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인종이 연합하여 이루어진 미합중국 역사 이래 최초로 흑인 대통령이 된 버락 후세인 오바마 대통령의 취임식은 정말 대단한 축제 분위기였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의 고백처럼 “60년 전에는 식당에서조차 거절당했던 사람의 아들이 오늘 이 자리에” 서서 미국의 모든 사람을 향해 희망을 외치는 취임식은 그 자체가 감격의 드라마 같았습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뜨거운 열기가 가득한 축제가 아니라 수많은 문제들이 산적한 냉엄한 현실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일부 사람들의 탐욕과 무책임으로 빚어진 일이지만, 한편 어려운 선택을 회피하고 새로운 시대를 위해 준비를 게을리 함으로 만들어진 모두의 책임이기도 한 오늘의 위기를 이겨내어야 합니다.
마지막 위기의 시대를 믿음으로 살아가야 하는 그리스도인들도 분명한 목적을 이루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인생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 값을 주고 사신 교회를 통하여 신앙이 성장하여 봉사의 일을 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우리의 신앙생활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의 신앙생활은 이렇게 활발하지 않습니다. 포장지는 요란하고 화려한 것 같은데도 그 안의 내용에는 진정한 생명의 열매가 없습니다.
캐나다의 신학자인 윌리엄 맥래(William McRae)는 오늘날의 교회를 비유하여 마치 축구경기장의 모습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즉 교회에 운집하는 많은 성도들은 단지 경기장의 관객으로 전락하여 사역의 주체가 아니라 객체요 평가자일 뿐이고 섬김과 봉사의 여러 일들의 책임을 회피하는 연약한 믿음으로 쇠퇴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본래 하나님의 사람들은 구원받는 순간부터 하나님의 교회를 위하여 봉사하도록 은사를 부여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각자에게 각각의 개성과 스타일을 주셨듯이 모두에게 다른 은사를 주셨습니다. 서로 다른 은사이지만 각자에게 주어진 책임을 감당하며 내게 주신 열정과 스타일을 따라 선한 일을 위하여 헌신할 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목적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예를 들어 8명의 사람이 레스토랑에 들어가서 식사를 하며 한 테이블에서 담소를 나누는데, 식당 종업원이 음식을 나르다가 발이 의자에 걸려 넘어졌습니다. 바로 이 순간 ‘섬김의 은사’를 가진 사람은 재빨리 다가가서 깨진 그릇을 주어 담으며 빗자루로 쓸기 시작합니다. 또 ‘다스림의 은사’를 가진 사람은 갑자기 식당 종업원들을 향해 “여기 청소도구 가지고 오세요! 그리고 당신은 비상약품 통을 가지고 오고! 그리고 당신은.......” 한편, ‘긍휼의 은사’를 가진 사람은 깨어진 그릇에 손가락을 베어서 피 흘리는 종업원의 손을 잡고 자기 손수건을 꺼내서 싸매주면서 “아이구, 얼마나 아플까, 많이 아프죠, 그래도 조금만 참으세요!”라고 말하며 위로해 줍니다. 가르침의 은사를 가진 사람은 “지배인이 누구요? 여기 식당 구조를 보니까 통로가 너무 좁아요. 탁자 서너 개 빼내고 공간 배열을 넓게 다시 하시오.”라고 가르칩니다. 구제의 은사를 가진 사람은 “종업원! 걱정 마세요. 내가 접시 값 다 지불해 줄 테니 안심하세요.”라고 말합니다. 권위의 은사를 가진 사람은 “실수가 없는 인생이 어디 있나요. 너무 상심하지 마세요. 일하다보면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지요.”라고 말합니다. 전도의 은사를 가진 사람은 “교회 나가세요? 예수 믿으면 어느 상황에서든지 평화를 누리게 됩니다.”라고 접근합니다.
이렇게 서로 다른 은사를 가졌지만 각자의 책임을 다할 때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며 하나님의 나라는 발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2009년! ‘하나님의 복이 흐르는 예배 공동체’를 위해 나의 책임과 희생을 다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신앙의 승리자가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마지막 위기의 시대를 믿음으로 살아가야 하는 그리스도인들도 분명한 목적을 이루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인생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 값을 주고 사신 교회를 통하여 신앙이 성장하여 봉사의 일을 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우리의 신앙생활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의 신앙생활은 이렇게 활발하지 않습니다. 포장지는 요란하고 화려한 것 같은데도 그 안의 내용에는 진정한 생명의 열매가 없습니다.
캐나다의 신학자인 윌리엄 맥래(William McRae)는 오늘날의 교회를 비유하여 마치 축구경기장의 모습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즉 교회에 운집하는 많은 성도들은 단지 경기장의 관객으로 전락하여 사역의 주체가 아니라 객체요 평가자일 뿐이고 섬김과 봉사의 여러 일들의 책임을 회피하는 연약한 믿음으로 쇠퇴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본래 하나님의 사람들은 구원받는 순간부터 하나님의 교회를 위하여 봉사하도록 은사를 부여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각자에게 각각의 개성과 스타일을 주셨듯이 모두에게 다른 은사를 주셨습니다. 서로 다른 은사이지만 각자에게 주어진 책임을 감당하며 내게 주신 열정과 스타일을 따라 선한 일을 위하여 헌신할 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목적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예를 들어 8명의 사람이 레스토랑에 들어가서 식사를 하며 한 테이블에서 담소를 나누는데, 식당 종업원이 음식을 나르다가 발이 의자에 걸려 넘어졌습니다. 바로 이 순간 ‘섬김의 은사’를 가진 사람은 재빨리 다가가서 깨진 그릇을 주어 담으며 빗자루로 쓸기 시작합니다. 또 ‘다스림의 은사’를 가진 사람은 갑자기 식당 종업원들을 향해 “여기 청소도구 가지고 오세요! 그리고 당신은 비상약품 통을 가지고 오고! 그리고 당신은.......” 한편, ‘긍휼의 은사’를 가진 사람은 깨어진 그릇에 손가락을 베어서 피 흘리는 종업원의 손을 잡고 자기 손수건을 꺼내서 싸매주면서 “아이구, 얼마나 아플까, 많이 아프죠, 그래도 조금만 참으세요!”라고 말하며 위로해 줍니다. 가르침의 은사를 가진 사람은 “지배인이 누구요? 여기 식당 구조를 보니까 통로가 너무 좁아요. 탁자 서너 개 빼내고 공간 배열을 넓게 다시 하시오.”라고 가르칩니다. 구제의 은사를 가진 사람은 “종업원! 걱정 마세요. 내가 접시 값 다 지불해 줄 테니 안심하세요.”라고 말합니다. 권위의 은사를 가진 사람은 “실수가 없는 인생이 어디 있나요. 너무 상심하지 마세요. 일하다보면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지요.”라고 말합니다. 전도의 은사를 가진 사람은 “교회 나가세요? 예수 믿으면 어느 상황에서든지 평화를 누리게 됩니다.”라고 접근합니다.
이렇게 서로 다른 은사를 가졌지만 각자의 책임을 다할 때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며 하나님의 나라는 발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2009년! ‘하나님의 복이 흐르는 예배 공동체’를 위해 나의 책임과 희생을 다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신앙의 승리자가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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