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9월 11일, 뉴욕 세계무역센터와 국방성 건물이 테러 공격을 받았습니다. 미국 본토에서 전쟁 도발 행위를 통해서 3000명에 가까운 미국 시민이 죽었습니다. 테러 사건이 발생한 즉시 대통령은 전쟁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영국군대가 수도 워싱턴디씨를 불질러 버린 1812년 전쟁 이후 200년 동안 미국 본토는 외침을 받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911 테러 공격을 단순한 치안 문제나, 특수한 테러 방지 문제로 여기지 않고 전쟁으로 인식한 것은 역사관과 국가관과 국제 정치적인 거대한 틀에서 판단하지 않는다면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미국 행정부는 대통령을 중심으로 즉시 대응책 마련에 들어갔습니다. 공격이 있기 반 년 전에 치밀하게 준비된 알카에다의 위협에 관한 보고서를 기준으로 해서 알카에다의 소행으로 판단하고 응징 계획을 짜기 시작했습니다. 군 지도자들은 이미 준비되어 있던 컨틴전시 플랜에 따라 순항 미사일과 폭격기를 사용해서 알카에다 근거지를 정밀 폭격하는 것은 대통령의 명령이 떨어지는 즉시 실행할 수 있다고 보고했습니다.

백악관과 캠프 데이비드 산장에서 국방과 안보 분야의 핵심요인들이 모여서 즉각적인 컨틴전시 플랜의 실천 가능성을 가장 먼저 테이블에 올려 두고 아프가니스탄 침공계획을 세웠습니다. 소련이 물러난 후 정권을 장악한 극단적인 이슬람 근본주의 집단인 탈레반이 빈 라덴의 테러 시도를 보호하고 키우고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들은 아프가니스탄이 테러 집단을 지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테러 집단이 아프가니스탄을 지원하고 있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탈레반에 반발하는 아프가니스탄 북부의 노던 얼라이언스와 동맹하고 미국 중앙정보국의 요원들과 자산을 적극 활용하여 개전을 하고 지상군을 파견해서 점령을 한 후 민주정으로 옮겨가는 과정을 계획했습니다.

응징을 위한 침공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해안선이 없는 아프가니스탄의 지리적 여건 때문에 파키스탄, 우즈베키스탄, 타직스탄, 러시아에서 기지를 제공하고 영공을 통과하도록 허락해야 합니다. 영국을 위시해서 연합군을 구성하고 편성해야 합니다. 그 무엇보다 미국 의회에서 전쟁 선포 결의를 해야 합니다. 전쟁 계획을 군부와 의논하는 동안 행정부는 총력을 기울여 의회를 설득하고 수십 개의 우방과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았던 몇몇 나라를 설득하기 시작했습니다. 러시아 푸틴 대통령과 통화하여 적극적인 지지를 확보하고 그로부터 수일 내에 구 소련 국가들로부터 군사적인 지지를 받아 내게 됩니다.

계획이 수립되고 막대한 군사 자원이 움직이면서 911 테러공격 이후 9일 만인 9월 20일에 탈레반을 향해서 최종통첩이 전해집니다. 911 공격이 있은 지 꼭 26일 만인 10월 7일, 미국과 영국 공군이 탈레반과 알 카에다 근거지를 폭격하기 시작하면서 전쟁이 시작됩니다.

지도자의 신속한 정황 판단, 즉각적인 대응과 대규모 전쟁 수행을 가능하게 만든 군부의 준비 태세, 국방, 외교, 내치 등 각 분야에서 신속한 계획 집행을 가능하게 만든 잘 짜인 국가 행정 리더십이 있었기에 국제적인 거대한 전쟁 수행을 27일 만에 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때로 인생과 신앙생활은 전쟁에 비교됩니다. 개인, 가정, 공동체, 국가에 이르기까지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든든한 기반을 확보하고 살아야 합니다. 항상 최선의 미래를 개다하면서 항상 최악의 위기를 기대하며 준비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