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워싱톤감리교회”라는 이름으로 신앙의 공동체를 이룬 것을 기념하는 주일을 맞이하여 교회의 본질을 생각하다가 지난 10월 31일, 종교개혁 494주년을 맞이하며 감리교신학대학교 신학생들이 발표한 95개 논제중 “교회에 관하여(13-40)”를 읽으며 교회의 근본을 새겨보는 시간을 갖게 되어 오늘은 이를 나눕니다.
* * * * *
13.’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막 11:17)
14. 교회는 ‘만민의’, 즉 ‘모든 사람’의 기도하는 집이어야 한다. 과연 그러한가? 오늘 한국교회는 부자들에게는 편하지만 가난한 이들에겐 불편한 곳으로 바뀌고 있다.
15. 물질적 풍요를 행복으로 인식하는 사회 현실에 부응하여 교회는 물질적 이익을 추구하는 개인과 집단의 구미에 맞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16. 교회는 양적 성장과 부흥을 위해 물질적 축복의 말씀을 선포하고, 헌금과 축복을 동일시하며, 성도의 신앙 척도를 헌금 액수로 측정한다.
17. 암묵적인 헌금 강요와 기복적인 내용만으로 채워진 오늘 부흥회는 더 이상 영적인 집회라 할 수 없다.
18. 온갖 명목의 헌금 봉투는 교인들에게 심리적 부담을 주고 있으며 특히 가난한 이들에게 신앙생활까지 포기하도록 만든다.
19. 장로와 권사 등 교회 임원직 선출의 기준이 신앙과 성품이 되어야 함에도 경제적 배경과 헌금 액수가 조건이 되고 있다.
20. 그 결과 세상에서 돈과 권력과 명예를 얻은 자라야 교회 안에서 대접도 받고 중직이 될 수 있다는 말이돈다.
21.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딤전 6:10) ‘정(定)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라’(딤전 6:17)는 사도 바울의 말씀은 무엇인가?
22. 루터는 로마 교황청을 향해,’면죄부 판매로 거둬들이는 돈이 교회의 보화가 아니라 가난한 성도가 곧 교회의 보화다’라고 하였다. 가난한 성도들이 떠나가면 교회는 더 이상 존재할 이유와 가치가 없다.
23. ‘하나님께 영광 돌린다’는 명목 하에 교회 예배당과 시설을 지나치게 화려하고 호화스럽게 치장하여 가난한 교인들에게 위압감과 소외감을 주고 있지는 않은가? 주님은 외모를 보시지 않는다.
24. 교회와 목회가 더 이상 돈과 재물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된다.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눅 6:20)
25. 또한 교회는 만민의 ‘기도하는’집이어야 한다. 그런데 오늘 한국교회는 기도보다는 ‘기도 이외’의 행사와 프로그램에 집착하고 있다.
26. 교회는 근본적인 영혼구원 사역보다 성도를 끌어 모을 수 있는 흥미 위주의 프로그램을 계획•시행하고 오직 이러한 일들에 예산을 집중하고 있다.
27. 그 결과 교인들에게 진솔한 회개와 중생, 그리고 성화에 이르는 신앙의 근본적인 체험이 사라지고 대신 육신적 쾌락과 안락을 추구하는 경향이 늘어나고 있다.
28. 예배마저도 사람의 눈과 귀와 마음을 즐겁게 하는데 초점을 맞추어 기획, 실시함으로 마치 잘 짜여진 공연을 관람하듯 예배를 구경하는 교인들이 많다. 우리 예배의 목적과 대상이 하나님인가? 사람인가?
29.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고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라(엡 4:12-15) 고백하면서도 실제로는 사람이 교회의 주인 행세를 하는 경우가 많다.
30.’한 몸의 여러 지체’(고전 12:12)로 이루어진 교회의 공교회성을 상실하고 개인이나 소수 집단에 의해 교회가 사유화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31. 일부 목회자들이 ‘이 교회는 내가 개척하여, 내가 부흥시켰다’는 생각에서 교회 재정과 관리를 독단적으로 운영하고 은퇴 후에도 지속적인 간섭과 통제를 위해 목회 세습을 추진하여 물의를 빚고 있다.
32. 교회의 목회자 청빙과 위임 과정에서 이해 당사자들 사이에 암묵적으로 금전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는 중세교회의 성직매매와 다를 바 없다.
33. 교회는 더 이상 사람의 소유가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교회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소유다.
34. 교회는 ‘하나 되게 하시는’(엡 4:3) 성령의 은총 안에서 연합하고 일치해야 한다. 교회 일치는 권고사항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명령이다.
35. 그럼에도 오늘 한국교회는 여러 교파와 교단으로 갈라지고, 나뉘어 서로 다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36. 같은 감리교단에 속해 있음에도 학연과 지연, 개인적 이해관계에 따라 줄을 서고 편을 가르고 있으니 어찌 교인과 세상을 향하여 연합과 일치의 메시지를 선포할 수 있겠는가?
37. 개인적, 집단적 이기주의로 인해 형성된 우리 안의 장벽과 장애물을 제거하지 않고는 세상을 향하여 평화와 일치를 말할 수 없다.
38. 오늘 한국교회는 1903년 원산부흥운동, 1907년 평양부흥운동에서 일어났던 영적각성과 화해를 다시 경험해야 한다. 형식적 집회가 아닌 내적인 체험으로 말이다 .
39. 진솔한 회개와 윤리적 갱신이 이루어진 후에 교인과 교인 사이, 교인과 불신자 사이, 교회와 교회 사이, 교회와 세상 사이에 화해와 일치가 이루어질 것이다.
