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교회의 부흥회에 두 명의 청년이 목사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질문을 던졌습니다. “목사님, 벼락도 하나님이 내리시나요?”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신 분이니 당연합니다.” “그렇다면 어제 큰 벼락이 우리 마을에 내린 것 목사님도 아시죠?” “네” “그 벼락은 죄인을 친다고 하던데 그게 사실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그럼 우리 집 앞마당에 있는 큰 나무가 벼락에 맞아 그만 부러지고 말았는데 그 나무가 죄가 많아 그런 것인가요?” 목사님은 이때 복음을 전해야겠다는 생각에 “학교 다니실 때 선생님께서 교실에 들어오시면 막대기로 칠판을 탁탁 치십니다.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그야 조용히 하고 집중하라는 경고라고 생각합니다.” “맞습니다. 그런데 계속 떠들면 어찌 될까요?” “그렇다면 당연히 그 막대기로 직접 벌을 받겠지요.” “바로 그렇습니다. 당신 집의 버드나무가 벼락을 맞고 부러진 것은 당신이 죄를 회개하지 않고 예수를 믿지 않으면 벌을 직접 받게 될 것이라는 경고 아니겠습니까?” 찾아온 두 청년은 고민하기 시작했고 그날 집회에 참석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새로운 인생의 출발을 경험했다고 합니다.

어떤 상황, 어떤 모습 속에서든 우리 주님은 죄인이 주님을 만나고 새로운 인생의 출발을 경험하길 원하십니다. 그 주님의 부르심을 듣는 일은 인생에 가장 가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종종 우리는 그 소리를 외면할 때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필요한 물질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그 속에서 들려주시는 주님의 초청 음성을 듣지 못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일’이나 ‘자기 성취’에 너무 심취해서 주님의 초청을 못 들은 척 하거나 무시하며 살아갑니다. 실상은 일을 열심히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 인생의 죄에 대한 문제와 영원한 생명에 대한 해결인데 말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사람과의 관계, 인맥 쌓기에 몰두하여 실제로 들어야 할 인생의 메세지는 간과하고 살아가는 모습을 봅니다. 아무리 많은 사람을 안다고 할지라도 내 인생에 가장 소중한 만남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지금 내가 가진 인맥은 ‘올무’에 불과할 뿐임을 모르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오늘도 당신을 향해 말씀하시고 만나시길 요청하고 계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라고 말입니다.

그것이 어떤 사건의 소리든지, 자연의 소리든지, 주변 이웃의 소리든지, 다니시는 목회자의 소리든지 말입니다.

그 소리는 어떤 이들에게는 생명의 소리이며, 어떤 이들에게는 망각을 깨우는 자명종의 소리 일지도 모릅니다. 어떤 이들에게는 잃어버린 사명의 출발을 알리는 호각소리일지도 모릅니다.

이 소리를 듣는 것은 지금 내게 필요한 것만 보고 들으려 하지 않고, 나를 찾고 부르는 소리에 관심을 갖는 것입니다. 오늘 당신을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으시는 복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Kisung
Oct 21,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