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트라코스타연합감리교회(이선영 목사) 부흥회에서 김중언 목사(후러싱제일교회)는 2일 '깨뜨린 옥합(은혜생활)(막 14:3-9)'을 주제로 전했다.
김중언 목사는 "성경본문에 예수님 앞에 향유옥합을 깨뜨린 여인이 나온다. 오늘 이 사건에 대해 견해차이가 생겼다. 어떤 사람은 여인의 행동이 말할 수 없는 낭비라고 했다. 이 이야기는 사복음서에 다 기록되어있다. 예수님은 옥합을 깨뜨린 여인의 행동을 가만두라고 하면서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 어디든지 이 여인의 행동이 알려질 것이라고 하셨다"고 말했다.
우리는 어떤 편에.. 돈이 아깝다고 할 것인가
김 목사는 "예수님앞에서 여인이 깨뜨린 옥합의 가치는 300데나리온으로 당시 일년간 일한 댓가로 받는 품삯이었다. 작은 돈이 아니었다. 요즘으로 치면 몇만불상당하는 돈이었다"
김 목사는 "우리가 그 장소에 있었다면 어떤 편에 속해 있었을까. 아까운 돈을 왜 그렇게 허비하나. 차라리 가난한 사람들이나 도와주지라고 말했을지 모른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가난한 사람'이라는 말은 남을 판단하거나 이용할때 많이 쓰이는 말이다. 정치하는데서 자주 활용되는 말이다. 정말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는 사람은 남이 돈을 쓰느니 안쓰느니 판단하지 않는다. 자기가 더 도와주지 못함을 생각할 뿐이다."
그는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신앙생활의 가장 중요한 것은 은혜이다. 은혜를 체험하지 않고는 신앙이라고 할 수 없다. 예수그리스도때문에 내가 이렇게 됐구나.. 예수님을 믿지 않았더라면 내가 이 세상을 살 수 없었다는 고백이자 감격이다"라고 말했다.
김 목사는 "내가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새사람이 되었다는 감격과 감사가 있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내 삶을 내어놓아도 괜찮다는 감격과 감사의 새 삶이다. 이것이 있어야 예수믿는 사람들이다. 주위에 사람들은 많았지만 그런 생각이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고 말했다.
"은혜란 이미 하나님이 하신 일, 우리가 받은 것을 기억하는 것이다. 그것이 없다면 아직 참다운 신앙생활이 아니다. 은혜를 인정하지 않고 다른 생각하면서 신앙생활하기 때문에 은혜가 없는 것이다. 감사하면서 기쁨을 갖고 생활하면 삶이 바뀐다"
김 목사는 "그 여인이 가진 향유옥합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모른다. 자신의 가장 귀한 것을 깨뜨렸다. 옥합을 깨뜨렸다는 것은 조금 덜어서 드린것이 아니라 송두리째 드린 것이다. 주님께서 먼저 십자가를 통해 깨뜨리셨다"며 "조금 주시면서 너의 죄가 용서받았다고 하신 것이 아니다. 주님께서는 자신의 생명을 내어놓고 십자가에 돌아가셨다. 마태복음은 30.7%, 마가복음은 37%, 누가복음은 28%, 요한복음은 전체 장 수에서 47.6%를 예수그리스도 고난에 할애하고 있다. 복음서에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이렇게 많이 차지한다"고 강조했다.
육체적 고통보다 더했던 것은 인간한테 받은 고난
김중언 목사는 "성경에 주님을 알고 주님께 제대로 대접했던 사람이 얼마나 있나. 여인의 옥합이 얼마나 주님께 감격이 됐는지, 주님께서 장사를 예비한 것이라고까지 했나. 인간을 위해 생명을 바치신 주님께 제대로 주님을 대접했던 사람이 한명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주님이 당한 진정한 고난은 인간한테 받았던 것이었다. 골고다 언덕길에 누가 옆에 있었나. 따랐던 사람들은 모두 없고, 사랑하는 어떤 제자는 배신까지 하고 떠났다. 그나마, 구레네 사람 시몬이라는 사람이 유일하게 나온다. 그는 억지로라도 붙잡혀 골고다까지 십자가를 지고 갔다. 인간이 도대체 주님께 대접한 것이 무엇인가. 우리의 모습을 살펴보기 바란다"고 말했다.
