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크게 뜨고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이름을 찾는다. 어디 쯤일까.... 그래, 찾았다! '제임스 알워드 밴 플리트 주니어'(James Alward Van Fleet JR.). 미국의 군인으로 노르망디상륙작전에 참가했고, 발지전투를 지휘했던 故 밴 플리트 장군의 아들이다.  그의 이름이 서울 용산에 있는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에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6.25 한국전쟁에 연합군의 일원으로 참전했던 故 밴 플리트 주니어. 그의 이름을 이토록 애타게 찾은 이는, 참전용사 보은행사를 주최한 새에덴교회(담임 소강석 목사)의 초청으로 한국을 찾은 토마스 갤로웨이 퍼거슨 씨다. 그의 육군사관학교 동기가 故 밴 플리트 주니어의 조카라고 했다. 퍼거슨 씨는 미국에 있는 자신의 친구에게 그 소중한 이름을 전하려고 명비에 새겨진 故 밴 플리트 주니어의 이름을 하얀 종이 위에 조심스레 옮겼다.  

퍼거슨 씨는 한국전이 아닌 베트남전 참전용사다. 그런데 그의 외할아버지가 바로 故 에드워드 알몬드 장군이다. 알몬드 장군은 6.25 한국전쟁 당시 인천과 원산에서의 상륙작전을 지휘했으며, 흥남철수에서 원래 작전계획에 없던 피난민 수송을 명령해 수많은 한국인들의 목숨을 구한 인물이다.

지난 1986년부터 2년 간 주한미군으로도 있었던 퍼거슨 씨는 "흥남철수에서 피난민 수송을 결심하셨던 할아버지를 매우 존경한다. 아마 그는 다른 상황이었을지라도 그와 같은 결정을 내리셨을 것"이라며 "알몬드 장군의 후손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럽다"고 했다.

참전용사 새에덴교회 전쟁기념관 퍼거슨
▲흥남철수작전을 지휘했던 故 에드워드 알몬드의 외손자인 토마스 갤로웨이 퍼거슨 씨가 명비에 새겨진 故 밴 플리트 장군의 아들 故 밴 플리트 주니어의 이름을 가리키고 있다. ⓒ김진영 기자

퍼거슨 씨 외에도 이번 보은행사에 참가한 45명의 참전용사들과 가족들은 20일 전쟁기념관을 찾아 뜻깊은 시간을 보냈다. 무엇보다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잊지 않고 기억해 준 것에 감격해 했다. 한 참전용사의 가족은 전사자 명비에서 가족의 이름을 발견한 뒤, 벅찬 가슴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가 놓여 있는 곳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전혀 알지도 못하는 나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국민을 지키라는 부름에 응했던 아들·딸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Our nation honors her sons and daughters who answered the call to defend a country they never knew and a people they never met.)

이날 오후에는 매우 뜻깊은 자리가 마련되기도 했다. 정부(국가보훈처)가 6.25 한국전쟁 당시 흥남철수작전에 나섰던 국내외 참전용사들을 초청해 이들의 헌신과 공로를 기리고 위로하는 리셉션을 개최한 것. 여기에는 이낙연 국무총리도 함께했다.

흥남철수는 1950년 12월 23일, 혹독했던 추위와 중공군의 포위를 뚫고 메르디스빅토리호가 1만4천명의 피난민들을 수송해 그들을 구한, 세계 전쟁사에서 가장 감동적인 작전 중 하나다. 당시 정원이 2천명 정도에 불과했던 수송선은 군수물자를 버리고, 정원의 약 7배에 달하는 민간인을 태웠다. 그리고 오랜 항해 후인 25일 크리스마스, 마침내 거제도에 도착했다. 그 기간 동안 배 위에서는 5명의 아기가 태어나기도 했는데, 이 때문에 흥남철수작전은 '크리스마스의 기적'이라 불리기도 한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참전용사들을 향해 "여러분의 희생 덕분에 대한민국은 기적처럼 일어나 세계 10위권의 경제 강국이 되었고, 민주화 또한 이루었다"며 "대한민국과 국민들은 여러분의 희생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그 은혜를 영원히 기릴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여러분이 목숨을 걸고 지키셨던 한반도의 평화가 항구적으로 뿌리내릴 수 있도록 끝까지 성원해 달라"고 전했다.

6.25 참전용사
▲정부가 마련한 6.25 한국전쟁 참전용사 리셉션에서 참석자들이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김진영 기자
새에덴교회 소강석
▲참전용사와 가족들을 환송하는 만찬회에서 인사말을 전하고 있는 소강석 목사 ⓒ김진영 기자

리셉션 후에는 새에덴교회가 다음날인 21일 고국으로 돌아갈 참전용사들과 가족들을 위해 환송만찬을 준비했다. 지난 16일 한국을 찾아 17일 '한국전 68주년 상기 참전용사 초청 보은·평화 기원예배'를 드리고, 18일부터 해병대 사령부, 해군2함대, 천안함기념관, 평택 주한미군, 판문점 등을 차례로 방문했던 참전용사들과 가족들은, 이처럼 의미 있는 자리를 마련해 준 새에덴교회 소강석 목사와 교인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이 자리에서 소강석 목사는 "비록 이번 일정에 모두 동행하지 못했지만 마음으로는 항상 여러분들과 함께 했었다"며 "미국과 캐나다에선 오신 참전용사분들과 가족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저 뿐 아니라 한국교회와 대한민국은 여러분들의 사랑과 숭고한 헌신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부디 행복한 여정을 마치고 무사히 돌아가시길 바란다"고 전했다.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故 도일 장군의 소자인 제임스 도일 씨는 "한국에서 여러분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내겐 매우 큰 특권이자 영광이었다"며 "무엇보다 서로의 기억과 경험을 함께 나눌 수 있어서 감사했다. 대한민국은 6.25 한국전쟁 후 약 70년 동안 믿을 수 없는 발전을 이뤘다. 이제 이 한반도에 평화가 임하길 간절히 바란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