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에게 늘 구타를 당하면서 사는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처음 결혼했을 때는 남편이 관심을 주었지만 조금 지나자 남편은 아내에 대해서 무관심해졌습니다. 구타도 날로 심해졌습니다. 목사님에게 가서 상담을 했습니다. 안타까운 말을 들은 목사님은 '별거를 하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을 했습니다.

결국 이들은 별거를 하였고 아들이 둘이 있는데 두 아들은 부인이 맡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달랐습니다. 혼자 사는 것이 너무도 싫었습니다. 남편은 편지를 쓰고 전화를 했습니다. 그러나 부인은 옛날의 상처를 생각하며 매몰차게 거절했습니다. 용서할 수가 없었습니다. 남편은 가끔 '자기가 자살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부인은 남편이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하려고 '그렇다면, 그렇게 하세요. 그래야 내가 당신 유산을 상속받지요'라고 매몰차게 대했습니다. 마침내 남편은 자살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 남편은 상처를 받기만 했지 그 상처를 치유 받지 못한 채 죽어갔던 것입니다. 부인은 그 사실을 알고 심한 ‘죄책감’에 몸부림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부인은 괴로움과 외로움 때문에 이 남자, 저 남자를 만나는 불결한 삶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이로 인해 자녀들은 큰 상처를 받고 말았습니다.

그러던 중에 이 여인이 완전히 변화되는 회복의 경험을 갖게 되었습니다. 새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단순히 상처만 치유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마치 오랜 병상 생활을 했던 사람이 겨우 활동을 조금씩 하는 그런 삶을 사는 여인이 아니라, 자기와 같이 상처받은 사람들을 치유하는, 멋진 사역을 하는 여인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그녀의 이름은 한국에도 ‘영적 치유’로 알려진 책을 쓴 '케이 아더'입니다.

무엇이, 엄청난 상처를 가진 이 여인을 이렇게 완전하게 치유했까요? 무엇이 이 여인을 상처 투성이인 절망적 과거와는 전혀 다른 ‘희망과 섬김’의 삶을 살 수 있도록 ‘회복’시켰을까요?

그것은 ‘십자가’ 였습니다. 그녀의 인생의 전환점은 십자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녀는 이사야 53장의 예수님과 십자가를 만났습니다. 그곳에서 아픔이 치료되었고, 상처가 싸매지는 경험을 맛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이유는 죄인이며 상처투성이인 우리를 회복시키시기 위한 대속적 죽음이셨습니다. 아니 대속적 죽음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새로운 희망의 출발을 위한 죽음이셨습니다.

의학자들은 말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실 때의 사망 원인은 최소 다섯 가지로 말할 수 있다고 말입니다. 수 많은 매질에 의한 ‘타박상(Contusions)’, 채찍에 의한 ‘열상(Lacerations)’, 가시면류관에 의한 ‘침투상(Penetrating wounds)’, 못 박히심으로 인한 ‘관통상(Perforating wounds)’, 창에 찔리심으로 온 ‘결각상(Incised wounds)’이라고 했습니다. 그 어느 것 하나 가벼운 상처가 아닙니다.

무엇 때문에 이런 고통을 감내하시며 십자가를 지셨을까요? 오래 생각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 이유는 단지 그것이 어떤 문제였든지 오는 상처와 고통, 죄로 인한 짐들을 해결해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진정한 상처로부터의 회복을 원한다면, 십자가의 ‘예수님’ 그분의 옷깃만 만진다 해도 우리의 상처는 완전히 회복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니 주님은 만질 만한 자리에 있지 못해 다가갈 수 없다고 해도 그 분의 십자가를 ‘바라보기만 해도’ 우리의 상처 입은 영혼과, 육신은 깨끗하게 회복되는 역사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떤 상처로 고민하고 고통 받고 있습니까 ? 인간관계 때문입니까 ? 가족이나 친구들 때문입니까 ? 신뢰하던 사람으로부터의 실망감 때문입니까 ? 아니면 여러분이 앓고 있는 우울증이나 불안증, 질병들 때문입니까 ? 고치지 못하는 나쁜 습관 때문에 남몰래 고민하고 고통 받고 있습니까 ? 더 이상 마음의 상처로 인해 고통 받지 마시길 바랍니다. 혹여 예수님을 믿지 않는 분들이시라면 당신을 위해 십자가를 지신 그분 앞에 나와 그분의 ‘십자가 사랑’으로 ‘치료와 회복’을 경험하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여전히 과거에 메여 고통 중에 살아가고 있다면 당신은 우리 주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헛되이 만드는 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는 힘 없은 십자가가 아니라 능력의 십자가입니다. 수치의 십자가가 아니라 치유의 십자가입니다. 정죄의 십자가가 아니라 용서의 십자가입니다. 그 십자가를 다시 바라보시므로 여러분의 인생에 진정한 회복의 역사를 경험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또 다른 상처 입은 인생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만나도록 인도하는 복된 삶을 사시길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