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6.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으로 있을 때에는 주와 따로 있는 줄을 아노니 7.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다 8.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 9.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10.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고후 5:5-10>

박진우 목사 (켈러 한인 제일 침례교회 담임)
박진우 목사 (켈러 한인 제일 침례교회 담임)

본향을 사모하며 사는 자들은 바로 "성령을 따라 사는 자들"입니다.

앞의 1절부터 4절까지 "본향을 사모하는 삶"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5절 볼까요? 이것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분이 있다는 겁니다. 누구시죠? 네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안에 성령님을 주신 겁니다. 부활의 주님이 지금 우리 안에 성령으로 함께 하시는 겁니다. 이 성령님께서 1절부터 4절의 본향을 사모하는 삶을 이루어 주신다는 겁니다. 반드시 이루십니다. 하나님은 절대 실수하지도 실패하지도 않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됩니까? 절대 그러면 안됩니다. 성령님께서 이루시는 역사에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사는 것이 성령님께 순종하는 삶일까요?

첫째로 믿음으로 행하는 삶입니다. 6절부터 7절입니다. 6절은 '그러므로'로 시작합니다. 앞의 모든 구절이 원인 되어서 결과적으로 이렇게 해야 한다는 겁니다. 본향을 사모하는 삶을 살아야 하고 그 삶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주셨기 때문에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6절입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본향을 가는 것을 이루시기 때문에 '담대하다'라고 고백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에는 성령님과 동행을 하지만 실질적으로 예수님을 볼수 없다는 것을 안다는 겁니다. 그래서 어떻게 살아야 한다구요? 7절입니다. 보이는 이 세상을 위해 살면 안되고 보이지 않는 그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그냥 머리로만 생각에서만 머무르지 말고 실질적으로 우리의 삶 속에서 행해야 한다는 겁니다. 믿음은 반드시 행함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아니 나타나게 됩니다.

이렇게 행하는 믿음으로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다음 구절에 나옵니다. 보는 것으로 행하지 말아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이 세상 것을 위해 살아가지 말라는 겁니다. 눈에 보이는 사람을 위해 살아가지 말라는 겁니다. 눈에 보이는 물질을 위해 살아가지 말라는 겁니다. 눈에 보이는 건강을 위해서 살아가지 말라는 겁니다. 눈에 보이는 환경을 위해 살아가지 말라는 겁니다.

오히려 눈에 보이지 않는 예수님을 위해 눈에 보이는 것을 사용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근데 반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의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의 것들 위해 눈에 보이지 않는 예수님을 사용해 살아가는 사람들말입니다. 반대가 되어야 합니다. 보이지 않는 예수님을 위해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이 모든 것들을 사용해서 살아가야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것으로 드러나도록 살아가야 한다는 겁니다. 앞에서 말씀 드린 눈에 보이는 건강, 물질, 환경, 사람, 비즈니스 이 모든 것들을 보이지 않는 예수님을 위해 사용하며 사는 것이 바로 오늘 말씀에 믿음으로 행하는 삶인 것입니다.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 바로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들입니다.  

둘째로 심판을 두려워하는 삶입니다. 8절부터 10절입니다. 8절입니다. 바울은 자신은 믿음으로 인해 담대해져 죽음을 원하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왜요? 죽음 뒤에 예수님과 함께 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9절입니다. 자신은 살든지 죽든지 오직 예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기를 원하라고 고백합니다. 왜일까요? 10절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다 반드시 그들이 살아왔던 삶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심판을 받기 때문입니다. 다 반드시입니다. 그 기준은 그리스도의 심판입니다. 앞구절과 연관해서 생각해 본다면 그리스도를 기쁘시게 했느냐 안 했느냐로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바울은 살든지 죽든지 그리스도를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기 원한다는 겁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반드시 마지막 날에 심판을 받게 될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기준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을 믿느냐 안 믿느냐로 천국과 지옥이 정해질겁니다. 그리고 믿더라도 예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느냐 안 살았느냐로 심판을 받게 됩니다. 이 심판을 두려워하면서 지금을 사셔야만 합니다.

이 심판을 두려워하는 데 막 살아갈수가 있을까요? 절대 그럴수 없습니다. 어떤 일을 하든지 이 일이 예수님이 기쁘시게 하는 일인지를 반드시 생각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으로 심판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예수님을 기쁘시게 할 수가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그 예수님을 주인으로 인정하며 사는 삶입니다. 내 뜻대로 내 생각대로 내 감정대로 내 비전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주인되시는 예수님의 뜻대로 예수님의 마음으로 예수님의 꿈을 이루어 드리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겁니다. 그렇게 예수님으로 인해 심판을 받는다는 것을 두려워하는 삶을 살아갈 때 우리는 성령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겁니다.

이렇 듯 우리는 썩어질 보이는 것이 아닌 영원한 보이지 않는 것을 위해 믿음으로 살며 앞으로 있을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며 살아갈 때 성령을 따라 살아가는 자가 되는 겁니다.

박진우 목사 (켈러 한인 제일 침례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