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 빌립보 장로교회 최인근 목사
시애틀 빌립보 장로교회 최인근 목사

사람은 누구나 똑 같이 하루 24시간을 살아간다. 돈 많아 부자인 사람도, 가난하여 한 끼 때우기조차 힘든 사람도 동일한 하루 24시간을 살아간다. 어떤 사람은 흐르는 시간이 안타까워 하루가 50시간쯤 되었으면 좋겠다는 사람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너무나도 고통과 괴로움 속에 시달리면서 하루가 10시간 정도만 되고 후딱 지나가 버렸으면 좋겠다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시간은 이와 같은 사람들의 형편에 따라 움직이지 아니하고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하루를 24시간으로 흘러간다.

조물주 하나님은 이렇게도 공평하신 분이시다. 그러면서 똑 같이 주어진 그 시간을 가지고 짧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는지 보고 계신다. 문득 두려운 생각마저 든다. 그러기에 누군가가 "시간은 돈이다"고 하였던 모양이다. 아니 돈보다 훨씬 더 귀한 것이다. 하루는 86,400초다. 1초에 1불이라고 가정한다면 하루는 86,400불이다. 하루를 더 살게 해 주는데 이만 한 돈을 내라고 한다면 돈 있는 사람은 기꺼이 그렇게 시간을 살 것이다.그러고 보면 시간은 돈 보다 훨씬 더 소중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에 얼마를 벌었는가는 계산하면서도 하루를 어떻게 살았는가는 생각하지 않는다. 돈 얼마를 잃어버린데 대해서는 가슴을 치면서도 시간을 흘러 보내 버린 데 대해서는 가슴 치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그만큼 시간에 대해 무관심하고 있거나 그 가치를 망각하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70이 넘은 어른들께 "그 긴 세월 동안 어떻게 살아 오셨습니까?" 하고 여쭈어 보면 거의 대부분이 "어떻게 내가 그렇게 나이를 많이 먹어 버렸는지 모르겠다"고 대답을 하신다.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는데 뭣하면서 세월을 다 보내 버렸는지 모르겠다며 자신의 나이를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마치 누군가에게 시간을 도둑맞은 기분이 든다고도 한다. 그러나 가 버린 세월을 어떻게 하겠는가? 그 다음에는 아무도 원치 않는 죽음만이 입 벌린 사자처럼 무섭게 다가서고 있을 뿐이다.

뒤돌아보면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주어진 그 수명을 다하고 이 세상을 떠나갔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한 시대를 풍유 했던 다윗도, 사자 굴에도 당당하게 들어갔던 다니엘도, 송판에 박힌 못 위를 유유히 찬송을 부르며 걸어갔던 주기철 목사도, 미국의 노예를 해방시켜 주었던 위대한 지도자 아브라함 링컨도, 박정희 대통령도....... 다 이 세상을 떠나갔다. 그렇다면 그 다음은 과연 누구 차례일까? 바로 나 자신일 것이다. 틀림없는 사실이다. 누구라 주어진 壽限(수한)을 다하고서도 미련이 남았다고, 할 일이 남았다고, 그 길을 외면할 수가 있을까?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이와 같이 중요한 시간에는 별 관심이 없이 그저 돈에만 눈이 어두운 채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돈 가진 것만이 성공이고 출세이고 모든 것인 냥 착각하고 살고 있다. 그러기에 그것 있으면 세상 다가진 것처럼 교만하고 그것 없으면 세상 다 잃은 것처럼 낙심하며 좌절한다. 그렇다면 왜 맥도날드의 상속 여인 조앤 B. 크록은 무려 15억불이나 되는 거금을 구세군에게 내 놓았을까? 그렇게도 소중한 재물을 말이다. 바로 여기에 오늘 우리들이 생각해 보아야 할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 말이다.

이 세상에는 주어진 짧은 수한을 살면서 돈보다 더 귀한 것들을 얼마든지 누릴 수 있음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한다. 돈만이 제일이라면 돈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이 길이 후세에 남을 예술이나 생명 구하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보다 더 바보는 없을 것이다.

알렉산더 대왕의 소년 시절 가정교사는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였다. 선생은 소년에게 물었다. "왕자께서는 임금이 되시면 무슨 일을 하시겠습니까?" "희랍을 통일하겠습니다." "그 후에는 무슨 일을 하시겠습니까?" "소아시아를 정복하겠습니다." "그리고 또 그 뒤에는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팔레스틴과 이집트를 점령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요?" "페르시아와 인도까지 손에 넣겠습니다." "그렇게 인도까지 점령하고 난 다음에는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그때쯤이면 나도 죽게 되겠지요?" 아리스토텔레스는 왕자의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며 신중하게 말했다. "그렇다면 그렇게 멀리 돌아다니다 죽으나 지금 죽으나 별 큰 차이가 없겠습니다." 두고도 생각해 볼 말이다.

사람이 이렇게 나라의 영토나 확장하고 재산이나 모으며 부귀영화만 누리기를 소원하며 주어진 인생을 살아간다면 그 모든 것을 누리다 죽으나 지금 죽으나 무엇이 다르다는 말인가? 결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24시간을 주신 것은 그러므로 우연한 일이 아니다. 그것으로 주어진 인생을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사는가를 똑똑히 보시기 원하셨던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외친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말이다. 우리들이 매일 쓰고 있는 시간에 과연 하나님을 위해 비워 둔 시간은 얼마 만큼인지? 이때쯤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