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작년보다 어렵습니다!”
저는 이렇게 말씀하시는 성도님들의
한숨을 20년 가까이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성도님들이
하시는 말씀이 바뀌었습니다.
“올해는 정말 어렵습니다!”

성도님들이 경영하시는 일터를 찾아갑니다.
그리고 함께 기도를 합니다.
저는 비지니스 현장에서 기도하면서
이제까지 간구하였던 것은
“안전”과 “풍성”이었습니다.
“하나님, 사고 많은 이민의 삶 속에서
사랑하는 성도님을 안전하게 하시고,
정직하게 수고하고 땀흘리는 일터에
주님의 풍성함으로 채우소서.”
이것이 저의 기도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올해에는 그 기도의 내용을
조금 바꾸었습니다.
“하나님, 2008년 한 해 동안
형통하게 하옵소서!
하나님 형통의 복을 내려 주옵소서!”

우리 모두가 바라는 “형통”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의 복”입니다.
모든 것이 다 잘 풀려나가는 것 그자체가
결코 형통이 아닙니다.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형통입니다.
“만능 해결사”로서의 하나님을
가지는 것이 형통이 아니라,
“인생의 동반자”로서 하나님과 함께
인생을 걸어가는 것이 형통입니다.
“해결”되었기 때문에 형통한 것이 아니라,
“섭리”와 “인도하심”을 믿기 때문에
형통한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가지기 때문에
형통한 것이 아니라,
나에게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형통한 것입니다.

힘들어 눈물을 흘리는 가정에도
형통은 있습니다.
힘들어 흘리는 눈물이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멀리 쫒아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정말 힘든 비지니스 현장 가운데에도
형통은 있습니다.
하나님도 그곳에서 우리와 함께
힘들게 일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저는 목사로 “형통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제가 무슨 능력이 있어
병을 낫게 하고, 놀라운 예언을 하고,
없던 것도 있게 하기 때문에
형통을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누구를 만나더라도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전하고,
그 하나님을 신뢰하라고 격려합니다.
하나님이 고통의 끝 자리에서
기다리고 계시니 낙심하지 말고
함께 하시는 주님과 호흡을 맞추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라고 권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목사인 저는
“형통을 전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부부가 함께 일하시는 일터를
아무런 연락도 없이 찾아갑니다.
분주하게 일하시던 손을 멈추고
복잡했던 마음을 가다듬고
그자리에서 함께 기도를 합니다.
“주님, 2008년 한 해 동안
형통의 복을 내려 주옵소서!”
기도 후에 그 분이 말씀을 하십니다.
“복잡했던 마음이
목사님과 함께 기도하니 가라앉습니다.”
다른 성도님의 일터로 갑니다.
그리고 함께 기도합니다.
“주님, 이 가정을 형통케 하옵소서!”
기도를 마치니 남편이 부인을 보고
말씀을 하십니다.
“목사님이 기도해 주시니
당신 얼굴이 환해지네!”
그러나 목사가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단 한 가지 사실,
즉 “하나님이 함께 하시며,
그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동행하라”는
격려와 권면을 드리는 것 뿐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저를 목사로
불러 세워주신 것이 너무나 감사합니다.
죽음의 문턱에 이른 분에게도
죽음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전할 수 있고,
모든 것을 잃어버려
좌절 속에 있는 분에게도
실패와 파멸이 아니라
형통과 새로운 변화를 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디 목사만 이 세상에서
“형통을 전하는 사람”이겠습니까?
우리 모두가 한 사람도 예외없이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누구에게나 전하고 보여줄 수 있는
“형통을 전하는 사람” 아니겠습니까?
노래의 한 구절은 아니지만,
이렇게 노래하고 싶습니다.
“당신은 형통을 전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
당신의 삶 속에서 형통을 누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