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21장4-6절
4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신줄 알지 못하는지라
5 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6 가라사대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 하신대 이에 던졌더니 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이장렬 교수(미드웨스턴침례신학대학원 신약학)
이장렬 교수(미드웨스턴침례신학대학원 신약학)

부활하신 예수님은 은혜의 주님이시다. 제자들의 죄를 위해 그리고 세상 죄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던 그 주님께서 부활하신 후에도 변함없는 은혜로 제자들에게 계속 다가오신다.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던 주님의 사랑은 부활 후에도 변함없이 계속된다 (요13:1 참조).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던 예수님이 바로 부활하신 영광의 주시다!

부활하신 주님을 이미 두 번 대면했던 제자들은 전문 어부 출신인 베드로의 주도 하에 고기잡이에 나선다. 하지만 디베랴 호수의 물고기들은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이들을 피해 간다. 제자들에겐 허무함과 탈진, 노동 무가치의 바닥 치는 경험만이 남는 듯하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다시 만나 주시기까지는 말이다. 저자 요한은 고기잡이에 나섰다가 밤새 허탕만 친 이 사건을 통해 제자들이 예수님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간접적으로 말해 주고 있는 듯하다 (요15:5 참조). 엄청난 포획(요21:6)이 기적인 것처럼 사실 어쩌면 밤새 물고기가 단 한 마리로 걸려들지 않은 것도 기적인지도 모른다. 이는 적어도 주님의 베푸시는 놀라운 기적을 경험하기에 앞서 제자들의 심령을 일구시는 신적 간섭의 한 방식이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이미 제자들에게 와 계셨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이미 디베랴 호숫가 제자들 곁에 함께 계셨다. 이어지는 요한복음 21장의 내용을 보면 주님께서는 디베랴 호수에 당도해서 제자들의 아침 식사를 미리 준비해 놓으셨다(요21:9). 그러나 허무함과 탈진에 짓눌린 제자들은 주님께서 그들 곁에 와 계심을 전혀 깨닫지 못했다. 제자들에게 부활 후 이미 그들을 두 번 찾아오신 주님이 그들을 다시 만나러 오실 것에 대한 기대감은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누군가 호숫가에 서 있는 것을 보긴 했지만 그게 예수님이라고는 생각치 않았다(요21:4). 그들은 그렇게 영적으로 둔감해져 있었다. 마치 우리처럼 말이다.

저자 요한은 주님께서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요 21:5)”고 물으셨다고 기록한다. 이 질문은 헬라어로는 파이디아 메이 티 프로스화기온 에케테 이다. 이 특정한 질문 형태는 질문자가 상대방이 어떻게 답변을 할지 이미 알면서 물어보는 경우에 사용된다. 특별히 “아니오”라는 답변이 나올 것을 미리 알고 물을 때 사용된다. 그러니까 주님께서는 “얘들아, 너희 물고기를 좀 잡았는지 아닌지 내가 확실히 잘 모르겠는데, 밤새 상황이 어떻게 되니?”라고 물으신 것이 아니라, “너희 밤새도록 잡은 물고기 한 마리도 없지? 맞지?”라고 물으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물고기를 좀 잡았는지 아닌지를 몰라서 물으신 것이 아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이 밤새 허탕만 쳤음을 정확히 알고 계셨다. 그들의 허무함, 노동 무가치 경험, 바닥을 치는 체험을 속속들이 헤아리고 계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질문하신 의도는 결코 정보수집에 있지 않다. 도리어 제자들이 자신들의 상황을 직면하고 주님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깨닫게 하시는데 그 목적이 있다 (요15:5 참조).

아무것도 잡은 게 없다는 처절함이 담긴 제자들의 답변을 들으신 후, 주님은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배 오른편으로 그물을 던지라 명령하신다. 그렇게 하면 물고기를 잡을 것이라고 단언하신다 (요21:6). 당시에는 보통 키잡이 노가 배의 오른편에 있는 이유로 어부들이 배 왼편으로 그물을 던졌다고 한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예수님은 전문 어부의 상식과 전통에 어긋나는 명령을 내린 것이다. 어쨋든 제자들은 주님 말씀대로 행했다. 그랬더니 밤새 제자들을 피해 도망 다니던 물고기들이 총집합하여 단번에 그물에 걸려든다. 한 마리만 걸려들어도 밤새 허탕 친 것과 얼마간 대조를 이루겠지만, 겨우 그 정도가 아니다. 그물을 들 수 없을 만큼 많은 물고기가 한숨에 걸려든다. 153마리의 큰 물고기들이 단번에 포획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요21:11참조).

도대체 제자들이 무슨 일은 한 것인가? 그들이 한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다. 그저 은혜로 그들을 다시 찾아오신 주님 말씀대로 행한 것 외에는 말이다. 주님 말씀 대로 했더니 기적적 포획이 일어났다. 디베랴 호수의 제자들에게 필요했던 것은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어린아이 같은 신뢰와 순종이었다.

디베랴 호수에서 일어난 기적적 포획의 사건은 주님 없이 스스로 해 보려는 인생과 주님 말씀을 어린아이처럼 신뢰하고 순종하는 인생의 극명한 차이를 절실히 보여준다. 그때나 지금이나 제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주님 말씀에 대한 어린아이 같은 신뢰와 순종 뿐이다. 우리가 진정 주님의 말씀을 우리의 생각과 경험보다 존귀하게 여기게 된다면, 그렇게 주님을 신뢰하고 그분 말씀대로 산다면 이 땅에서 사는 동안에도 다가오는 세대의 풍성한 생명을 미리 경험할 것이다. 잘 알려진 찬송가 가사대로, “의지하고 순종하는 길은 예수 안에 즐겁고 복된 길”이다.

은혜의 주님께서 제자들을 다시 찾아오셨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그들을 세번 째로 방문하셨다. 밤새 허탕만 쳤던 제자들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을 것 같은 포획의 기적을 경험했다. 하지만 요한복음은 여기서 종결되지 않는다. 더 복되고 은혜로운 사건들이 제자들을 그리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