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말은 우리의 지난 시절을 정의 하는 중요한 키워드가 된다. 산업화 시대와 지식 정보시대를 거치면서 말 그대로 지식은 힘이었다. 성실한 노력보다는 남들보다 빠른 정보가 훨씬 더 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지식과 정보는 돈이었고 행복이었다. 정보가 없는 사람들은 늘 복부인에게 헐값으로 땅을 팔고 피눈물을 흘리며 후회했고, 은행 이자보다 조금이라도 더 벌어보겠다고 주식투자에 뛰어든 사람들은 손안에 든 주식이 휴지가 되는 것을 맥 없이 바라보아야만 했다.
또한 얼마나 많이 배웠는가를 서열화된 대학의 졸업장으로 평가하고, 그 대학의 간판으로 평생을 유리하게 살 수도, 주늑들어 살 수도 있는 세상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사회는 과거의 우물안의 지식에서 흐르는 지식으로, 정보의 독점에서 정보의 공유로 시대가 바뀌었다.
수 만권의 도서관 지식이 손안에 휴대폰으로 들어와서 얼마든지 알고 싶은 정보를 검색할 수도 있고, 저녁 뉴스시간이나 아침 신문을 챙겨보지 않아도 세상의 중요한 소식들을 실시간으로 받아 볼 수 있다.
그 뿐만 아니라 그 정보와 현상에 대한 거의 실시간적인 반응을 보일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손가락 클릭 한번으로 세상의 일들에 대해 좋아요, 싫어요라는 개인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게 되었고, 평범한 사람이 쓴 톡톡튀는 댓글 하나가 그 분야의 전문가 보다 더 사회에 반향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러나, 말보다 빠른 타자속도, 그리고 생산되는 정보의 신속한 확장성은 반대로 실수와 오해를 이전 세대보다 훨씬 빨리 전달하기도 하고 더 큰 부정적인 영향을 발휘하기도 한다.
인터넷에 올라온 억울한 사연을 접한 네티즌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다가, 하루 이틀이 지나지 않아 실제로는 가해자가 피해자로 밝혀지는 촌극을 빚기도 하고, 문제가 되는 어떤 사람의 정보를 밝혀내어 창피를 주는 소위 '신상털기'가 사회적 문제가 되기도 한다.
이제 차고 넘치는 지식과 정보는 우리의 시야와 판단을 어지럽힌다. '과유불급'이라는 말처럼 차고 넘치는 정보는 힘이 아니라 독이 될 수도 있는 사회가 되었다.
미국의 저널리스트 데이비드 솅크는 이처럼 수 많은 정보와 함께 불필요한 정보, 허위 정보가 섞인 세상을 예측하며 이를 '데이터 스모그'현상이라고 정의하였다. 즉 지식과 정보가 밤바다의 등대가 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시야를 흐리는 탁한 안개가 되어 이 사회를 덮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정보의 양에서 정보의 질을 구별하며 판단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보를 내면에서 숙성시킬 수 있어야 한다.
인스턴트식 정보는 반짝 어둠을 밝히는 성냥불이 될 수는 있어도, 지속적으로 우리의 앞길을 밝혀 주지는 못한다. 노력하여 얻은 지식, 곱씹어서 생각하는 정보만이 오래 갈 수 있다. 며칠 전 검색한 정보는 쉽게 잊어버리게 되지만, 어렸을 때, 힘들었을 때 읽었던 책들이 오랫동안 기억속에 남아 있는 것도 이런 이유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는 지식의 양이 아니라 지식의 숙성으로 나가야 한다. 지식과 정보를 머리 속에서 내 생각으로 해체하고, 재구성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아무리 맞는 말, 좋은 말이라도 그것을 무분별하게 받아 들이는 것은 먼지를 뒤집어쓴 골동품을 침실에 들여 놓는 것과 같다. 골동품은 좋은 것이지만 먼지는 털어내야 한다.
지식의 숙성은 먼지를 털어내는 것과 같다. 하지만 그냥 무턱대고 후 불어내면 실내의 모든 공기가 오염된다. 느긋하게 여유를 가지고 조금씩 털어내고 닦아내면 우리는 그 지식의 골동품에서 가격이 아닌 가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수 많은 지식과 정보 앞에서 파블로브의 개가 되지 말고, 그것을 내면에서 숙성시킬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해 주자. 이제, 우리 시대는 지식과 정보에 대한 '빠른 대응'이 아니라 '바른 대응'을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