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틀랜타성결교회 김종민 목사.
(Photo : ) 애틀랜타성결교회 김종민 목사.

주머니 속에 찰랑거리는 것이 있어 손을 넣어보니 열쇠 꾸러미가 있다. 묵직하다 못해 옷이 다 늘어날 정도로 한 움큼이나 된다. 필요 없는 것 몇 개 빼 놓고 다닐까, 이리 저리 열쇠 용도를 살펴보니 이것은 안되고, 저것도 필요하고 결국 포기하고 다시 주머니에 쑤셔 넣는다.

현관 열쇠, 자동차 열쇠, 사무실 열쇠 등 언제부터 이렇게 많이 가지고 다니게 됐나 싶다. 뭘 그리 잠글게 많은지, 그나마 자물쇠 대신 열쇠를 가지고 다녀야 하는 것을 고맙게 생각해야 되는지.

열쇠를 가지게 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무엇인가 잠글 것이 생긴다는 뜻이겠지. 잠근다는 말은 아무에게나 내 보이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비밀, 나만의 것이 생긴다는 의미다.

선생님께 숙제검사 맡는 일기장이 아닌 자물쇠가 있는 일기장이 생겼을 때의 그 비밀스러운 두근거림을 잊을 수 없다. 그렇게 일기장 열쇠 한개가 생기고, 책상 서랍을 잠그고 또 하나의 열쇠를 챙기고, 그러다 차가 생기고, 집이 생기고, 일터가 생기고, 점점 열쇠가 늘어간다.

이제는 컴퓨터를 켤 때도 비밀번호라는 보이지 않는 열쇠가 필요하다. 인터넷 온갖 곳에서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요구해서, 인터넷 열쇠를 만들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열쇠 하나 하나의 의미만큼 살아온 인생의 여정을 잘 보여주는 것이 또 있을까? 열쇠 꾸러미는 들고 다니는 인생의 나이테 마냥 주머니 속에, 가방속에, 허리 춤에, 목에 걸쳐져서 우리 삶을 졸졸 따라 다닌다.

내 열쇠를 공유하는 사람을 가족이라고 부르고 동료라고 부른다. 열쇠가 맞지 않는 사람은 낯선 이방인이요, 내 세계의 침입자이다.

열쇠가 많다는 것은 그 만큼 가진 것이 많고 나만의 공간이 많아 진다는 뜻이다. 그러나 열쇠의 개수만큼 행복도 그만큼 더 늘어난 것일까?

예전에는 잠깐 다녀오는 것쯤이야 그냥 문 살짝 닫고 나올 수 있는 것이었지만, 이제는 현관문만 해도 두 개, 세 개를 잠그고 나와야 한다. 어쩌다 정신 없어 열쇠를 잃어버린다 치면, 나도 내 세계에서 이방인이 된다. 방금 전까지 타고 온 자동차 문을 열 수도 없고, 내 집에 들어갈 수도 없다.

함께 공유하는 세상에서 나만의 공간을 확보하는 것은 그 만큼 힘 겨운 일이며, 지켜 내야 할 것이 더 많아 불안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더 큰 자물쇠, 더 많은 열쇠가 필요하고 더 높은 담이 필요해 진다.

자물쇠의 역할은 잠그는 것이고 열쇠의 역할은 여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때까지 열쇠를 자물쇠로 착각하고 부지런히 잠그고만 다니지 않았는가?

가족으로부터 잠그고, 친구로부터 잠그고, 세상으로부터 잠그고, 숨 쉴 틈새 하나 없어 부지런히도 잠그고 다녔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나 스스로 자물쇠를 걸어 잠그고 인생의 독방 안에 갇혀있다. 70억명이 사는 세상, 이리 떠밀리고 저리 떠밀리는 인생에서 그렇게 지겹도록 사람에 치여 살면서도 나를알아 주는 사람이 없어서 외롭다.

열쇠가 인생의 훈장인 줄 알았더니, 이제는 오히려 짐이다. 열쇠 한 개가 없으면 그 만큼 걱정도 줄어 들 것을, 왜 열어두지 못하고 내어 주지 못하는지 스스로 답답할 뿐이다. 이제는 그 많은 열쇠들이 다 어디에 쓰는 것인지 가물가물 하면서도 지금까지 내 것이었으니까, 그것이 없어지면 마치 내 인생도 없어지는 냥 쓸데없이 그 무게를 버텨 보려고 바둥거렸다.

우리는 자물쇠가 아니라 열쇠를 가지고 다닌다. 이제는 지금껏 잠궈 둔 것을 열 때가 되었다. 아직 손안에 열쇠가 있을 때, 더 늦지 않도록 외로운 그 독방의 문을 열고 나와야 한다.

인생의 무게에 지쳐 비명을 지르지 않으려면 그 짐을 내려 놓아야 한다. 내려 놓으면 그만인 것을, 그 것이 다 무엇이라고 그렇게 꼭꼭 잠그고 숨겨 놓았는지. 열쇠의 무게게 가벼워야 인생이 가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