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어려서부터 성탄절을 저의 삶의 가장 즐거운 날이라 생각해 왔습니다. 제 생일보다도, 공부를 잘해서 상을 받는 날 보다도, 용돈을 받는 날보다도 이상하게 성탄절은 꿈과 같은 날이었습니다.
동네 시골 교회에서 초등학교 1학년 때 성탄절 발표회 장기자랑으로 태권도를 한 기억이 납니다. 늘 종이를 크게 오려서 거기에 마치 컴퓨터로 글씨를 쓰듯 정확하게 [축 성탄] 혹은 [예수님 오심을 축하 드립니다] 라는 포스터겸 글을 쓰던 기억도 생생합니다.
학교 수업 시간에는 추운 겨울에 석탄 난로에 양철 도시락을 올려 놓아서 김이 모락모락 나던 시간이 그립기도 합니다. 그때는 정말 무척 추운 겨울이었는데, 이제는 그런 것이 추억이 되어 버렸습니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스쿠루즈] 가 실려 있어서 그것을 학교 종강 시간에 했던 기억도 납니다.
특별히 청소년기에는 교회에 가서 성탄절 전야를 선후배들과 함께 즐기며, 연극도 하고, 찬양도 부르고, 아이들도 돌보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정이나 새벽에 교회 주변이나 시내를 돌면서 성탄 캐롤링을 목이 터져라 불렀습니다.
1970년도에는 나이가 어려도 교회가 세상을 주도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성탄절은 모두가 즐거워 하는 날이었습니다. 그리고 성탄절의 주인공은 당연히 기독교의 예수님이셨습니다. 물론 당시에도 산타가 상업으로 이용되었지만, 지금처럼 산타를 성탄의 주인공으로 대체하려는 시도는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교회는 지난 30년간 메시야 공연과 또한 6년간 성탄 뮤지컬을 통해 이웃을 교회에 초청했습니다. 그리고 6년간 성탄 케롤링을 통해 우리 교회 주변 이웃을 방문하여 선물을 주고 찬양을 불렀습니다. 10년이 넘도록 홈레스 사역을 꾸준히 해오신 교회 집사님들도 계십니다.
교회는 사람들을 초청하는 사역과 더불어, 또한 교회 스스로가 밖으로 나가는 사역을 함께 병행해야 합니다. 교회에 발길 한걸음 옮기기 조차 어려운 이웃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84번가 주변에 그런 이웃들이 많이 삽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증거하면서 그들이 꼭 우리 교회에 나올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 주변에 있는 이웃들은 1년에 한번이라도 [예수는 그리스도] 시라는 복음을 꼭 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 교회가 이 지역에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2011년 성탄 케롤링을 처음 시작했을때, 연세가 80이 넘으신 흑인 할머니 한분은 눈물을 흘리시면서, 40년 만에 이런 케롤링과 성탄 선물을 처음으로 받아 보신다고 감격해 하셨습니다. 아프리카에서 피난 온 가족들과 다섯명의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기도 했습니다. 불치병으로 고생하는 아이를 데리고 케롤링을 기뻐하면서, 선물을 받던, 담장 너머 백인 아주머니도 기억이 납니다. 중국사람, 베트남 사람들도 우리 교회 주변에 많이 삽니다. 사실 우리 교회주변은 다민족으로 둘러싸여져 있습니다.
우리 이번 성탄 칸타타에, 그리고 성탄 뮤지컬과 연합 예배에 우리의 이웃을 초청합시다. 그리고 몸이 불편하신 분들을 제외한 모든 교인들이 우리 교회 주변의 이웃들에게 예수님 나심을 축하하는 찬양을 들려줍시다.
세상은 변해도 진리는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 줍시다. 우리 교회가 문을 닫으면 우리 교회 주변 지역이 기뻐할까요? 슬퍼할까요?
여러분!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주안에서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주안에서 최성은 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