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으로 죽음을 이긴다는 말도 안되는 소리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 얼마나 될까? 상처로 가득한 사람이 남의 상처를 치유한다는 헨리 나우엔의 말에는 과연 몇 명이나 긍정할 수 있을까? 손경미 사모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 암을 이긴 사람이지만 지금도 암과 싸워야 하는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나면 이런 역설의 진리가 조금은 더 우리 가슴에 다가올지도 모를 일이다.
그녀가 풀어놓는 어린 시절은 마치 요셉을 떠오르게 한다. 딸이 반드시 3대 이상 예수를 믿는 집안의 남자를 만나게 해 달라고 기도하던 신앙적인 어머니, 때가 되면 양장점에 데려가 값비싼 옷을 맞춰 주시던 그런 부유한 아버지 밑에서 그녀의 삶은 순탄하기만 했다. 전통무용 특기생으로 대학에 전액 장학생으로 선발됐고 뛰어난 능력을 인정받아 대만국립예술대학에 교환학생으로 뽑혔다. 그때가 1980년대 초였으니 유학이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었고 중화권 유학은 더더욱 드물었다. 유학 전 우연히 본 서울특별시립 가무단 공채에도 당당히 합격했다. 최고의 무용인이자 중화권 복음화라는 원대한 꿈을 품게 된 것도 이때쯤이었다.
그러나 그녀에게 꿈이 생긴 후, 하나님께선 그 꿈을 이루어 주시고자 고난도 주셨다. 그녀는 자신을 보고 첫눈에 반한 화교 남성과 양가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에 이르게 됐다. 민족의 차이, 종교의 차이가 양가의 반대 이유였다. “불신자와는 결혼할 수 없다”는 그녀의 말에 그는 그날로 교회에 출석해 예배를 드리고 기독교인이 됐다. 그러나 남편을 따라 이민 온 미국에서 함께 살게 된 시부모님은 신앙인 며느리를 끝내 못마땅해 했다. 온 집안에 붙여진 부적에 갇혀 마치 깊은 감옥과도 같은 삶이 시작된 것이다. 중국인 선교의 꿈을 꾼 것까지는 좋았는데 이방에 끌려온 요셉과 같은 신세가 돼 버린 것이다.
극심한 우울증으로 자살 직전까지 갔던 그녀. 그 삶의 밑바닥에서 주님은 나약한 손경미를 다시 일으켜 세우셨고 결국 시아버지에 이어 시어머니까지, 온 집안이 예수를 믿는 기적이 일어났다. 중화권 복음화라는 도무지 불가능해 보이던 꿈이 온갖 고난과 역경 끝에 그녀의 가정에서부터 이뤄진 순간이었다. 이후 대만대학에서 전자공학을 했던 공학도인 남편이 텍사스 사우스웨스턴신학교에 입학해 신학을 공부하고 남침례회에서 안수를 받고 목사가 됐다. 중국어, 한국어, 영어를 구사하는 남편은 한인교회, 중국인교회, 화교교회 등에서 성공적으로 목회했고 중국어와 한국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아내도 남편을 내조하며 하나님의 꿈이 이뤄져 갔다.
그런데 이런 성공 끝에 하나님은 역설적으로 그녀에게 암을 선물로 주셨다. 그녀는 암의 고통을 안다. 유방암으로 그 고통이 채 가시기도 전에 난소에 암의 징후가 생겨 난소를 제거했다. 이렇게 하기를 4년간 여섯번의 수술... 그 독하다는 항암치료도 신앙의 힘으로 견뎌냈다. 암을 이긴 후, 그녀는 암환우에겐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고통, 누구도 알아주지 못하는 고통을 나눌 친구가 필요하단 사실을 절실히 깨닫고 주변의 암환우들을 한명씩 위로하는 일을 시작했다. 시카고에서 시작된 이 사역은 총 250명의 회원이 참여하게 됐고 현재 아시안암환우회란 이름으로 연방정부에 비영리단체로 등록돼 있다. 아픈 사람, 아픈 사람의 가족들이 모여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는 이 사역은 회비도 없고, 특정한 후원단체도 없다. 그저 아픔을 나누고자 하는 사람만 있을 뿐이다. 위로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라면 어디든 찾아 다니다 보니 워싱턴지부 , 밴쿠버지부, LA지부까지 세워졌다.
