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림 목사의 논문 “수치심으로부터의 해방”은 그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그래서 더 실감나게 다가오는 지 모르겠다.
영성의 붐 시대, 그런데 왜 또 목마를까?
그야말로 영성의 붐 시대를 살고 있는 지금. 그러나 현장에서의 은혜가 삶 까지 연결되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 신경림 목사는 영성 프로그램 효과의 지속성이 어려운 이유를 “수치심”에서 찾았다.
“영성 프로그램의 효과가 오래가지 않는 이유가 있다고 본 거에요. 영성이라면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 나와 다른 사람의 관계인데, 뭔가 막고 있는 장애물이 있을 때 그것을 제거하는 게 먼저라는 거죠. 손 붙잡고 극장에 다니고 더 많이 만난다고 관계가 회복되지 않아요.”
신 목사가 말하는 영성이란 ‘관계’에 그 핵심이 있다.
“내가 내 자신에 대해 수치스럽게 생각하면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으로부터 숨었던 것처럼 숨어요. 우리가 숨는 이유가 수치 때문에 그래요. 도둑이 제 발 저리는 것 같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있어서, 또 나와 다른 사람의 관계에 있어서 이 장애물을 제거해야 되겠다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관계, 더 나아가 영성을 막고 있는 이 장애물을 어떻게 제거해야 할까? 신 목사는 “내가 누구인가를 알게 되는 것”에서 해답을 찾았다. “내가 누구인가를 알게 되는 거에요. 내가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이 정말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믿을 수 있게 되면 자꾸 더 만나고 싶죠. 사랑하면 그래요. 왜 하나님이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못 믿을까? 자기 자신에 대한 수치심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나같은 죄인을 사랑할까? 이런 생각이 자꾸만 드는 거에요. 이런 문제에서 해방이 되어야 하는데, 어떻게 해방이 될 수 있냐하면 우리가 누구인가를 아는 것입니다.”
어떻게 우리가 누구인지 알 수 있을까? 자기를 발견하고 하나님과 자신을 막는 장애물을 체계적으로 제거할 수 있도록 논문을 통해 정리했다는 신 목사는 크게 3가지 질문을 던진다. “세상은 나를 누구라고 하나? 나는 나를 누구라 하나? 하나님은 나를 누구라고 하나?” 이 세가지 질문을 다 거치면 “이제 나는 누구인가?”라고 질문한다.
목회자 혹은 여성, 소수민족… 수치심 높아
여성들에게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나를 적어보라고 하면 당황한다. 아는 것 같은 데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대다수가 “누구 엄마, 누구 아내”라고 적어버린다. 이상적인 자화상은 뭔가? 대다수의 여성은 조신하고 여자다운 여자라고 말한다. 목회자들에게 이상적인 자화상은 ‘화내지 않는 목회자’가 많다. 화내지 않고 살 수 없으니 화를 낼 때마다 수치감이 생긴다.
“내가 생각하는 나와 이상적인 나의 갭이 클 수록 수치감을 많이 느끼게 된다”고 신 목사는 설명한다. 사회가 정하는 기준, 사회가 나에 대해 갖는 기대, 그것에 미치지 못할 때 수치감이 생긴다는 것이다.
“목회자가 전형적인 케이스에요. 사회는 완벽한 사람을 요구하는데 우리가 완벽하지 못하니까 수치심이 많이 쌓입니다. 또 하나는 마이너리티 그룹이에요. 그 사회가 정하는 스탠다드는 다수에 의해 만들어진 기준이기 때문에 마이너리티에는 안 맞게 돼 있죠. 여자, 소수민족 이런 부류의 사람들에게 수치심이 많습니다.”
인류의 원죄에서 찾은 수치심… 어떻게 극복할까?
수치심을 발견했다면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하나님은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에 집중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생각하는 나’가 ‘내가 생각하는 나’가 되고, 결국 ‘사회가 생각하는 나’가 되는 단계를 거쳐야 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 순서가 뒤바뀌어 있다.
“창세기 1장 27절 하나님 형상 대로 창조되어진 나에요. 이 이상 어떻게 더 잘 창조되겠어요. 더 이상 잘 만들어질 수 없이 잘 만들어진 것이 사람입니다. 수치감을 느낄 필요가 전혀 없죠. 두가지 예를 들어볼게요. 이브에게 뱀이 나타나서 이야기 해요. ‘저 나무의 열매를 네가 따 먹으면 하나님 같이 될 것이다. 그 말이 맞아요? 틀려요? 틀립니다. 왜 틀리냐 하면 이브는 이미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이미 하나님 같이 만들어졌어요. 그런데 그것을 믿지 않고 뱀의 말을 믿고, 그것을 먹어야만 하나님 같이 될 것으로 착각하는 거에요. 그것이 인간의 악의 근원입니다.”
