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흘러
이렇게 Ocean City 해변에 섰습니다
바다!
열심히 일하고 겨우 겨우 짬을 내
이렇게 새벽에 출발해 왔습니다

하나님! 지난번은 야외에서 이번에는 바닷가에서
예배를 드리고 성경을 보고 기도를 드립니다
하아얀 모래사장에서
맨발로 걸어 보고 바닷물로 적셔보면
세례받은 교인이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세상에서 규칙과 벌칙이 많다고 하더리도
바다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
아침이면 해 뜨고 저녁이면 해 지는
평범한 진리를 터득케 해 주십시오

바닷물이 구석구석에 들어 가듯이
우리 마음 구석구석에 평화로움과 온화로움이
들어가게 해 주십시오 간혹 마윰과 싸움이 있겠지만
저 넓은 바다처럼 모두 평정하게 해 주시옵시고
평화롭게 살아 움직이도록 하여 주십시오

모두에게
바다의 일출처럼
밝고 힘찬 하루하루가 되기를 바라면서

미국이 아무리 가장 살기 좋은 나라라고 하더라도 삶의 방편이 모두 서투른 남의 나라땅에서 생업을 영위한다고 하는 것은, 특히 이민 1세대에게는 고난이 아닐 수 없다. 이계균 시인은 얼마나 고되고 안타까웠으면 모든 것을 훌훌 벗어 버리고 새벽녘에 출발해 바다가에 나와 예배를 드리고 싶었을까? 맨발로 모래사장을 밟고 바닷물에 적시면서 툭 튀인 바다를 바라보며 고통의 기도제목을 털어 놓고 하나님과 마음껏 대화하고 싶었겠지?

‘아침이면 해 뜨고 저녁이면 해 지는 평범한 진리‘. 태초에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창세기1장)하는 창조의 질서와 원리에 대한 기쁨을 시인은 바다가 예배에서 만끽하게 된 것이다.

바닷물이 어디에나 구석구석에 편만하게 들어가기 때문에, 바다의 크기는 가이 없이 넓기 때문에, 바다는 시인, 아니 누구에게나, 쉬임과 평강을 가져다 준다. 바다에서의 쉬임과 평강은 예수님안에서의 쉬임과 평강을 묵상케 한다. 우리가 수고가 많고 무거운 짐을 잔뜩 지고 있을 때에 예수님은 ‘다 내게로 오라‘라고 우리를 부르셨고 예수님께로 가면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태복음11장28절) 약속하신 대로 세상이 주지 못하는 온전한 쉬임과 평강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안에서의 온전한 쉬임과 평강을 얻기 위해서는 조건이 요청된다. 예수님의 멍에를 메고 예수님께 배워야 한다. 예수님의 멍에란 바로 예수님 마음의 온유와 겸손이다(마태복음11장29절). 온유는 하나님의 질서에 따르는 인내이고, 겸손은 하나님의 주권을 전적으로 인정하는 순종이다. 온유와 겸손의 멍에를 메고 예수님께 배울 때에 예수님 안에서 온전한 쉬임과 평강을 얻을 수 있는 것이 바다가 예배에서 받은 놀라운 은혜일진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