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이 외부의 충격에 의해 다친 곳을 상처라하고 순수한 우리말로는 생채기라한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트라우마라’고 하는데 프로이드는 “이물질처럼 존재하는 트라우마는 질긴 바이러스처럼 한번 침투하면 멈추지 않고 작용하여 오히려 감추고 덮을수록 날카롭게 찌르는 송곳처럼 삶의 곳곳에서 상채기를 자꾸 낸다”고 하였다.

어렸을적 아버지가 고아된 사촌형의 손을 잡고 나들이를 가는 길에 주저앉아 대성통곡하던 어린 나는 꿈속에서 반복적으로 환갑을 넘긴 나를 괴롭힌다. K.S 마크의 빛나는 사촌덕에 항상 비교의 도마위에서 칼질을 당해야 했던 나는 아직도 아릿한 상흔을 간직하고 있다.

인간은 어쩔수 없는 주관성 때문에 자신의 상처가 가장 깊고 또 아프다고 생각한다. 상처는 치유되어야 하나, 모든 상처가 다 치유되는 것은 아니며 죽을 때 까지 보듬고 살아야 할 상처는 그 누구에게나 있다.

시인 하이네는 상처를 이렇게 노래했다. “내 마음의 깊은 상처를/ 고운 꽃이 알기만 한다면/내 아픔을 달래기 위해 /나와 함께 눈물을 흘려 주련만. /내 간절한 슬픔을 /꾀꼬리가 안다면 /즐겁게 지저귀어 내 외로움을 /어쩌면 풀어 줄 수도 있으련만. /나의 이 탄식을 저 별이 /황금빛 별이 알기만 한다면 /그 높은 곳에서 내려와 /틀림없이 위로해 주겠건만. /그렇지만 이내 슬픔 아는 이 없네. /알아 줄 사람은 오직 한 사람 / 내 가슴을 손톱으로 /갈갈이 찢어 놓은 오직 한 사람”.

그는 상처를 안기고 떠난 연인이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절규하고 있다. 바울에게는 몸에 가시와 같은 상처가 있어 평생을 고통 중에 지냈다. 몸뿐아니라 그의 마음의 상처는 갈기갈기 찢겨져 너덜너덜 헤어져버린체 그 상체기가 덧나길 반복하였다. 그래도 그것은 그의 몫일 뿐이었다. 그에게 주어진 기도의 응답은 너무도 냉정하였다. “네 은혜기 네게 족하다“ 거기에는 설명도 없고 이해도 구하려 하지 않는다.

그렇다 상처없는 사람은 없다. 그저 덜 아픈 사람이 더 아픈 사람을 안아 주는 일 뿐이다. 상처 받은 치유자로 알려진 헨리 나우엔은 어느 정도 이 치유법을 터득한 사람이었다, 그가 플라잉 로드리즈 서커스단을 만나 공중제비를 연습할 때 깨달은 것은 공중에서 나는 사람이 스타가 아니라 항상 손을 벌려 잡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 스타라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나를 잡아 줄 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 때 난 자유로이 날 수 있다"고 말했다.

예수는 십자가의 상흔을 그대로 가지시고 부활승천하시고 하나님의 영광우편에 거하신다. 그리고 그 상처를 가지시고 다시 오실 것이다. 그분이야 말로 상처받은 치유자이시며 상처받은 모든 공중제비들의 세이프 가드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