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구원관선교회 김병구 장로
(Photo : 기독일보) 바른구원관선교회 김병구 장로

하나님의 절대주권 사상에 기초를 두고 있는 칼빈이즘은 인간의 전적 타락, 무조건 선택, 제한 속죄, 불가항력적 은총, 그리고 성도견인 등의5 대 교리를 그 지주로 한다.

칼빈이즘이 생각하는 데로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들을 구원하시려고 무조건 선택하신다면, 그리고 그 사람들의 구원이 분명하도록 예수그리스도의 대속의 공로로 그들과 화해하신다면,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로 선택한 그 사람들은 끝까지 견디어 영생에 이른다는 것은 불가피한 논리적 귀결이다. 왜냐하면 성도의 견인 교리의 부정은 곧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부정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원죄성을 지닌 존재로서 하나님을 찾을 수도 구원을 받을 조건을 갖추지 못한 존재임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그러한 존재가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을 믿어 성령으로 거듭난다면 거듭나기 이전의 불신의 인간과는 다른 존재성을 갖게 될 것이 아닌가?

거듭남이란 무엇인가? 칼빈은 독특하게 회개가 곧 거듭남이라고 말하면서 그것은 단번에 끝나는 것이 아니고 일생을 통하여 죽을 때가지 이루어지는 것인데 이 거듭남을 통하여 인간은 아담이 타락하기 전에 가졌던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가장 온전하게 나타났는대, 그것은 지식, 순결, 의로움, 그리고 거룩함이다( Institutes, Book I, XV-4). 칼빈에 의하면 거듭남으로 하나님 자녀는 죄의 굴레로부터 벗어 나지만, 아직 완전한 자유를 얻은 것은 아니며, 육신으로 부터 완전히 해방된 것도 아니다. 따라서 신자는 일생을 통하여 죽을 때까지 거듭남을 의미하는 회개를 지속해야 한다(Institutes, Book III, III- 9, 10).

중요한 것은 칼빈이 중생한 인간은 아담이 타락하기 전에 가졌던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게 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게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은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하나님이 죄인을 회개케하고 은총의 상태로 옮기실 때 그 죄인을 그 죄 아래 있던 자연의 멍에에서 해방시킨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그로 하여금 영적 선을 원하고 행할 수 있게 한다. 그러나 그 안에는 아직도 부패가 남아 있어서 온전하게 선한 것만을 원하고 행하지 않고, 악도 원하고 행한다; 영화의 상태에서만 사람의 의지는 전적으로 변함없이 선만을 원하는 자유를 가진다(CF XI-4-5).(주: 제가 참고한 한글 번역판은 오역이 심하였습니다. 한글을 영어와 대조하여 보시는 것이 요망됩니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하나님의 사랑을 그 마음에 부음(롬 5: 5) 받는 것이야 말로 거듭남의 핵심이며. 하나님 형상의 회복의 원인 이다. 하나님의 사랑이야 말로 하나님의 본질적 성품이기 때문이다. 아담의 타락으로 자신의 속에 내재하는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의 사랑을 상실했던 인간이 십자가의 공로로 하나님의 사랑을 부으심 받아 거듭남으로써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회복한 것이다. 이제까지 선행을 할 수 없었던 인간이 선행을 수 할 수 있는 능력과 자유를 갖춘 것이다. 영화에 들어갈 때까지는 완전한 것일 수 없지만, 인간은 선한 행위와 악한 행위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데 있어서, 자유의지를 행사할 수 있는 새 사람이 된 것이다. 다음의 성경 말씀은 이를 분명하게 가르쳐 준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갈 5: 1, 13)

하나님의 사랑을 부음 받고 자유를 부여 받아 거듭난 신자는 육에 대항하는 성령님의 싸움에 동참하느냐 아니면 육신대로 사느냐 하는 것 중에서 어느 것을 선택하느냐 하는 자유를 행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모든 자유는 책임을 수반함으로, 육신대로 사는 인간은 반드시 영적으로 사망한다(롬 8:13).

위와 같은 성경 말씀에 부합하여, 중생한 인간은 아담이 타락하기 전에 가졌던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게 된다고 가르치는 칼빈의 중생교리는 결과적으로 인간의 자유의지와 하나님의 절대 주권 간의 충돌의 가능성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인간의 자유의지는 구원의 완성으로 가는 성화의 과정에 있어서 하나님의 주권의 절대성을 훼손시키게 마련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근거로 하는 성도견인의 교리는 칼빈 자신의, 성경에 충실한, 중생 교리에 의하여 그 근거를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거듭남 이전의 사건인 무조건 선택, 제한속죄, 그리고 불가항력적 은총 등의 교리는 유효하다. 거듭난 후에야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여 자유의지를 행사를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거듭남 이전의 전적으로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로 예정되어 선택 받은 자들만이, 그 선택의 은혜에 불가항력적으로 실패함 없이, 주께로 와서 거듭남과 칭의구원을 받게 된다.

칭의 구원을 받은 성도가 성화의 삶을 살지 않을 때, 하나님께서 징계를 가해서라도 그를 반드시 영생으로 이끄신다는 견인설은 사랑의 하나님을 반영하는 생각이지만, 그러한 하나님의 사랑에도 불구하고 거듭난 성도가 말씀과 성령님의 인도에 순종하지 않고 죄악 가운데서 살 수 있음을 인정함으로써 우리는 성경에 더욱 충실하게 된다.

말씀과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최소한의 자유의지도 행사할 수 없는 인간이라면, 그러한 인간은 로봇과 다름이 없는 존재 일 수 밖에 없는데, 로봇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릴 수 있는 것인가?

성도견인의 교리가 무너지면 인간구속에 있어서 하나님의 주권은, 칭의구원까지만 절대적이고 성화의 과정에서는 절대적일 수는 없으므로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주춧돌로 하는 칼빈이즘은 발전적으로 수정되어야 한다.

특히 칼빈의 구원보장론은 수정 돼야 한다. 그리고 그 수정은 사도들의 서신서가 아니라 구원주 예수 그리스도의 친언으로 된 복음서, 그 중에서도 주님의 완성된 율법이요 집약된 복음인 산상수훈을 기준으로 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선포하신 구원론에 부합하도록 수정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