그녀는 암환우회에서 암을 이긴 입지전적인 인물의 모습이 아니다. 긴 시간동안 반복된 수술과 항암치료, 7년이 넘는 약물치료에 이어 뇌종양이 발견됐다. 수술하기엔 너무 위험해서 그저 두고 볼 수 밖에 없으니 언제 죽을지 모른다. 절망도 이런 절망이 있을까? 암을 이기고 또 이겼지만 이후에 또 다른 암이 찾아온 셈이니 말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녀에게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는 말씀과 함께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해 진다”고 하신다.(고후12:7) 하나님은 암환우들을 온전히 위로하고 섬기는 사역을 위해 그녀에게서 암을 절대 거두어 가지 않으시면서 자신의 능력을 손 사모를 통해 드러내고 계신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손 사모를 ‘신들린 사람’이라고 부른다. 곧 죽을 것처럼 살아야 할 사람이 전 미주, 이젠 한국까지 다니면서 상처입은 사람들을 모으고 그들을 치유자로 세우고 있다. 매일 아침 눈을 뜬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찬양할 때 손을 들어 올릴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산소호흡기 속에서도 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그녀 스스로 매일 같이 증명해 간다. 맞다. 신들린 사람이 맞다. 하나님의 신, 성령이 들려서 때론 죽을지라도 하나님 안에 있는 죽음은 죽음을 극복하는 힘이 있음을 삶으로 보여 주고 있다.
최근 그녀는 (생명의말씀사)란 책을 펴냈다. 자신의 삶과 암환우회의 사역을 써내려 간 이 책은 정말 투병 중인 사람이 쓴 책인가 싶을 정도로 담담하면서도 감격적인 어조로 성령의 일을 펼쳐 내고 있다.
현재는 LA에 거주하고 있는 그녀와 전화 통화를 했다.
“내일 시애틀로 올라가요. 그곳에서 중요한 모임이 있어요. 이제 책도 나왔으니 수익금으로 더 많은 사람들을 도울 수 있게 됐어요. 누가 큰 헌금으로 돕는 사람은 없어도 작은 사랑이 모여서 지금까지 왔던 것처럼 또 갈 수 있게 됐어요. 시카고에서 가을에 있을 음악회와 간증집회도 준비해야 하고요.”
책 발간 후 수많은 독자들의 성원에 힘입어 아시안암환우회는 차량에 스티커 붙이기 캠페인, 암환우를 위한 소액 후원 운동 등도 출범시킬 계획이다.
그녀와 알고 지낸지 벌써 4년째다. 매번 만나거나 통화할 때마다 마지막 인사는 “다음에 또 만나요”다. 살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리기 위해 사는 그녀이기에 다음에는 더 놀라운 하나님의 기적 이야기를 듣게 될 것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죽음으로 죽음을 이기고 상처입은 자가 상처입은 자를 치유한다는 말이 얼마나 진리인지 증명할 수 있지 않을까?
후원 및 참여 문의) 김자혜 미주지역 총책임간사 425-248-5129
그녀가 풀어놓는 어린 시절은 마치 요셉을 떠오르게 한다. 딸이 반드시 3대 이상 예수를 믿는 집안의 남자를 만나게 해 달라고 기도하던 신앙적인 어머니, 때가 되면 양장점에 데려가 값비싼 옷을 맞춰 주시던 그런 부유한 아버지 밑에서 그녀의 삶은 순탄하기만 했다. 전통무용 특기생으로 대학에 전액 장학생으로 선발됐고 뛰어난 능력을 인정받아 대만국립예술대학에 교환학생으로 뽑혔다. 그때가 1980년대 초였으니 유학이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었고 중화권 유학은 더더욱 드물었다. 유학 전 우연히 본 서울특별시립 가무단 공채에도 당당히 합격했다. 최고의 무용인이자 중화권 복음화라는 원대한 꿈을 품게 된 것도 이때쯤이었다.
그러나 그녀에게 꿈이 생긴 후, 하나님께선 그 꿈을 이루어 주시고자 고난도 주셨다. 그녀는 자신을 보고 첫눈에 반한 화교 남성과 양가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에 이르게 됐다. 민족의 차이, 종교의 차이가 양가의 반대 이유였다. “불신자와는 결혼할 수 없다”는 그녀의 말에 그는 그날로 교회에 출석해 예배를 드리고 기독교인이 됐다. 그러나 남편을 따라 이민 온 미국에서 함께 살게 된 시부모님은 신앙인 며느리를 끝내 못마땅해 했다. 온 집안에 붙여진 부적에 갇혀 마치 깊은 감옥과도 같은 삶이 시작된 것이다. 중국인 선교의 꿈을 꾼 것까지는 좋았는데 이방에 끌려온 요셉과 같은 신세가 돼 버린 것이다.