신 목사의 설명에 따르면 우리 자신이 하나님 앞에 얼마나 소중한 지, 얼마나 아름답고 기가 막히게 창조되었는 지 이브가 그것을 믿었다면 뱀이 유혹했을 때 ‘사탄아 물러가라’라고 단칼에 거절했어야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자신의 귀함과 하나님의 형상됨을 불신했기 때문에 유혹에 넘어가 죄를 짓게 된 것이다.
“우리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데, 우리가 우리를 형편없이 생각하고 산다면 죄를 더 안 지을 것 같지만 절대로 그 반대에요. 자신에 대해 좋게 생각하는 사람이 죄를 훨씬 덜 짓습니다. 왜냐하면 이상한 일을 해야할 필요가 없고, 있는대로 괜찮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자신이 없는 사람일 수록 뭘 더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자기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없으면 이루기도 갖기도 힘들어요. 그래서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죄를 짓게 됩니다.”
볼리비아에도, 미국에도 통하는 ‘수치감 회복’
처음 위스콘신에서 논문을 주제로 한인교회 여성 대상 수양회를 실시했을 때의 경험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신나요. 어제랑 오늘이 어떻게 이렇게 다를 수 있어요?’라면서 40대가 된 여자분들이 깡충깡충 뛰어다니는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는 그녀.
그렇게 평가를 마치고 논문을 마감했지만, “아직까지 논문을 쓰고 있다.” 문화에 영향을 받는 과목이기 때문에 이것이 먹힐까?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영성프로그램이 러시아, 볼리비아 등지에서도 소위 ‘히트’를 쳤기 때문. 심지어 웨슬리신학교 박사과정 뿐 아니라 석사과정에서도 연락이 와 강의를 요청할 정도다. 바쁜 스케쥴로 쪼개 인텐시브(3주에 1번 토요일)로 석사 “영성 신학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미국 신학생들의 공감을 얻어내는 것을 보며 “이것이 한국인에게만 통하는 것이 아니다”를 깊이 알게 됐다.
사마리아 여인 만큼 좋은 예가 있을까?
“사마리아 여인은 수치심을 갖고 있는 전형적인 여인입니다. 당시 사회적 멸시를 받던 사마리아인이었고 여자였고 윤리적, 도덕적으로 타락해 사회의 지탄을 받는 사람이었죠. 뜨거워서 아무도 물을 기르러 오지 않는 대낮에 우물 가에 나왔다는 것은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은 피해사는 여자라는 뜻입니다.”
이런 그녀가 예수님을 만나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이제까지 숨어서 뜨거운 낮에 물길러 가야 했던 여자가 동네에 뛰어들어간다. 말도 안 섞고 살던 여자가 큰 소리로 소리친다.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라고 증거한다. 극과 극의 변화를 겪은 사마리아여인.
신 목사는 사마리아 여인에게서 수치심 극복으로 부터 오는 변화를 캐치한다. “재밌는 것은 여자에게만 변화가 일어난 것이 아니에요. 이 여자가 변하니까 이 여자를 보는 사람의 시각까지 변한 것입니다. 자신 스스로에 대한 시각이 바뀌었을 때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대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계속>
영성의 붐 시대, 그런데 왜 또 목마를까?
그야말로 영성의 붐 시대를 살고 있는 지금. 그러나 현장에서의 은혜가 삶 까지 연결되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 신경림 목사는 영성 프로그램 효과의 지속성이 어려운 이유를 “수치심”에서 찾았다.
“영성 프로그램의 효과가 오래가지 않는 이유가 있다고 본 거에요. 영성이라면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 나와 다른 사람의 관계인데, 뭔가 막고 있는 장애물이 있을 때 그것을 제거하는 게 먼저라는 거죠. 손 붙잡고 극장에 다니고 더 많이 만난다고 관계가 회복되지 않아요.”
▲박사학위 수료식에서 신경림 목사(왼쪽). | |
“내가 내 자신에 대해 수치스럽게 생각하면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으로부터 숨었던 것처럼 숨어요. 우리가 숨는 이유가 수치 때문에 그래요. 도둑이 제 발 저리는 것 같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있어서, 또 나와 다른 사람의 관계에 있어서 이 장애물을 제거해야 되겠다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관계, 더 나아가 영성을 막고 있는 이 장애물을 어떻게 제거해야 할까? 신 목사는 “내가 누구인가를 알게 되는 것”에서 해답을 찾았다. “내가 누구인가를 알게 되는 거에요. 내가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이 정말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믿을 수 있게 되면 자꾸 더 만나고 싶죠. 사랑하면 그래요. 왜 하나님이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못 믿을까? 자기 자신에 대한 수치심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나같은 죄인을 사랑할까? 이런 생각이 자꾸만 드는 거에요. 이런 문제에서 해방이 되어야 하는데, 어떻게 해방이 될 수 있냐하면 우리가 누구인가를 아는 것입니다.”
