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사막에서 작은 부족이 살아가는 방법을 소개하는 영상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그들이 좋은 고기를 얻는 방법이 아주 특이했습니다. 그들 스스로 사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사자가 잡아먹고 있는 것을 빼앗아 오는 것입니다.
어릴 때 밥 먹는 강아지를 건드려 본 적이 있습니다. 얼마나 으르렁거리던지… 작은 강아지 한 마리도 제 밥그릇 빼앗길까 봐 으르렁대는데 맹수의 왕인 사자의 먹이를 빼앗아 오는 것입니다. 가만 살펴보니 무장을 하고 싸워서 빼앗지 않습니다. 무려 15마리의 사자들이 산양을 잡아 시식하고 있는 장소에 세 명의 부족민이 나타납니다. 그리고는 사자들에게 다가갑니다. 이제 주춤거리고 뒤로 물러서는 사자들 속에 얼른 들고간 칼로 가장 좋은 부위를 도려내어 어깨에 메고 유유히 사라집니다.
이것이 그들의 생존 방식이며 그들이 그곳의 주인임을 드러내는 행위입니다. 우리는 종종 목적을 향해 살아간다고 말하면서 오히려 목적보다 현실의 두려움에 끌려 살아갑니다.
자녀를 양육할 때에도 자녀의 꿈보다는 다른 사람보다 모자라다 소리 듣는 것이 두려워 자녀가 원치 않는 방향인 줄 알면서도 밀고 가려 합니다. 청년의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꿈과 인생의 목적보다 취업에 낙오자란 소리 듣지 않으려 높은 연봉에 이끌려 다닙니다. 나이가 들어 성인이 되어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주변의 시선과 생활의 압박에 두려움을 떨치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알든 모르든 우리 삶 속에는 이 ‘두려움’이라는 녀석이 깊숙이 자리 잡고 주인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진정한 위치와 영향력을 잃어버리고 살아가게 됩니다.
주님은 종종 하나님의 나라를 ‘누룩과 겨자씨’에 비유하십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오해할 때가 있습니다. 작은 것에 대한 ‘가능성’쯤으로 말입니다. 전혀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이 비유의 의미는 크기가 아니라 생명력이며, 영향력에 있다고 봅니다. 환경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생명력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겨자씨를 보십시오? 씨앗 중에 가장 작은 씨앗이지만 그 안에서 생명력이 용트림하여 껍질을 깨고 나오니 새들이 깃들만한 나무가 되었습니다. 누룩을 보십시오. 별로 다른 곳에 크게 유용할 것이 없어 보입니다만 반죽 속에 섞여들어 가서 그 양이 얼마가 됐든 기죽지 않고 자기 역할을 다해 내니 부풀대로 부풀게 하는 것입니다.
작아도 생명 있는 것은 영향력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역사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성경에 하나님이 사용하신 인물들을 보면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세의 홍해 도하, 여호수아와 아말렉 전쟁, 다윗 앞의 골리앗, 기드온의 300용사와 미디안의 십만 대군, 다니엘과 세 친구 등 하나같이 두려움을 극복해 낸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아프리카의 연약한 소부족이 주변에 널려있는 무서운 사자들을 제압하며 살아가는 방법은 그들의 내면에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여러분이 두려움을 떨치시고, 진정한 인생의 목적을 향해, 복음을 위해 겨자씨가 되십시오. 누룩이 되십시오. 그것이 바로 세상을 바꾸는 능력이며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kisung
Aug 19. 2012
어릴 때 밥 먹는 강아지를 건드려 본 적이 있습니다. 얼마나 으르렁거리던지… 작은 강아지 한 마리도 제 밥그릇 빼앗길까 봐 으르렁대는데 맹수의 왕인 사자의 먹이를 빼앗아 오는 것입니다. 가만 살펴보니 무장을 하고 싸워서 빼앗지 않습니다. 무려 15마리의 사자들이 산양을 잡아 시식하고 있는 장소에 세 명의 부족민이 나타납니다. 그리고는 사자들에게 다가갑니다. 이제 주춤거리고 뒤로 물러서는 사자들 속에 얼른 들고간 칼로 가장 좋은 부위를 도려내어 어깨에 메고 유유히 사라집니다.
이것이 그들의 생존 방식이며 그들이 그곳의 주인임을 드러내는 행위입니다. 우리는 종종 목적을 향해 살아간다고 말하면서 오히려 목적보다 현실의 두려움에 끌려 살아갑니다.
자녀를 양육할 때에도 자녀의 꿈보다는 다른 사람보다 모자라다 소리 듣는 것이 두려워 자녀가 원치 않는 방향인 줄 알면서도 밀고 가려 합니다. 청년의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꿈과 인생의 목적보다 취업에 낙오자란 소리 듣지 않으려 높은 연봉에 이끌려 다닙니다. 나이가 들어 성인이 되어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주변의 시선과 생활의 압박에 두려움을 떨치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알든 모르든 우리 삶 속에는 이 ‘두려움’이라는 녀석이 깊숙이 자리 잡고 주인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진정한 위치와 영향력을 잃어버리고 살아가게 됩니다.
주님은 종종 하나님의 나라를 ‘누룩과 겨자씨’에 비유하십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오해할 때가 있습니다. 작은 것에 대한 ‘가능성’쯤으로 말입니다. 전혀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이 비유의 의미는 크기가 아니라 생명력이며, 영향력에 있다고 봅니다. 환경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생명력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겨자씨를 보십시오? 씨앗 중에 가장 작은 씨앗이지만 그 안에서 생명력이 용트림하여 껍질을 깨고 나오니 새들이 깃들만한 나무가 되었습니다. 누룩을 보십시오. 별로 다른 곳에 크게 유용할 것이 없어 보입니다만 반죽 속에 섞여들어 가서 그 양이 얼마가 됐든 기죽지 않고 자기 역할을 다해 내니 부풀대로 부풀게 하는 것입니다.
작아도 생명 있는 것은 영향력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역사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성경에 하나님이 사용하신 인물들을 보면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세의 홍해 도하, 여호수아와 아말렉 전쟁, 다윗 앞의 골리앗, 기드온의 300용사와 미디안의 십만 대군, 다니엘과 세 친구 등 하나같이 두려움을 극복해 낸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아프리카의 연약한 소부족이 주변에 널려있는 무서운 사자들을 제압하며 살아가는 방법은 그들의 내면에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여러분이 두려움을 떨치시고, 진정한 인생의 목적을 향해, 복음을 위해 겨자씨가 되십시오. 누룩이 되십시오. 그것이 바로 세상을 바꾸는 능력이며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kisung
Aug 19.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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