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개 모태신앙이라고 하며 믿음 좋고 신앙생활 잘한다고 평가 받는다. 남가주기독교교회협의회 제39대 이사장 최문환 장로 또한 모태신앙으로 그런 기대를 한 몸에 받았었다.

서울서 손가락 안에 드는 부유한 집안서 나고 자란 최 장로는 모태신앙이라고 하지만 대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 하나님을 깊이 만나지 못했다. 최 장로가 하나님을 깊이 만나게 된 것은 인생에서 두번. 첫번째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아버지를 따라 형광등 제조 회사, 무역회사, 인쇄소 등에서 일을 하며 세상 경험을 쌓던 젊은 시절 열 손가락이 절단 당하는 사고 후다.

최 장로가 사고를 당한 곳은 국가 2급 기밀을 취급하던 인쇄소였다. 인쇄소는 국가기밀을 다루는 곳이라 일이 많아 직원 수를 늘리려고 해도 정부의 승인 없이는 불가능 했다. 그런 작업 환경 속에서 일 하던 최 장로는 5일 밤낮을 지세워 피곤에 쓰러진 동료 직원들을 대신해 다음날 청와대에 들어갈 문서 절단을 위해 인쇄기를 다루다 자신도 피곤에 쓰러지는 바람에 사고를 당했다.

최 장로는 수술을 위해 일본의 유명한 병원을 수소문 했고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하나님께 기도했다. “하나님 저의 기도를 들어주세요. 손 수술이 잘 되도록 이전과 같이 돌아올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간절히 기도했음에도 불구하고 수술은 할 수 없었고 최 장로는 평생 장애인으로 살게 됐다.

손가락 없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 절망에 빠져있던 최 장로는 ‘이대로 있을 수 없다’며 곧 자리를 털고 일어나 글씨 쓰는 방법과 와이셔츠 단추 채우는 법 등 생활에 불편을 겪게 될 여러가지 것들을 생각하고 극복해 내기 위해 노력했다.

최 장로가 하나님을 두 번째로 깊이 만나게 된 것은 제 2의 인생을 위해 미국으로 온 후 2살 손녀가 백혈병을 앓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회복을 위해 기도 하고 나서다. 기도의 능력은 실로 대단했다. 완쾌가 어려울 것 같았던 손녀는 최 장로와 가족들이 기도하고 난 후 눈에 띄게 병세가 호전되어갔다. 당시를 회상하며 최 장로는 “인간의 힘으로는 할 수 없다는 걸 느끼게 됐는데 찾고 기댈 곳은 하나님 밖에 없었다”고 고백했다.

어릴 적 자신과 가족들이 주님을 만나고 크리스천으로 거듭나도록 날마다 기도했던 할머니의 기도가 지금 자신이 신앙생활을 하는 힘이라는 최 장로는 “오늘도 주님의 삶을 따라 섬기며 살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