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사랑에 빠진 장끼(꿩의 수컷)와 까투리(꿩의 암컷)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서로 결혼을 할까 말까 망설이고 있었습니다. 이모 저모 생각해보니 예상되는 문젯거리도 많고 해서 걱정하던 끝에 둘은 동물들의 선생님인 올빼미에게 조언을 들으러 갔습니다. 올빼미는 그들에게 물었습니다. "서로 다투어 본 적 있는가?" 장끼와 까투리는 대답합니다. "다투다니요? 지금 우리는 열심히 사랑하고 있어요. 사랑하니까 결혼하려고 하는 것이지, 싸우면 왜 결혼하겠어요?" 올빼미는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싸워본 적이 있어야 한다. 잘 듣거라. 누구나 사랑한다는 말은 하기 쉽단다. 그러나 미안하다는 말은 쉽게 하지 못하지. 서로 사랑한다는 것만으로 결혼할 자격이 충분하다고 볼 수 없다. 싸워도 보고, 그래서 서로 미안하다고 사과할 줄도 알아야 결혼할 자격이 있다." 장끼와 까투리는 그 말의 의미를 계절이 바뀌고 나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유대 사람들은 사람을 평가할 때에 세 단어를 사용한다고 합니다. 히브리어 "키스, 코스, 카스"입니다. 키스는 돈주머니를 뜻합니다. 돈 쓰는 법을 보면,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돈을 잘 버는 능력, 유지하는 능력도 중요하지만 돈을 어디에, 어떻게 쓰느냐 하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나를 위해 쓰는지, 남을 위해서 쓰는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쓰는지. 이기심에 사로잡혀서 돈의 노예가 된 사람이라면 그처럼 비참한 인격이 없다는 것이지요.
코스란 잔, 곧 술잔을 뜻합니다. 술 마시고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보면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음식이든 언행이든 절제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는 의미입니다. 카스란 분노 조절을 뜻합니다. 자신의 감정을 올바로 처리하고, 마음을 조절할 수 있는 인내력이 있어야 바람직한 인격의 소유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생각할 때에 여러분은 어떤 이미지가 연상되십니까? 강력하고 무서운 분이 상상되는지요? 아니면 부드럽고 따뜻한 분이 상상되는지요?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를 소개하면서 <너그러움>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셨습니다. Generosity. "너희를 좋게 대하여 주는 사람들에게만 너희가 좋게 대하면, 그것이 너희에게 무슨 장한 일이 되겠느냐? 죄인들도 그만한 일은 한다. 도로 받을 생각으로 남에게 꾸어 주면, 그것이 너희에게 무슨 장한 일이 되겠느냐? 죄인들도 고스란히 되받을 요량으로 죄인들에게 꾸어 준다. 그러나 너희는 너희 원수를 사랑하고, 좋게 대하여 주고, 또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어라. 그리하면 너희는 큰 상을 받을 것이요, 더없이 높으신 분의 아들이 될 것이다. 그분은 은혜를 모르는 사람들과 악한 사람들에게도 인자하시다. 너희의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것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눅6:33~36)
은혜를 모르는 사람을 대하면 우리는 짜증이 납니다. 악한 사람을 보면 한 대 때려주고 싶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사람에게도 인자하시다는 것이지요. 나를 사랑하시는 그 분이 그렇게 인자하신 분이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우리들도 그렇게 인자한 사람이 되라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Be compassionate. 탕자를 대하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에게 화가 나서 집으로 들어오지 않는 큰 아들을 아버지는 따로 만납니다. 따뜻한 말로 설득하고 달랩니다. 우리는 이런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며 날마다 기도하지 않습니까? 우리도 그렇게 인자한 사람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이기범 칼럼]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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