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를 처음 운전하던 때를 기억합니다. 흥분되었고 긴장도 되었습니다. 운전대를 붙들고 한 참을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 기도 시간이 짧아졌고 아주 잊어버릴 때도 종종 있습니다. 부담스럽던 운전을 즐길 때도 있습니다. 익숙해져 가기 때문입니다.
첫 사랑을 기억합니다. 가슴이 두근거려 호흡을 가다듬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는지 모릅니다. 처음으로 손을 잡을 때 몇 만 볼트의 전기가 흐르는 듯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아내의 손을 잡을 때 마치 나의 다른 손을 잡는 듯한 기분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 손이 내 손인지, 아내 손인지 구별이 안 될 때가 있습니다. 익숙해져 가기 때문입니다.
목회를 처음 시작할 때가 있었습니다. 감사와 감격에 차 하루 하루를 지나왔습니다. 주님 이름만 불러도 두 눈에서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일에 쫓기다 보면 주님을 묵상하지 않고 하루를 지나올 때도 있습니다. 성경을 읽어도 전공 책을 읽는 듯 할 때도 있습니다. 익숙해져 가기 때문입니다.
목사 안수를 받을 때의 일이었습니다. 처음 목회자의 길로 들어설 때를 기억나게 하셨습니다. 감사와 감격을 가지고 길을 떠나 왔습니다. 신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면 미래를 준비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마치 결혼을 앞둔 신랑처럼 새로이 펼쳐질 미지의 세계에 대하여 그림을 그렸습니다.
큰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 때 불현듯 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주님이 오늘 이 땅에 오셨으면 어떻게 하셨을까? 하늘에 높은 보좌를 버리시고 죄인들을 구하시기 위하여 이 땅에 찾아오신 주님의 모습은 결코 내가 그려보고 있는 목회자의 길과 같지 않음을 깨닫게 되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잠시 후 내 뺨으로 한 줄기의 눈물이 흐르며 다음과 같은 고백을 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아흔 아홉마리의 양들 편에 서 있을때 주님은 길 잃어버린 한 마리의 편에 서 계셨습니다. 내가 의로운 군중 속에 서 있을 때 주님은 간음한 여인의 편에 서 계셨습니다. 내가 가진 자의 편에 서 있을 때 주님은 헐벗고 가난한 자 편에 서 계셨습니다. 내가 숫자를 헤아리고 있을 때 주님은 고통하는 한 영혼을 보고 계셨습니다. 내가 재물을 소중히 보고 있을 때 주님은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보고 계셨습니다. 내가 이웃의 죄를 손가락질 하고 있을 때 주님은 그 영혼의 고통을 나누고 계셨습니다.
나가 영광의 자리에 앉아 있을 때 주님은 종의 자리에 무릎 꿇고 계셨습니다. 내가 부활의 영광을 바라보고 있을 때 주님은 십자가를 지고 고통하고 계셨습니다. 나는 자랑스럽운 공로자로 서기를 원하지만 주님은 상하고 빚진 심령을 찾고 계셨습니다. 이제는 나도 부끄러운 마음으로 주님 서 계신 곳에 함께 서기를 원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주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부르고 있으니 나는 분명 주의 종입니다. 그렇다면 종은 주인 되신 그리스도를 따라감이 마땅하리라. 십자가 지신 그리스도를 만물 위에 뛰어나게 하신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지 않는가? 오늘도 그 주님 가신 길 따라가기 원합니다. 그리고 종용히 고백해 봅니다. 나로 주님 서신 자리에 서기 원합니다. 이 초심을 잃어버리지 않게 하옵소서.
첫 사랑을 기억합니다. 가슴이 두근거려 호흡을 가다듬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는지 모릅니다. 처음으로 손을 잡을 때 몇 만 볼트의 전기가 흐르는 듯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아내의 손을 잡을 때 마치 나의 다른 손을 잡는 듯한 기분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 손이 내 손인지, 아내 손인지 구별이 안 될 때가 있습니다. 익숙해져 가기 때문입니다.
목회를 처음 시작할 때가 있었습니다. 감사와 감격에 차 하루 하루를 지나왔습니다. 주님 이름만 불러도 두 눈에서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일에 쫓기다 보면 주님을 묵상하지 않고 하루를 지나올 때도 있습니다. 성경을 읽어도 전공 책을 읽는 듯 할 때도 있습니다. 익숙해져 가기 때문입니다.
목사 안수를 받을 때의 일이었습니다. 처음 목회자의 길로 들어설 때를 기억나게 하셨습니다. 감사와 감격을 가지고 길을 떠나 왔습니다. 신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면 미래를 준비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마치 결혼을 앞둔 신랑처럼 새로이 펼쳐질 미지의 세계에 대하여 그림을 그렸습니다.
큰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 때 불현듯 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주님이 오늘 이 땅에 오셨으면 어떻게 하셨을까? 하늘에 높은 보좌를 버리시고 죄인들을 구하시기 위하여 이 땅에 찾아오신 주님의 모습은 결코 내가 그려보고 있는 목회자의 길과 같지 않음을 깨닫게 되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잠시 후 내 뺨으로 한 줄기의 눈물이 흐르며 다음과 같은 고백을 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아흔 아홉마리의 양들 편에 서 있을때 주님은 길 잃어버린 한 마리의 편에 서 계셨습니다. 내가 의로운 군중 속에 서 있을 때 주님은 간음한 여인의 편에 서 계셨습니다. 내가 가진 자의 편에 서 있을 때 주님은 헐벗고 가난한 자 편에 서 계셨습니다. 내가 숫자를 헤아리고 있을 때 주님은 고통하는 한 영혼을 보고 계셨습니다. 내가 재물을 소중히 보고 있을 때 주님은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보고 계셨습니다. 내가 이웃의 죄를 손가락질 하고 있을 때 주님은 그 영혼의 고통을 나누고 계셨습니다.
나가 영광의 자리에 앉아 있을 때 주님은 종의 자리에 무릎 꿇고 계셨습니다. 내가 부활의 영광을 바라보고 있을 때 주님은 십자가를 지고 고통하고 계셨습니다. 나는 자랑스럽운 공로자로 서기를 원하지만 주님은 상하고 빚진 심령을 찾고 계셨습니다. 이제는 나도 부끄러운 마음으로 주님 서 계신 곳에 함께 서기를 원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주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부르고 있으니 나는 분명 주의 종입니다. 그렇다면 종은 주인 되신 그리스도를 따라감이 마땅하리라. 십자가 지신 그리스도를 만물 위에 뛰어나게 하신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지 않는가? 오늘도 그 주님 가신 길 따라가기 원합니다. 그리고 종용히 고백해 봅니다. 나로 주님 서신 자리에 서기 원합니다. 이 초심을 잃어버리지 않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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