40. 이것만이 오늘 위기에 처한 한국교회를 회복할 수 있는 길, 즉 ‘처음 사랑’을 회복하는 길이다.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계 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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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막 11:17)
14. 교회는 ‘만민의’, 즉 ‘모든 사람’의 기도하는 집이어야 한다. 과연 그러한가? 오늘 한국교회는 부자들에게는 편하지만 가난한 이들에겐 불편한 곳으로 바뀌고 있다.
15. 물질적 풍요를 행복으로 인식하는 사회 현실에 부응하여 교회는 물질적 이익을 추구하는 개인과 집단의 구미에 맞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16. 교회는 양적 성장과 부흥을 위해 물질적 축복의 말씀을 선포하고, 헌금과 축복을 동일시하며, 성도의 신앙 척도를 헌금 액수로 측정한다.
17. 암묵적인 헌금 강요와 기복적인 내용만으로 채워진 오늘 부흥회는 더 이상 영적인 집회라 할 수 없다.
18. 온갖 명목의 헌금 봉투는 교인들에게 심리적 부담을 주고 있으며 특히 가난한 이들에게 신앙생활까지 포기하도록 만든다.
19. 장로와 권사 등 교회 임원직 선출의 기준이 신앙과 성품이 되어야 함에도 경제적 배경과 헌금 액수가 조건이 되고 있다.
20. 그 결과 세상에서 돈과 권력과 명예를 얻은 자라야 교회 안에서 대접도 받고 중직이 될 수 있다는 말이돈다.
21.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딤전 6:10) ‘정(定)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라’(딤전 6:17)는 사도 바울의 말씀은 무엇인가?
22. 루터는 로마 교황청을 향해,’면죄부 판매로 거둬들이는 돈이 교회의 보화가 아니라 가난한 성도가 곧 교회의 보화다’라고 하였다. 가난한 성도들이 떠나가면 교회는 더 이상 존재할 이유와 가치가 없다.
23. ‘하나님께 영광 돌린다’는 명목 하에 교회 예배당과 시설을 지나치게 화려하고 호화스럽게 치장하여 가난한 교인들에게 위압감과 소외감을 주고 있지는 않은가? 주님은 외모를 보시지 않는다.
24. 교회와 목회가 더 이상 돈과 재물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된다.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눅 6:20)
25. 또한 교회는 만민의 ‘기도하는’집이어야 한다. 그런데 오늘 한국교회는 기도보다는 ‘기도 이외’의 행사와 프로그램에 집착하고 있다.
26. 교회는 근본적인 영혼구원 사역보다 성도를 끌어 모을 수 있는 흥미 위주의 프로그램을 계획•시행하고 오직 이러한 일들에 예산을 집중하고 있다.
27. 그 결과 교인들에게 진솔한 회개와 중생, 그리고 성화에 이르는 신앙의 근본적인 체험이 사라지고 대신 육신적 쾌락과 안락을 추구하는 경향이 늘어나고 있다.
28. 예배마저도 사람의 눈과 귀와 마음을 즐겁게 하는데 초점을 맞추어 기획, 실시함으로 마치 잘 짜여진 공연을 관람하듯 예배를 구경하는 교인들이 많다. 우리 예배의 목적과 대상이 하나님인가? 사람인가?
29.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고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라(엡 4:12-15) 고백하면서도 실제로는 사람이 교회의 주인 행세를 하는 경우가 많다.
30.’한 몸의 여러 지체’(고전 12:12)로 이루어진 교회의 공교회성을 상실하고 개인이나 소수 집단에 의해 교회가 사유화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31. 일부 목회자들이 ‘이 교회는 내가 개척하여, 내가 부흥시켰다’는 생각에서 교회 재정과 관리를 독단적으로 운영하고 은퇴 후에도 지속적인 간섭과 통제를 위해 목회 세습을 추진하여 물의를 빚고 있다.
32. 교회의 목회자 청빙과 위임 과정에서 이해 당사자들 사이에 암묵적으로 금전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는 중세교회의 성직매매와 다를 바 없다.
33. 교회는 더 이상 사람의 소유가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교회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소유다.
34. 교회는 ‘하나 되게 하시는’(엡 4:3) 성령의 은총 안에서 연합하고 일치해야 한다. 교회 일치는 권고사항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명령이다.
35. 그럼에도 오늘 한국교회는 여러 교파와 교단으로 갈라지고, 나뉘어 서로 다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36. 같은 감리교단에 속해 있음에도 학연과 지연, 개인적 이해관계에 따라 줄을 서고 편을 가르고 있으니 어찌 교인과 세상을 향하여 연합과 일치의 메시지를 선포할 수 있겠는가?
37. 개인적, 집단적 이기주의로 인해 형성된 우리 안의 장벽과 장애물을 제거하지 않고는 세상을 향하여 평화와 일치를 말할 수 없다.
38. 오늘 한국교회는 1903년 원산부흥운동, 1907년 평양부흥운동에서 일어났던 영적각성과 화해를 다시 경험해야 한다. 형식적 집회가 아닌 내적인 체험으로 말이다 .
39. 진솔한 회개와 윤리적 갱신이 이루어진 후에 교인과 교인 사이, 교인과 불신자 사이, 교회와 교회 사이, 교회와 세상 사이에 화해와 일치가 이루어질 것이다.
40. 이것만이 오늘 위기에 처한 한국교회를 회복할 수 있는 길, 즉 ‘처음 사랑’을 회복하는 길이다.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계 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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