엘리라마사박다니] 비아돌로로사는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길 이었습니다.
비아돌로로사는 모든 것을 버린 길이었습니다. 비록 현재 고난이 있다 해도 언젠가 이 고난이 밑거름이 되어 성공이 있고, 복락을 누릴 수 있다면 견딜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가시는 길은 그 고생 끝에 죽음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슬픔의 길, 고난의 길 끝에는 잔인한 사형대가 준비 되어 있는 것입니다. 수고에 대한 대가가 보장되어 있지 않은 길 오히려 수고의 대가로 쓴 열매가 기다리고 있는 길 이것이 바로 비아돌로로사 입니다. 이 길은 좁은 길이요, 결코 넓은 길이 아닙니다. 이 길은 사람들이 찾지 않는 길이요, 전혀 인기나 보상과는 상관없는 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이 가는 길이 세상 사람이 올 때에는 절망의 길 허무한 길처럼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진리와 생명에 이르는 길은 세상 사람이 볼 때에는 절망의 길 허무한 길처럼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진리와 생명에 이르는 길은 세상의 모든 것을 버려야 하는 길입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는 불구덩이 앞에서 하나님이 건져주시지 않을지라도 우상 앞에 절할 수 없다는 결연한 자세를 보여준 것처럼 보상 때문에 지는 십자가가 아닙니다.
비아돌로로사는 죽음 너머의 길을 보고 가는 길입니다. 보통 사람의 눈에는 비아돌로로사 끝에는 죽음 이외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길을 걷다가 돌아서는 사람이 많은 것입니다. 비아돌로로사 너머에는 생명의 길, 부활의 길이 예비 되어 있습니다. 비아돌로로사는 고난과 죽음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생명의 길이 열려있음을 보여주는 길입니다. 이 세상에서 자기의 삶이 아무 보상도 없이 죽음으로 끝난다 해도 실망하지 않는 사람, 자신을 완전히 비운 사람, 그 사람의 눈에는 골고다 너머의 부활과 영원한 생명의 길이 환히 보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는 사람들은 비아돌로로사를 끝까지 가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친히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를 향하여 비아돌로로사의 길을 가신 예수님께서 오늘 우리를 향하여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지심은 자신의 죄로 인함이 아니요 우리의 죄악으로 인함입니다. 이제 우리가 지고 가는 십자가는 다른 영혼을 위하여 희생할 수 있는 사랑과 헌신의 십자가, 사명의 십자가입니다.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 것이 복음의 원리입니다.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삶은 나도 살고 남도 사는 길입니다. 예수님이 비아돌로로사의 길을 가실 때 이미 나의 죄를 짊어 지셨고, 아니 모든 사람의 죄를 짊어지고 가셨습니다. 이제 우리의 삶은 나를 위한 삶이 아니라 남을 위한 삶이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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