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름 무더위가 한창이다. 본래 더위보다는 추위에 약한 나는 은근히 여름을 기다리는 편이다. 추위에 약하고 감기에 잘 걸리는 체질인 나는 공원을 집 앞에 두고도 마음 놓고 나가지를 못한다. 그래서 거의 일년 내내 여름을 기다리는데 대체로는 여름이 너무 더디 온다는 느낌이 많다. 금년에도 일단 시작은 그리 빠르지 않았다. 5-6월에도 아침 저녁으로 추워 새벽에는 목도리를 두르고 다녔던 기억이 엊그제 같다.

그런데 7월 독립기념일을 전후해서 드디어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됐다. 드디어 겹겹으로 입은 옷을 훌훌 벗어 버리고 신록이 우거진 공원을 걸으며 운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신나는 일이었다. 특히나 한국을 비롯해 온 세계가 이상 기온으로 무더위, 집중호우, 지진 등 각종 천재지변이 많은데도 그래도 남가주 지역만은 별다른 이상이 없으니 고맙다 못해 다른 지역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 이 여름 의외의 복병이 하나 나타났다. 그것은 금년도 더위가 상당히 지속적인 데다 끈적끈적한 습기를 동반하고 왔다는 것이었다. 캘리포니아 여름의 특징은 그야말로 작열하는 듯한 열사의 태양에도 불구하고 그늘에만 있으면 시원하다는 것이었고 특별히 우리 교회를 중심으로 한 오렌지 카운티 지역은 바닷가에 인접한 까닭에 여름이 되어도 에어컨을 켜지 않고 사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영문인지 금년은 오렌지 카운티의 여러 가정에서 조차 에어컨 없이는 잠을 이룰 수 없는 끈적거리는 밤이 계속되고 있다.

내 경우 보통 밤에 잠이 들면 중간에 깨는 일이 없이 아침까지 숙면하는 편인데 금년 여름에는 후덥지근한 날씨에 잠을 이루는 것이 쉽지 않고 그나마 숙면을 이루지 못하고 중간에 한번씩 깨는 때가 많다. 또 그렇게 깨고 나면 다시 잠을 이루는 것 또한 쉽지 않다.

며칠 전에는 그렇게 잠을 깼는데 시계를 보니까 새벽 두 시쯤 되었다. 아무리 뒤척거려도 잠이 오지 않아 차라리 벌떡 일어나 주일 설교 준비를 시작했다. 그렇게 잠이 깰 때마다 늘 궁금한 것은 우리 집 막내가 잘 자는가 하는 것이었다. 아이도 덥기는 마찬가지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런 더위 속에서도 아이는 단 한번도 깨는 일이 없이 쿨쿨 단잠을 자고 있었다. 때로는 약간 끙끙거리는 소리를 내기도 하고 어떤 때는 침대 위를 이리 뒹굴 저리 뒹굴 굴러다니기도 했지만 아이는 단 한번도 잠을 깨는 일이 없었다. 그 무더위 속에서도 단잠을 자는 아이의 천진스런 모습이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따금 ‘왜 나는 아이처럼 단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일까?’ 생각해 보곤 했다. 이유는 단 하나뿐이었다. 아이의 단순함을 나이 든 내가 따라 가지 못하는 것이리라.

아이는 하루 종일 신나게 놀고 잠자는 순간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꿈나라로 가는데, 나는 하루 일과의 찌꺼기들을 다 털어버리지 못하고 잠자리에 든 것이었다. 그 결과, 아이는 무더위에도 상관 없이 단잠을 자는데 나는 다 털어버리지 못한 하루 일과에 발목을 잡히고 마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어린 아이와 같은 마음을 가지라는 주님의 교훈이 새삼 마음에 다가온다. 요즘 많은 분들이 더위 때문에 밤잠을 설친다는 소문이 들린다. 그렇다면 이 여름 우리 모두 다시 한번 아이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연습을 해야 한다. 하루 하루 열심히 생활한 후, 잠자리에 들 때는 모든 것을 다 훌훌 털어버리고 아이처럼 홀가분한 몸과 마음으로 주님의 품에 안기면 이 한 여름 무더위쯤 거뜬히 이기고 단잠을 이룰 것이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시 12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