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극한 상황 속에서 그 상황을 잘 모면해 살아남은 사람이나 예기치 못한 좋은 일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쉽게 내놓는 말이 ‘재수(財數)가 좋았다’ ‘운이 좋았다’라고 합니다. 그래서 일이 잘 풀리지 않고 꼬여 어려운 상황에서는 ‘운이 나쁘다’ ‘재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이런 말이 현대에 와서 ‘그런 것이 어디 있느냐? 다 미신이다’라고 말들은 하지만 여전히 자신의 위급 앞에서는 ‘재수와 운’을 따져 봅니다.

세간에 아무 것도 아닌 말인 듯 해도 사람들의 마음에 깊이 자리 잡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위대한 정복자 나폴레옹도 당신이 가장 신뢰할 만한 부장은 누구입니까?라고 물을 때 ‘운이 따르는 사람’이라고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 ‘재수와 운’을 믿고 따르다 보면 어느새 우리가 운명론에 굴레를 쓰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왜냐하면 운(運)이란 말이 ‘인간이 어쩔 수 없는 정해진 상황’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이 말의 의미는 영어가 더 분명하게 표현 합니다. ‘운’은 'fortune' ‘luck’ ‘fate’ ‘chance’라고 합니다. 그럼 이 ‘행운이나 기회’는 내가 만들 수 없는 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니 운(運)을 믿는 사람들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스스로 인생을 만들어 갈 수 없음을 깨닫고 실망하게 됩니다. 좀 성숙한 사람이라면 이 실망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쪽으로 자신의 성숙을 드러내려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운’이라는 것을 부인합니다. 아니 있다고 하면 그것은 인도하심을 받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에 대한 것일 뿐입니다.

우리가 익히 잘 아는 다윗의 시편 23편은 이런 문제에 대해 명확한 답을 제시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나의 목자이시기에 나의 인생을 인도하시고 책임져 주신다고 고백합니다. 그에게 더 이상 필요한 것이 있었겠습니까? 그는 왕이었고, 경제적으로나 권력 면에서도 그를 따를 자가 없었을 텐데 말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자신을 하나님 앞에 인도함을 받는 자라고 낮추고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생명을 주시고, 선한 길로 인도하시며, 어떤 위기 가운데도 지켜주시는 분이라고 말합니다.

그가 왕이 되고 존경 받는 인물로 살아가는 것은 운이 좋아서, ‘운명(fate)’이 정해 져서가 아니라 선한 목자이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고 다윗이 한 일이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의 정수는 ‘뿌린 대로, 심은 대로 거둔다’는 것입니다. 내가 열심히 좋은 것을 심은 후에는 하나님의 선하심이 도우셔서 거두게 하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른 것입니다.

세상은 ‘운’을 믿지 않는다 해도 자기가 열심히 하면 뭔가 된다고 믿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도 맞지 않습니다. 농부가 열심히 노력해 씨를 뿌려 추수할 때가 되었다고 합시다. 그런데 추수 전에 심한 광풍이 몰려 온다면 어느 것도 거둘 수 없게 되는 것 입니다. 우리 삶에도 이런 일들이 일어 납니다. 이것은 운이 나빠서가 아닙니다. 우리 인생이 세상의 이치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손이 수고한대로 거두는 것도 하나님이 주시는 ‘복’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최소한 내가 크리스찬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살아가는 인생이라면 ‘운’보다는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이 행하셨다’고 고백하는 것이 옳은 것입니다.

성경은 그분(하나님)이 내 안에 있고, 내가 그분 안에 있으면 내가 수고하고 노력한 대로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따른다’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이 어떤 상황에 있든 너무 고민하거나 요행을 바라며 살지 마시길 바랍니다. 인생에 진정한 ‘복의 기회’는 여러분이 하나님을 목자로 인정하고 그분 안에서 열심을 다해 살면 여러분의 기대 이상으로 채우시고 돌보시는 하나님이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