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희 상담사
한수희 상담사

언제든 상처 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상대가 상처를 주도록 덫을 쳐 놓고 있다. 좀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스스로 상처 받을 세팅을 미리 마련해 놓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여러 형태로 말이다.

첫 번째 덫은 이중 속박구조를 만들어 놓는 것이다. 남자친구에게 붉은 색과 파란 색 넥타이를 선물한 여자가 파란 색 넥타이를 매고 나온 남자친구를 만날 때 “ 붉은 색 넥타이는 마음에 안 들어요?”라고 묻는다. 만일 그가 붉은 색 넥타이를 매고 나왔어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넥타이 두 개를 한꺼번에 매고 나올 수는 없는 일이니까.

상대가 어떤 선택을 하든 부정적 의미로 해석하는 사람의 기대를 완전히 충족시켜 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럼에도 이중 속박의 덫을 놓는 사람은 상대에게 모순되는 요구를 함으로써 상대방을 항상 상처를 주는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다. 심지어 “당신 목소리는 참 예뻐요.” 라는 칭찬에도 “얼굴은 별로라는 거군요.” 라고 대꾸한다. 모든 사람을 가해자로 만들기에 탁월한 방법이다.

또 다른 덫은 변덕이다. 자신의 기분에 따라 사람과 상황을 대하는 기준이 달라지는 사람을 말한다. 몸이 아프거나 기분이 좋지 않은 경우 이전에 용납되던 기준을 도무지 받아 들이지 못할 때도 물론 있을 수 있다. 문제는 바뀐 기준을 알리지도 않고 알아서 해 주길 기대한다는 것이다. 내 상황이 바뀌어 있을 때는 적어도 알리는 노력은 해야 한다. 그것은 상대의 몫이 아니라 본인의 몫이다. 하물며 고집하던 기준을 순식간에 뒤집어 버리는 경우에 당하는 사람의 황당함은 이루 말 할 수 없다. 평상시에 농담을 잘 주고받던 사이였는데 여느 때와 다름없는 농담에 버럭 화를 내며 상대방을 무례하고 상처 주는 사람으로 만들어 버리는 경우가 그 예다. 그런 사람 곁에 있는 사람들은 늘 피곤하다. 언제 지뢰를 밟게 될지 몰라 조심해야 하기 때문에 결국 그 곁을 피하게 된다.

헛된 기대 역시 위험한 덫이다. 헛된 기대를 하는 사람들의 마음의 소리를 들어보자.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면 내가 뭘 원하는지 당연히 알아야지. 그게 사랑이니까. 당신이 나의 필요를 채워주지 않는 건 다분히 고의적인 거야. 당신이 날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니까.’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배우자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채워 주지 않을 때 애정이 없다고 결론 지어버린다. 그래서 수시로 배우자를 비난하고 본인은 외롭다. 그들의 기대는 헛될 뿐 아니라 옳지 못하다. 배우자가 나와 다른 독립적 존재이며, 같은 상황에 처했을 때 다른 판단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배우자를 바라보는 자신의 시선 어디에 사랑이 있는가? 스스로 물어야 한다. 쓸데없이 배우자에게 죄책감을 느끼게 하는 것은 본인에게도 배우자에게도 독이다.

이런 덫 들은 나쁜 짓을 하지 않은 상대를 상처 준 사람으로 만들고, 특별히 나쁜 일을 당하지 않은 자신을 상처 받은 사람으로 결정지어 버린다. 내가 상처의 덫을 놓고 있는 사람이라면 본인을 위해서도 상대를 위해서도 그 덫을 거둬들여야 한다. 내 배우자나 가까운 지인이 상처의 덫을 놓고 있는 사람이라면 ‘분리 수거함’을 만들어야 한다.

‘나의 잘못’과 ‘너의 잘못’을 분리하는 작업이 가장 먼저 이루어져야 하는 기초작업이다. 앞선 칼럼에 소개했듯이 내가 상처 받는 일이 있을 때, 자문해 보아야 하는 몇 가지의 질문들을 통해 나의 감정이 정당한 것인지 먼저 점검해야 한다. 그 점검을 마친 후 상대가 던진 덫에 걸린 경우, 즉 ‘너의 잘못’이 분명한 경우라면 이제 책임에 대한 분리 작업을 해야 한다.

상대에게 책임을 묻고 따지고 앙갚음을 하라는 말이 절대 아니다. 상처 받았다며 희생자의 모습을 하는 상대의 감정까지 다 떠 안지 말라는 것이다. 상처의 덫을 놓고 있는 상처 유발자들의 도발에 나를 맡기지 말라는 뜻이다. 그의 도발에 걸려 스스로 가해자가 되어 늘 그 상처에 책임을 지려고 전전긍긍해서는 안 된다. 그 노력들을 했음에도 더한 요구만 해 오는 상대에게 결국 분노를 터트리는 실수를 해서도 안 된다. 상대가 느끼는 불합리한 감정은 상대의 몫으로 돌려 주어야 한다.

습관적으로 상처의 덫을 놓는 사람들의 동기는 다양하다. 그러나 그들의 내면에는 자신이 인식하든 못 하든 상처를 권력으로 이용하려는 숨은 동기가 분명 있다. 그것은 악한 것이며, 늘 희생자 코스프레를 하는 그들도 자신의 숨은 동기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외롭고 추운 시간을 지나야 한다. 책임을 돌려 주는 것은 그 시간을 제공한다는 의미를 포함하는 것이다.

그 추운 계절을 지날 때 그들이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함으로 상처의 자리가 새로운 생명이 잉태되는 자리로 바뀔 수 있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