흑자는 주님께서 '십자가없이 그냥 용서하실 수 없었겠는가'라고 묻는다. 주님은 완전한 사랑을 증거하기위해서 옥합을 깨뜨리셨다. 조금만 힘든 일이 닥치거나 건강이 나빠지면 어떻게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렇게 하실 수 있느냐고 원망하는 사람이 있다. 그것은 아직 은혜를 충분히 깨닫치 못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는 이미 감당할 수 없는 너무 큰 축복을 받은 것이다.
어떤 자녀가 주님 보시기에 좋은 자녀일까. 여러분에게 당신이 도데체 유산을 물려준게 무엇이냐고 항변하는 아들이 있다면 어떻게 느낄까. 평소에 한번도 연락도 없다가 돈필요할때만 전화하는 자녀가 있다면 어떤가. 어떤 자녀가 부모의 기쁨이 되고 축복해주고 싶은 자녀인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지, 추상적인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 가장 중요한 것, 최상을 바치라
향유옥합은 여인이 제일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하나님은 독생자의 생명을 주셨다. 우리가 깨뜨려야할 옥합은 무엇인가. 어떤 때에 '이것 하나밖에 없는데' 하는 것이 있다. 그것이 나의 옥합이다. 내가 가장 작은것이라고 해도 가장 사랑했던 것이라면 나의 옥합이다. 보통 하나님께 드릴때 좋은 것은 제하여 버린다. 이것 저것 이유를 대며 빼고 볼품없고 값어치 없는 것을 하나님께 드린다.
하나님께 바치는 일은 최상을 바칠 수 있어야 한다. 내 기분에 맞게 바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바치는 것이다. 시간은 좋은 데 쓰라고 있는 것이다. 잠도 실컷 자면서 마지막에 더 살겠다고 하지 말고 젊었을 때 잠을 좀 더 줄이고 사랑하는데 많이 쓰길 바란다.
사람의 평가는 버는데서 결정되는게 아니라 쓰는 데서 결정된다 . 가진 것은 많아도 쓰는 것이 이기적이고 참 시시한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은 가난하고 시시한 사람이다. 비록, 많이 못벌더라도 쓰는 것이 멋있으면 멋있는 사람이다. 사람의 인생은 받는 것이 아니라 깨드려뜨리는데서 결정된다.
깨뜨린다는 것은 생각을 깨뜨린다는 것도 포함된다. 한 유명한 발명가가 했던 말이 있다. '많이 알면 발명을 못한다'고 했다. 기존의 틀에 갇히지 말고 그리스도인은 항상 새로운 역사를 창출하는 사람들이다.
우리때문에 한국교회 부흥한 것 아냐. 우리의 희생을 하나님은 영혼구원에 쓰신다
다른 빚은 갚을 수 있어도 사랑은 갚을 수 없다고 한다. 설사, 여인이 옥합을 깨뜨렸다고 해도 주님이 주신 사랑을 갚을 수는 없었다. 옥합은 표현일 뿐이다. 우리의 믿음의 표현이다.
주님께서 깨뜨린 옥합을 보고 장사를 준비한 것이라고 했다. 주님께서 의미를 부여해주셨다. 사람들은 너무 아깝다고 했다. 3백데나리온이 정말 아까운 것인가. 2천년이 지나기까지 기록된 사건이 됐다.
그 여인이 하늘나라에서 '주님 난 그냥 드린건데 너무 크게 쓰셨다'고 하지 않았겠나. 그냥 깨뜨린건데 말이다. 너무 크게 쓰셨다고 하지 않았을까. 옥합이 어떻게 쓰일지 아무도 모른다. 하나님이 알아서 쓰시고 의미를 부여해주신다.
지금 우리때문에 지금 한국교회가 부흥한게 아니다. 잘 알아야한다. 그건 순교자의 피 때문이다. 우리는 어떻게 쓰일지 잘 모른다. 깨진 옥합은 주님께서 용도를 정하신다. 주님은 그 옥합을 그냥 헛되게 쓰시지 않는다. 보잘것없는 옥합을 통해 놀라운 구원을 이루시는데 쓰신다. 어떻게 받을것인가 아닌 어떻게 드릴것인가 생각해보라. 진정한 신앙의 체험하길 바란다.
