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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 하면 떠오르는 말들이 있는데, 그 중 하나는 '낭만'이다. 사람은 대개 유아적 시기를 지나 사춘기를 맞게 되면, 누구나 감상에 빠지고 또 고민도 하게 되며 낭만을 찾게 된다. 그런데 요즘은 낭만의 과잉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내가 사춘기를 맞던 1980년대에도, 젊은이들은 여전히 낭만을 찾아 헤맸다. 인터넷은 없었지만 밤이면 올빼미처럼 잠을 안 자고 라디오에 귀를 기울여 누군가 보낸 엽서 속의 슬픈 사연이 마치 나의 일인 양 슬퍼하기도 했으며, 유명한 시를 인용하며 연애편지를 쓰기도 하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한숨짓기도 하고 누군가를 짝사랑하기도 하는 등 사춘기가 겪는 일들을 비슷하게 겪곤 했다.

물질주의 세상의 많은 문화는 사람의 감정과 감상을 더욱 자극하는 것 같다. 그래야 지갑이 열리기 때문에 그렇다. 영상을 통해, 또 음악을 통해, 글과 그림을 통해 다양한 분야의 감상주의적 문화를 만들어내는 것이 요즘 세상이다.

누구나 사춘기를 겪고 또 감상에 빠지는 연령대와 시기를 겪을 수 있고 이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런 모습이 유아적 취미보다는 좀더 자란 것일지는 몰라도 인간으로서 성숙한 모습이라고는 할 수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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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적이지 못한 사람은 대개 계산적이고 인간미가 없는 것처럼 비치기도 하는데 이는 너무 편협한 생각이다. 물론 적당한 감정을 갖고 있지 못하거나 감정적으로 메마르고 불안정한 사람이 살인을 하는 등 범죄를 저지르는 사례도 간혹 있지만, 그렇다 해서 감정이나 감상이 그런 사람들을 올바로 인도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감정이 과잉되거나 잘못 자리를 잡으면 이상한 애정으로 흐르거나 집착 등의 기형적인 표현으로 나타날 수 있다.

감상적이고 감정적인 것은 신앙생활에도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감정에 치우치는 이들은 마음이 뜨거워지고 성령이 충만한 것처럼 느껴질 때는 믿음이 좋은 것 같지만, 감흥이 없을 때는 하나님이 과연 있는지 없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냉랭해진다. 이런 이들은 다시금 그 뜨거움의 불을 지피기 위해 기도원으로 무슨 무슨 집회로 쫓아다니면서 눈에 보이는 헛된 은사를 구하는 오류를 범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이 구하는 성령의 은사들은 사실 어디에도 없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이들은 모두 그 열매를 거두면 되고, 그것이 성령 충만의 증거가 되는 것이다. 그 열매란 다름 아닌 갈라디아서 5장 22절에 나오는 아홉 가지 열매이다. 이 열매들은 모두 사람의 인품에 관한 것이다.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자기 안에 사는 이들은 인격이 변화될 수밖에 없고, 그것은 자기도 모르게 겉으로 흘러넘쳐 '행함이 있는 진짜 믿음'으로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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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적인 습관을 가진 사람은 나이를 더 먹어도 여전히 삶에서 감상적인 즐거움을 찾으려고 한다. 계절이 바뀌면 먼 산을 바라보며 옛 추억에 잠기기도 하고, 비가 오면 슬픈 노래라도 들으면서 감상에 빠지려 하고, 별로 마시고 싶지 않은 커피도 한 잔 기울이고 싶어 한다.

이러한 감정을 표현한 가요 '낭만에 대하여'에는 그런 가사가 나온다. "이제 와 새삼 이 나이에 실연의 달콤함이야 있겠냐마는...". '실연'조차 달콤한 낭만으로 즐기고, 고독조차 맛난 음식인 양 질겅질겅 씹는다는 감상적 세대의 단면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런 중장년층의 낭만이라는 것은 '나름대로 멋을 부린 마담에게 실없이 농담이나 던지는' 씁쓸한 몸부림이 아닐지....

지나치게 감상적인 사람들은 별로 감정이 안 생겨도 일부러 그런 감정을 찾아 헤매기도 하고, 가라앉은 감정의 찌꺼기들을 다시 휘저어보려 애쓰기도 한다. 감정이 점차 없어지는 현상을 자신이 늙어버리거나 속물, 또는 퇴물이 되어가는 징조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이런 식의 낭만을 지키려는 사고가 사춘기 이후로 계속되다 보니, 결혼을 해서도 낭만적인 연애처럼 부부생활을 이어가려 하는 경향이 생기고, 그런 것들이 시들해지고 밋밋해지면 사랑이 식었다고 판단하여 더이상 살아가는 재미와 의미를 찾지 못하는 삶이 되고 만다.

사람이 태어나면 젖을 찾게 되고 더 자라면 밥을 먹게 되듯, 몸이 자라고 머리가 자라면 그 생각도 점점 성숙한 것으로 옮아가야 한다. 부모에게 받기만 하던 사람도 나이가 들면 부모를 섬기고 책임질 줄도 알아야 하듯, 사랑하는 사람 간에도 뭔가 받기만 하고 둘만의 사랑놀이만 할 것이 아니라 더 성숙한 책임과 의무를 다하면서 상대방의 권리와 입장을 존중해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감상적 습관을 탈피하라는 것은, 비가 오면 괜히 좋아하던 사람이 이제는 차가 밀리고 옷이 더러워질까 염려하는 그런 식의 변화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유아적 취미를 버리지 못하면 나이를 먹어서도 사랑의 애틋함만 갈구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자기 자리를 소홀히 하고 엉뚱한 즐거움만 찾아 헤맬 수 있다는 것이다.

나이와 위치에 걸맞은 성숙한 삶을 살려면 감정의 노예가 되지 말고 감정을 다스릴 줄 알아야 할 것이다.

김재욱 작가

사랑은 다큐다(헤르몬)
연애는 다큐다(국제제자훈련원)
내가 왜 믿어야 하죠?, 나는 아빠입니다(생명의말씀사) 외 30여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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