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틀란타 태생으로 미국 흑인 인권운동의 상징이었던 마틴 루터 킹 목사 서거 40주년인 4일(금) 그가 저격당했던 테네시주(州) 멤피스를 비롯한 미 전역에서 다양한 추모 행사가 잇따랐다. 아틀란타에서는 킹 목사를 기리는 전시회와 가두행진이 열리기도 했다.

하지만 흑인교회 내에 오늘날 킹 목사가 이루고자 했던 '꿈'을 뒤좇는 자들은 얼마나 되는지에 대한 의문과 회의가 제기되고 있다.

한 세대 전에 디모데 맥도날드(Timothy McDonald) 목사는 가난한 자들과 인종차별의 피해자들을 위해 퍼스트 이코니움 침례교회(First Iconium Baptist church)를 아틀란타 동부에 세웠다.

다른 교회로부터의 지원이 거의 없는 상황 속에서 교회 리더들은 아틀란타에서 유일한 공공병원을 유지하기 위해 싸워나가야 했다.

맥도날드 목사는 "우리는 공공의 정책이 사람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주목했고 그들과 함께하기 원했다."며 "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는가? 그가 가난한 자들을 대변했기 때문이다. 그가 그 시대 정부에 반대해 목소리를 낼만한 용기를 지녔기 때문이다"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암살된지 40여년이 흐른 지금, 전쟁과 인종차별, 가난과 사우며 킹 목사의 선례를 따라가고자 노력하는 흑인 목사들의 수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들의 숫자는 손가락으로 헤아릴 수 있을 정도"라고 맥도날드 목사는 안타까워했다.

맥도날드 목사는 잠시 생각한 뒤 처음 이코니움 교회가 세워졌을 때 적어도 12명이 넘었던 목사의 수와 비교해 지금 아틀란타에서 활동하고 있는 네, 다섯 명의 목사의 숫자를 헤아렸다. 많은 이들이 죽거나 은퇴했지만 다른 목사들로 채워지지 않았다.

1950년대에서 60년대, 흑인 설교자들이 이끌었던 수많은 행진과 저항의 모습을 기억한다면, 오늘날 킹의 정신을 이어가야 하는 후계자들이 어디에 있는지 의문을 남긴다.

아틀란타에는 메가쳐치로 성장한 두 개의 흑인회중교회가 있다. 그중 하나는 리토니아에 위치한 뉴 버스 미셔너리 쳐치(New Birth Missionary Church)이고 다른 하나는 컬리지파크에 위치한 월드 채인저스 쳐치 인터네셔널(World Changers Church International)이다. 두 교회는 모두 극장식 성전과 수 만명의 멤버쉽을 자랑한다. 그러나 두 교회 내의 사회운동가들은 담임목사의 부와 믿음을 통한 경제적 성장에 관한 메시지보다 덜 알려져 있는 실정이다.

킹 목사가 1960년부터 사망할 때까지 설교했던 에벤에셀 침례교회 라파엘 워넉(Raphael Warnock)목사는 때때로 목회자들의 부가 그들이 미국인권운동의 후계자임을 가린다고 지적했다.

"킹 목사의 투쟁으로 우리는 더 나은 삶에 접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들의 포커스는 더 나은 삶을 위한 투쟁보다는 개인 재산에 더 맞춰져 있다"

워럭 목사는 이어 "흑인교회의 모든 이들이 사회변혁과 연관되어 왔다고 말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사실이 아니다. 그러나 흑인교회 역사에서 정의를 위해 싸워왔던 투쟁정신이 수많은 교회에서 흑인교회를 구별시켜주는 특출난 사실임에는 틀림없다. 흑인교회는 개인주의와 부의 성취주의에 맞서 사회정의를 실천하는데 더욱 나서야 한다"고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