김중언 목사는 "성경본문에 예수님 앞에 향유옥합을 깨뜨린 여인이 나온다. 오늘 이 사건에 대해 견해차이가 생겼다. 어떤 사람은 여인의 행동이 말할 수 없는 낭비라고 했다. 이 이야기는 사복음서에 다 기록되어있다. 예수님은 옥합을 깨뜨린 여인의 행동을 가만두라고 하면서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 어디든지 이 여인의 행동이 알려질 것이라고 하셨다"고 말했다.
우리는 어떤 편에.. 돈이 아깝다고 할 것인가
김 목사는 "예수님앞에서 여인이 깨뜨린 옥합의 가치는 300데나리온으로 당시 일년간 일한 댓가로 받는 품삯이었다. 작은 돈이 아니었다. 요즘으로 치면 몇만불상당하는 돈이었다"
김 목사는 "우리가 그 장소에 있었다면 어떤 편에 속해 있었을까. 아까운 돈을 왜 그렇게 허비하나. 차라리 가난한 사람들이나 도와주지라고 말했을지 모른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가난한 사람'이라는 말은 남을 판단하거나 이용할때 많이 쓰이는 말이다. 정치하는데서 자주 활용되는 말이다. 정말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는 사람은 남이 돈을 쓰느니 안쓰느니 판단하지 않는다. 자기가 더 도와주지 못함을 생각할 뿐이다."
그는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신앙생활의 가장 중요한 것은 은혜이다. 은혜를 체험하지 않고는 신앙이라고 할 수 없다. 예수그리스도때문에 내가 이렇게 됐구나.. 예수님을 믿지 않았더라면 내가 이 세상을 살 수 없었다는 고백이자 감격이다"라고 말했다.
김 목사는 "내가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새사람이 되었다는 감격과 감사가 있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내 삶을 내어놓아도 괜찮다는 감격과 감사의 새 삶이다. 이것이 있어야 예수믿는 사람들이다. 주위에 사람들은 많았지만 그런 생각이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고 말했다.
"은혜란 이미 하나님이 하신 일, 우리가 받은 것을 기억하는 것이다. 그것이 없다면 아직 참다운 신앙생활이 아니다. 은혜를 인정하지 않고 다른 생각하면서 신앙생활하기 때문에 은혜가 없는 것이다. 감사하면서 기쁨을 갖고 생활하면 삶이 바뀐다"
김 목사는 "그 여인이 가진 향유옥합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모른다. 자신의 가장 귀한 것을 깨뜨렸다. 옥합을 깨뜨렸다는 것은 조금 덜어서 드린것이 아니라 송두리째 드린 것이다. 주님께서 먼저 십자가를 통해 깨뜨리셨다"며 "조금 주시면서 너의 죄가 용서받았다고 하신 것이 아니다. 주님께서는 자신의 생명을 내어놓고 십자가에 돌아가셨다. 마태복음은 30.7%, 마가복음은 37%, 누가복음은 28%, 요한복음은 전체 장 수에서 47.6%를 예수그리스도 고난에 할애하고 있다. 복음서에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이렇게 많이 차지한다"고 강조했다.
육체적 고통보다 더했던 것은 인간한테 받은 고난
김중언 목사는 "성경에 주님을 알고 주님께 제대로 대접했던 사람이 얼마나 있나. 여인의 옥합이 얼마나 주님께 감격이 됐는지, 주님께서 장사를 예비한 것이라고까지 했나. 인간을 위해 생명을 바치신 주님께 제대로 주님을 대접했던 사람이 한명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주님이 당한 진정한 고난은 인간한테 받았던 것이었다. 골고다 언덕길에 누가 옆에 있었나. 따랐던 사람들은 모두 없고, 사랑하는 어떤 제자는 배신까지 하고 떠났다. 그나마, 구레네 사람 시몬이라는 사람이 유일하게 나온다. 그는 억지로라도 붙잡혀 골고다까지 십자가를 지고 갔다. 인간이 도대체 주님께 대접한 것이 무엇인가. 우리의 모습을 살펴보기 바란다"고 말했다.
