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한덕수 주미대사가 돌연 사의를 표명함에 따라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2009년 2월부터 3년간 주미대사로 재직한 데다 평소 지인들에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비준되면 내 역할은 끝난다"고 말해온 점을 미뤄볼 때 사임할 시기가 됐다는 일부의 평가도 있지만 재외공관장 회의를 앞두고 갑작스럽게 사표를 던진 것은 `비정상적'이라는 지적이 많다.
외교부 간부들은 한 대사가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에게 사의를 표명했다는 소식에 당혹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외교부의 고위 당국자는 "뉴스를 보고 사의표명 소식을 접했다"며 "재외공관장 회의 참석차 귀국한 것으로 알았는데 의외"라고 말했다.
또 다른 당국자도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다. 역할이 끝나 사퇴하는 것이라면 이런 (공관장 회의 참석차 귀국했다 갑작스레 사의를 표명하고 임지로 돌아가는) 절차를 밟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대사는 오는 24일 외교부 출입기자단과의 오찬간담회 일정도 잡아놓은 상태였다.
사퇴 배경과 관련, 한 대사 본인은 "주미대사로서의 소임을 다했다는 판단에 따라 사의를 표명했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이날 미국으로 출국하면서 공항에서 연합뉴스 기자와 만나서도 "충분히 오래 하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한 대사는 `한미 FTA가 비준되면 내 역할은 끝난다', `내 역할이 끝났으니 이제 돌아가야 한다'는 말을 주위에 자주했다"며 "대사 임기가 대체로 3년이니 이제 사임할 때가 된 것으로 판단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정확한 사퇴 이유가 알려지지 않고 있는 가운데 공관장 회의 참석차 귀국했던 한 대사가 돌연 사의를 표명하고 곧바로 미국으로 돌아가는 상황이 되면서 외교가에선 다양한 해석이 난무하고 있다.
우선 무역협회장으로 내정돼 주미대사직을 서둘러 그만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있다. 주미대사관의 한 핵심인사는 "문제가 있어 물러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좋은 일이 있다"고 말해 한 대사가 다른 직책을 맡을 것임을 강하게 시사했다.
한미 FTA 체결에 큰 공헌을 한 인물이 대표적인 FTA 지지세력으로 꼽히는 무역협회의 장을 맡는 것이 적절하다는 정부의 의견을 한 대사가 수용한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됐다. 지난 10일 귀국 직후 청와대 등의 이런 요청을 받고 전격적으로 결단을 내렸다는 시각이다.
정부의 한 소식통은 "올해 양대 선거에서 한미 FTA가 최대 화두가 될 것"이라며 "FTA 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김종훈 전 통상교섭본부장과 한 대사인데 김 전 본부장은 정치권으로 가니 서울에서 정부와 협력해 싸워질 비중 있는 인물이 필요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현 정부 임기까지 계속 대사직을 수행할 것으로 예상됐던 한 대사가 무역협회장이 되려고 4강 대사 중에서도 가장 책임이 막중한 주미대사를 그만두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일각에선 한 대사의 사의 표명이 이달 말 퇴임한 것으로 예상되는 사공일 무역협회장의 거취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도 있다. 평소 주미 대사를 희망했던 것으로 알려진 사공 회장이 한 대사의 후임으로 가고, 한 대사는 무역협회장을 맡는 일종의 자리 맞바꾸기가 이뤄지는 것 아니냐는 얘기다.
하지만 청와대 관계자는 한 대사의 무역협회장설에 대해 "금시초문"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정부 관계자는 "설마 맞바꾸기 인사를 하겠느냐"며 "가능성이 높지 않은 얘기"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개인신상 문제로 사임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으나 정부 당국은 강하게 부인했다.
청와대 핵심 인사는 "항간에 문제가 있지 않느냐, 갈등이 있는 것 아니냐고 하는데 그런 것이 아니다"며 "한미 FTA 등 중요한 것이 끝나서 쉰다고 했고 후임자 인선 작업에도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