극심한 우울증으로 자살 직전까지 갔던 그녀. 그 삶의 밑바닥에서 주님은 나약한 손경미를 다시 일으켜 세우셨고 결국 시아버지에 이어 시어머니까지, 온 집안이 예수를 믿는 기적이 일어났다. 중화권 복음화라는 도무지 불가능해 보이던 꿈이 온갖 고난과 역경 끝에 그녀의 가정에서부터 이뤄진 순간이었다. 이후 대만대학에서 전자공학을 했던 공학도인 남편이 텍사스 사우스웨스턴신학교에 입학해 신학을 공부하고 남침례회에서 안수를 받고 목사가 됐다. 중국어, 한국어, 영어를 구사하는 남편은 한인교회, 중국인교회, 화교교회 등에서 성공적으로 목회했고 중국어와 한국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아내도 남편을 내조하며 하나님의 꿈이 이뤄져 갔다.
그런데 이런 성공 끝에 하나님은 역설적으로 그녀에게 암을 선물로 주셨다. 그녀는 암의 고통을 안다. 유방암으로 그 고통이 채 가시기도 전에 난소에 암의 징후가 생겨 난소를 제거했다. 이렇게 하기를 4년간 여섯번의 수술... 그 독하다는 항암치료도 신앙의 힘으로 견뎌냈다. 암을 이긴 후, 그녀는 암환우에겐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고통, 누구도 알아주지 못하는 고통을 나눌 친구가 필요하단 사실을 절실히 깨닫고 주변의 암환우들을 한명씩 위로하는 일을 시작했다. 시카고에서 시작된 이 사역은 총 250명의 회원이 참여하게 됐고 현재 아시안암환우회란 이름으로 연방정부에 비영리단체로 등록돼 있다. 아픈 사람, 아픈 사람의 가족들이 모여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는 이 사역은 회비도 없고, 특정한 후원단체도 없다. 그저 아픔을 나누고자 하는 사람만 있을 뿐이다. 위로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라면 어디든 찾아 다니다 보니 워싱턴지부 , 밴쿠버지부, LA지부까지 세워졌다.
그녀는 암환우회에서 암을 이긴 입지전적인 인물의 모습이 아니다. 긴 시간동안 반복된 수술과 항암치료, 7년이 넘는 약물치료에 이어 뇌종양이 발견됐다. 수술하기엔 너무 위험해서 그저 두고 볼 수 밖에 없으니 언제 죽을지 모른다. 절망도 이런 절망이 있을까? 암을 이기고 또 이겼지만 이후에 또 다른 암이 찾아온 셈이니 말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녀에게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는 말씀과 함께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해 진다”고 하신다.(고후12:7) 하나님은 암환우들을 온전히 위로하고 섬기는 사역을 위해 그녀에게서 암을 절대 거두어 가지 않으시면서 자신의 능력을 손 사모를 통해 드러내고 계신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손 사모를 ‘신들린 사람’이라고 부른다. 곧 죽을 것처럼 살아야 할 사람이 전 미주, 이젠 한국까지 다니면서 상처입은 사람들을 모으고 그들을 치유자로 세우고 있다. 매일 아침 눈을 뜬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찬양할 때 손을 들어 올릴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산소호흡기 속에서도 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그녀 스스로 매일 같이 증명해 간다. 맞다. 신들린 사람이 맞다. 하나님의 신, 성령이 들려서 때론 죽을지라도 하나님 안에 있는 죽음은 죽음을 극복하는 힘이 있음을 삶으로 보여 주고 있다.
최근 그녀는 (생명의말씀사)란 책을 펴냈다. 자신의 삶과 암환우회의 사역을 써내려 간 이 책은 정말 투병 중인 사람이 쓴 책인가 싶을 정도로 담담하면서도 감격적인 어조로 성령의 일을 펼쳐 내고 있다.
“내일 시애틀로 올라가요. 그곳에서 중요한 모임이 있어요. 이제 책도 나왔으니 수익금으로 더 많은 사람들을 도울 수 있게 됐어요. 누가 큰 헌금으로 돕는 사람은 없어도 작은 사랑이 모여서 지금까지 왔던 것처럼 또 갈 수 있게 됐어요. 시카고에서 가을에 있을 음악회와 간증집회도 준비해야 하고요.”
책 발간 후 수많은 독자들의 성원에 힘입어 아시안암환우회는 차량에 스티커 붙이기 캠페인, 암환우를 위한 소액 후원 운동 등도 출범시킬 계획이다.
그녀와 알고 지낸지 벌써 4년째다. 매번 만나거나 통화할 때마다 마지막 인사는 “다음에 또 만나요”다. 살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리기 위해 사는 그녀이기에 다음에는 더 놀라운 하나님의 기적 이야기를 듣게 될 것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죽음으로 죽음을 이기고 상처입은 자가 상처입은 자를 치유한다는 말이 얼마나 진리인지 증명할 수 있지 않을까?
후원 및 참여 문의) 김자혜 미주지역 총책임간사 425-248-5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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