흑자는 주님께서 '십자가없이 그냥 용서하실 수 없었겠는가'라고 묻는다. 주님은 완전한 사랑을 증거하기위해서 옥합을 깨뜨리셨다. 조금만 힘든 일이 닥치거나 건강이 나빠지면 어떻게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렇게 하실 수 있느냐고 원망하는 사람이 있다. 그것은 아직 은혜를 충분히 깨닫치 못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는 이미 감당할 수 없는 너무 큰 축복을 받은 것이다.
어떤 자녀가 주님 보시기에 좋은 자녀일까. 여러분에게 당신이 도데체 유산을 물려준게 무엇이냐고 항변하는 아들이 있다면 어떻게 느낄까. 평소에 한번도 연락도 없다가 돈필요할때만 전화하는 자녀가 있다면 어떤가. 어떤 자녀가 부모의 기쁨이 되고 축복해주고 싶은 자녀인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지, 추상적인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 가장 중요한 것, 최상을 바치라
향유옥합은 여인이 제일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하나님은 독생자의 생명을 주셨다. 우리가 깨뜨려야할 옥합은 무엇인가. 어떤 때에 '이것 하나밖에 없는데' 하는 것이 있다. 그것이 나의 옥합이다. 내가 가장 작은것이라고 해도 가장 사랑했던 것이라면 나의 옥합이다. 보통 하나님께 드릴때 좋은 것은 제하여 버린다. 이것 저것 이유를 대며 빼고 볼품없고 값어치 없는 것을 하나님께 드린다.
하나님께 바치는 일은 최상을 바칠 수 있어야 한다. 내 기분에 맞게 바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바치는 것이다. 시간은 좋은 데 쓰라고 있는 것이다. 잠도 실컷 자면서 마지막에 더 살겠다고 하지 말고 젊었을 때 잠을 좀 더 줄이고 사랑하는데 많이 쓰길 바란다.
사람의 평가는 버는데서 결정되는게 아니라 쓰는 데서 결정된다 . 가진 것은 많아도 쓰는 것이 이기적이고 참 시시한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은 가난하고 시시한 사람이다. 비록, 많이 못벌더라도 쓰는 것이 멋있으면 멋있는 사람이다. 사람의 인생은 받는 것이 아니라 깨드려뜨리는데서 결정된다.
깨뜨린다는 것은 생각을 깨뜨린다는 것도 포함된다. 한 유명한 발명가가 했던 말이 있다. '많이 알면 발명을 못한다'고 했다. 기존의 틀에 갇히지 말고 그리스도인은 항상 새로운 역사를 창출하는 사람들이다.
우리때문에 한국교회 부흥한 것 아냐. 우리의 희생을 하나님은 영혼구원에 쓰신다
다른 빚은 갚을 수 있어도 사랑은 갚을 수 없다고 한다. 설사, 여인이 옥합을 깨뜨렸다고 해도 주님이 주신 사랑을 갚을 수는 없었다. 옥합은 표현일 뿐이다. 우리의 믿음의 표현이다.
주님께서 깨뜨린 옥합을 보고 장사를 준비한 것이라고 했다. 주님께서 의미를 부여해주셨다. 사람들은 너무 아깝다고 했다. 3백데나리온이 정말 아까운 것인가. 2천년이 지나기까지 기록된 사건이 됐다.
그 여인이 하늘나라에서 '주님 난 그냥 드린건데 너무 크게 쓰셨다'고 하지 않았겠나. 그냥 깨뜨린건데 말이다. 너무 크게 쓰셨다고 하지 않았을까. 옥합이 어떻게 쓰일지 아무도 모른다. 하나님이 알아서 쓰시고 의미를 부여해주신다.
지금 우리때문에 지금 한국교회가 부흥한게 아니다. 잘 알아야한다. 그건 순교자의 피 때문이다. 우리는 어떻게 쓰일지 잘 모른다. 깨진 옥합은 주님께서 용도를 정하신다. 주님은 그 옥합을 그냥 헛되게 쓰시지 않는다. 보잘것없는 옥합을 통해 놀라운 구원을 이루시는데 쓰신다. 어떻게 받을것인가 아닌 어떻게 드릴것인가 생각해보라. 진정한 신앙의 체험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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