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는 얼바인에 있는 베델교회에서 탈북자들을 위한 통곡기도회가 열렸다.

탈북자에 대해서는 신문과 방송을 통해 자주 듣고 접하고 나름대로 기도도 했지만 막상 실제로 목숨을 걸고 북한을 탈출한 사람들의 육성을 통해 그 실상을 생생하게 들을 수 있는 기회였다. 그래서 여러 북한 전문가들과 좋은 강사들이 있었지만 난 할 수 있는 한 탈북한 사람들의 간증에 귀기울였고 그 들의 간증을 들으면서 몇 가지 놀라운 점을 발견했다.

첫째는 탈북자들 중에 의외로 배고픔을 피해 탈출한 사람들보다는 북한에서 나름대로 안락한 삶을 누리던 사람들이 많구나 하는 점이었다. 물론 강사 중에는 밥 한 번 배불리 먹어보자는 소원을 품고 탈북하신 분도 계셨다. 수용소에서 태어나 수용소에서 20년 넘게 살다가 탈북한 분이셨다. 누군가 그렇게 수용소에서 사시는 동안 그나마 가장 즐거웠던 기억이 있다면 어떤 것이냐고 묻자 이 분은 매일 밥이 모자라 헐떡거리다가 누군가의 잘못을 밀고해서 그 사람의 밥까지 먹을 수 있었던 때가 그나마 즐거웠던 순간이었다고 고백하셨다. 못 먹는 사람에게 먹는 것이 얼마나 절실한 일인지 새삼 느낄 수 있는 고백이었다.

그러나 그 분 외에 다른 분들은 북한에서 지위를 누리던 분들이었다. 김일성 대학 출신의 기자 분도 있었고 교수로 어머니와 평양에서 유복한 생활을 누렸던 자매도 있었다. 또 어떤 분은 평양에서 안락한 지위를 누리며 오랫동안 마약을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다 나름대로 그곳에서도 먹고 사는 문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자유를 위해 생사를 걸고 북한을 탈출했다고 말한다. 북한을 탈출하는 과정이나 그 후 중국을 떠도는 가운데 이들은 인간 이하의 온갖 수모를 겪기도 했다. 그럼에도 끈질긴 생명력으로 살아남아 마침내 자유의 품에 안겼다. 우리는 늘 누리고 있으면서도 그 소중함을 알지 못한 자유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두 번째 놀라운 점은 이들 한 사람 한 사람들에게서 비친 가족의 소중함이었다. 대부분 탈북자들의 간증 속에 가장 큰 아픔으로 남아있는 것은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함이었다. 탈북 과정의 위험 때문에 가족이 함께 탈북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고 또 탈북하는 가족들을 위해서라도 누군가는 뒤에 남아있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었다. 북한 사회에서는 모두 다 사라지면 당장 들통이 나기 때문이다. 부득불 누군가는 남아있을 수 밖에 없어, 두고 온 가족들로 인한 아픔이 이들 모두에게서 진하게 느껴졌다. 두고 온 가족 이야기할 때면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한 탈북자는 두고 온 어머니와 동생을 구해내기 위해 큰 돈을 써 가며 그들을 간신히 중국까지 오게 했지만 다시 붙들려 북송되었다며 안타까워했다. 하나님을 믿는 분이었지만 그 순간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했다고 말씀하셨다. 그렇지만 오히려 그런 아픔 때문에 더욱 다른 탈북자들을 돕는 일에 앞장서게 되었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가장 놀라왔던 것은 이들이 이제 다른 탈북자들과 어려움 가운데 있는 이들을 돕는 일에 적극 헌신하고 있는 점이었다. 탈북 후 조그마한 가계를 운영하는 한 자매는 그 수익으로 북한과 중국에 부모 없이 방황하는 꽃제비들을 한국으로 데려오는 일을 하고 있는데 그 수가 이미 수십 명에 달했다고 한다. 또 다른 분은 동상이 걸려 팔다리가 없는 꽃제비를 적지 않은 비용을 들여 한국으로 데려왔다고 한다. 자신들의 앞가림하기도 쉽지 않을 텐데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이들을 보며 무익했던 죄수가 복음으로 변화되어 모두에게 유익한 사람으로 변한 오네시모 생각이 났다. 그리고 앞으로도 더 많은 이런 오네시모들이 생겨나기를 간절히 소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