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선교지와 선교사의 차이

결코 쉽지 않는 현대 선교의 단점들을 2 차례에 걸쳐 언급하면서 다시 한번 바른 선교를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바른 선교에 대한 가장 좋은 정의는 “선교사(師)를 위한 선교가 아니라 선교지(地)를 위한 선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충분한 논쟁의 여지가 있고 반박할 수 있는 문장이지만 말 그대로이다. 당연히 선교사가 중요하다. 하지만 선교사는 분명 선교지로 인하여 생긴 사명자이다.

“..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는 말씀 속에서도 증인(복음 전도자 또는 선교사)이 먼저가 아니라 땅 끝(선교지)이 먼저이다. 엄밀히 말하여 선교사를 위하여 선교지가 생긴 것이 아니다. 양면 다 중요하지만 우선순위(Priority)를 말해야 한다면 선교지가 우선이어야 한다. 선교사에게 초점을 맞추면 실패할 수가 있다. 하지만 선교지에 초점을 두면 거의 실패가 없다.

바울은 로마를 포함하여 네 차례나 선교 여행을 하였다. 복음 전파 사명을 위하여 그리도 많은 어려움과 위험을 겪었지만 그런 위험들을 마다하지 않고 할 수 있었던 것은 선교지로 가라는 명령에 의한 것이었기 때문이지 결코 선교사인 바울 자신의 필요를 채우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 핍박과 위험이 도사리는 선교지가 있기에 선교사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반면 오늘날의 선교라는 개념은 선교사에 의하여 장소가 결정이 되어지고 있고 선교사의 필요(?)를 채우기 위한 장소가 되어져 가고 있다. 심지어 선교사의 호의호식(好衣好食)하는 자리가 되어버린 곳도 의외로 많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정작 가야할 장소와 복음을 필요로 하는 종족, 부족은 외면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성경적인 근본 선교의 본질이 사라져 버린 작금의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극히 일부이기는 하지만 [도피 선교]를 하는 분들도 있다. 어렵고 힘든 목회.. 마음과 뜻대로 풀리지 않는 목회.. 교회 성장에 대한 부담감.. 밀려오는 목회에 대한 스트레스.. 성도들 간의 피 말리는 신경전 등.. 복합적인 이유들로 인하여 결국 선교지로 눈을 돌리게 된다.

어떤 교회에서는 <선교 여행>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하는데 말 그대로 선교라는 이름으로 여행 삼아 다녀오는 경우도 있다는 사실이다. 이와 같은 일들을 보면서 이 시대의 모순된 선교의 모습들이 점점 인본주의(人本主義)적으로 바뀌어져 가고 있는 것을 같은 목회자로서 한편으로는 이해하고 공감이 되는 일이지만 왠지 가슴 아픔을 느낀다. 이런 현상들이 이미 보편화 되어 누구의 잘못이고 어디서부터 꼬인 것인지에 대한 원인을 찾기는 쉽지 않지만 작금의 현실은 후방에서의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한층 더 심각하다는 것이다.

지난 호에 소개한 대로 탁상 선교, 중복 선교, 인맥 선교, 반짝 선교라는 현대 선교의 잘못된 점들을 다시 점검하고 바른 선교관(觀)으로 마지막 시대를 바른 선교사들에 의한 복음 전파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선교(지) 현장에 대한 더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장기 계획 가운데 지속되어야 할 것이며 아직 복음이 들어가지 못한 종족, 부족들로 시선을 돌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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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자침례교회 손종문 목사
(Photo : 기독일보) 꿈꾸는자침례교회 손종문 목사

<손종문 목사는 현재 애틀랜타(GA)에서 꿈꾸는자 침례교회를 담임하고 있으며 전임 목회지서부터 지금까지 지난 10년 동안 8 차례를 세계 최대 빈민국인 서부 아프리카에 위치한 Guinne Bissau를 다녀 왔습니다. 손 목사는 앞으로 선교 소식을 통해 기니 비사우에서 보고, 듣고, 연구하고, 느낀 내용들을 연재로 게재하여 복음 전파의 시급함을 알리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