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뱁티스트 프레스는 올해로 70주년을 맞은 한국 전쟁을 기념하며 당시 참전했던 남침례교 목회자들의 사연들을 모아 최근 게재했다.
파울러 목사(Charles Fowler)는 1949년에 미 공군에 입대해 이듬해에 한국 전쟁에 투입됐다. 당시 10대 후반이었던 그는 북한군이 남한을 침공해 거의 한반도 전체를 점령할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 외에는 전쟁의 원인도 알지 못했다.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우리 정부는 나를 그 곳에 보냈고, 지금이라도 전쟁이 일어난다면 내 조국에 복종할 것”이라며 “나는 비록 88세지만, 만약 지시가 내려 온다면, 지금이라도 무기를 들고 복무할 것이다”고 고백했다.
파울러는 당시에 “북한 주민들과 러시아인들은 온 나라가 단결되기를 원했지만 공산당이 통치하는 것을 원했다. 그것이 관련된 가장 큰 문제였다”고 지적하며, 세계 정세의 중요한 균형을 바꿨던 한국전에 참전할 수 있었던 데에 깊이 감사를 표한다고 밝혔다.
BP는 올해 9월을 한국 전쟁에 있어 중요한 이정표였던 미국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이 인천에 상륙하고(15일), 서울을 재탈환(26일)한 지 70주년이 되는 특별한 달로서 소개했다. BP는 당시 주위에서는 인천을 장악하려는 맥아더의 시도를 무모하다고 여겼으나, 이 논쟁에서 그는 승리했고 결국 인천을 확보해냈다고 덧붙였다.
이 신문에 따르면, 당시 한국에는185명의 미군 목사가 있었으며 그 중 40%에 해당하는 72명이 남침례교 신자였고, 이 가운데에는 9월 21일 인천에서 8명의 군인에게 세례를 준 크레이븐(John H. Craven) 목사도 전투 현장에 있었다고 전했다.
미 육군 퇴역 군인이며 북미선교위원회 총무인 더그 카버(Doug Carver)는 “전투에서 목사의 주된 역할은 전쟁의 혼돈 속에서도 그들의 군대와 함께 한다는 의미인 ‘참석(presence)’의 사역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2018년 10월 타계한 또 다른 남침례교 목사인 파커 톰슨(Parker Thompson)은 한국 전쟁에서 칠흑 같이 검은 지뢰밭에서 죽거나 부상 당한 병사들을 옮기는 일을 자원했다.
남침례교 해군 군종인 호머 슈닉(Homer L. Schnick)은 1953년 휴전 직전에 치열했던 전투에서 부상을 당한 군인에게 물을 먹였던 기억을 글로 남겼었다. 그 군인은 부상을 입은 채로 공산주의자들에게 진흙탕으로 끌려 가다가 구출됐다.
슈닉은 부상 병동에 들어온 군인들이 빠른 속도로 회복돼 가는 모습을 보면서 “급박한 시기에 의사와 군인들을 보좌하면서 진정한 사명감을 느꼈다”고 회상했다.
한국계 미국인이자 북미 선교 이사회(NAMB) 감독인 사무엘 리(Samuel Lee) 목사는 이 전쟁이 한국에 끼친 영향은 물질적, 경제적 피해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리 목사는 “한국 전쟁은 군사적 관점에서 보면 서구와 팽창하던 공산주의 간에 불가피한 충돌이었다”면서 그러나 “당시 공산주의의 확장을 볼 때, 영적인 측면과 어떻게 기독교가 공산주의 아래에서 박해 받았는지는 간과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미국으로 건너와 남침례교 목사가 되어 미군에 입대했다. 입대는 그에게 있어 공부할 기회의 문을 열어준 하나님과 가정을 꾸리게 해준 새 조국을 섬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고 말한다.
리 목사는 한국전에 대해 “너무나 많은 북한 기독교인들이 6.25전쟁 직전과 직후에 남한으로 왔다. 하나님은 한국에서 기독교의 부흥을 불러 일으키시기 위해 기독교인과 그들의 기도, 그리고 신앙을 사용하셨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한 “전쟁 동안에 미국은 큰 대가를 치렀다”며 “일반적으로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특히 한국 정부를 지원한 데 적극적인 역할을 한 미국에 매우 감사해 하고 있다”고 전했다.
공식적인 집계에 따르면, 한국 전쟁 당시 사망한 미군은 – 13명의 목사를 포함한 - 3만 7천명이지만 실종자 수를 감안하면 실제 사망자 수는 이보다 많다.
뱁티스트 프레스는 현재 남한과 북한을 비교하며, 세계 12대 경제대국이 된 남한에 비해, 북한은 전 세계에서 가장 제한적인 경제에 처해 있다고 밝혔다. 또 남한이 미국에 이어 선교사 파송 국가로 세계2위인 데 반해, 북한은 세계 최악의 기독교 박해 국가로 평가받는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이 신문은 “한국 전쟁은 제2차 세계대전과 베트남 전쟁 사이에 일어났기 때문에 종종 ‘잊혀진 전쟁(the Forgotten War)’으로 불린다”며 “그러나 한국인들은 잊지 않고 있다. 살아남은 참전 용사도,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의 가족들 역시도 잊지 않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