어떻게 우리가 누구인지 알 수 있을까? 자기를 발견하고 하나님과 자신을 막는 장애물을 체계적으로 제거할 수 있도록 논문을 통해 정리했다는 신 목사는 크게 3가지 질문을 던진다. “세상은 나를 누구라고 하나? 나는 나를 누구라 하나? 하나님은 나를 누구라고 하나?” 이 세가지 질문을 다 거치면 “이제 나는 누구인가?”라고 질문한다.
목회자 혹은 여성, 소수민족… 수치심 높아
여성들에게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나를 적어보라고 하면 당황한다. 아는 것 같은 데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대다수가 “누구 엄마, 누구 아내”라고 적어버린다. 이상적인 자화상은 뭔가? 대다수의 여성은 조신하고 여자다운 여자라고 말한다. 목회자들에게 이상적인 자화상은 ‘화내지 않는 목회자’가 많다. 화내지 않고 살 수 없으니 화를 낼 때마다 수치감이 생긴다.
“내가 생각하는 나와 이상적인 나의 갭이 클 수록 수치감을 많이 느끼게 된다”고 신 목사는 설명한다. 사회가 정하는 기준, 사회가 나에 대해 갖는 기대, 그것에 미치지 못할 때 수치감이 생긴다는 것이다.
“목회자가 전형적인 케이스에요. 사회는 완벽한 사람을 요구하는데 우리가 완벽하지 못하니까 수치심이 많이 쌓입니다. 또 하나는 마이너리티 그룹이에요. 그 사회가 정하는 스탠다드는 다수에 의해 만들어진 기준이기 때문에 마이너리티에는 안 맞게 돼 있죠. 여자, 소수민족 이런 부류의 사람들에게 수치심이 많습니다.”
인류의 원죄에서 찾은 수치심… 어떻게 극복할까?
수치심을 발견했다면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하나님은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에 집중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생각하는 나’가 ‘내가 생각하는 나’가 되고, 결국 ‘사회가 생각하는 나’가 되는 단계를 거쳐야 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 순서가 뒤바뀌어 있다.
“창세기 1장 27절 하나님 형상 대로 창조되어진 나에요. 이 이상 어떻게 더 잘 창조되겠어요. 더 이상 잘 만들어질 수 없이 잘 만들어진 것이 사람입니다. 수치감을 느낄 필요가 전혀 없죠. 두가지 예를 들어볼게요. 이브에게 뱀이 나타나서 이야기 해요. ‘저 나무의 열매를 네가 따 먹으면 하나님 같이 될 것이다. 그 말이 맞아요? 틀려요? 틀립니다. 왜 틀리냐 하면 이브는 이미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이미 하나님 같이 만들어졌어요. 그런데 그것을 믿지 않고 뱀의 말을 믿고, 그것을 먹어야만 하나님 같이 될 것으로 착각하는 거에요. 그것이 인간의 악의 근원입니다.”
신 목사의 설명에 따르면 우리 자신이 하나님 앞에 얼마나 소중한 지, 얼마나 아름답고 기가 막히게 창조되었는 지 이브가 그것을 믿었다면 뱀이 유혹했을 때 ‘사탄아 물러가라’라고 단칼에 거절했어야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자신의 귀함과 하나님의 형상됨을 불신했기 때문에 유혹에 넘어가 죄를 짓게 된 것이다.
“우리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데, 우리가 우리를 형편없이 생각하고 산다면 죄를 더 안 지을 것 같지만 절대로 그 반대에요. 자신에 대해 좋게 생각하는 사람이 죄를 훨씬 덜 짓습니다. 왜냐하면 이상한 일을 해야할 필요가 없고, 있는대로 괜찮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자신이 없는 사람일 수록 뭘 더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자기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없으면 이루기도 갖기도 힘들어요. 그래서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죄를 짓게 됩니다.”
▲신경림 목사. | |
처음 위스콘신에서 논문을 주제로 한인교회 여성 대상 수양회를 실시했을 때의 경험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신나요. 어제랑 오늘이 어떻게 이렇게 다를 수 있어요?’라면서 40대가 된 여자분들이 깡충깡충 뛰어다니는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는 그녀.
그렇게 평가를 마치고 논문을 마감했지만, “아직까지 논문을 쓰고 있다.” 문화에 영향을 받는 과목이기 때문에 이것이 먹힐까?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영성프로그램이 러시아, 볼리비아 등지에서도 소위 ‘히트’를 쳤기 때문. 심지어 웨슬리신학교 박사과정 뿐 아니라 석사과정에서도 연락이 와 강의를 요청할 정도다. 바쁜 스케쥴로 쪼개 인텐시브(3주에 1번 토요일)로 석사 “영성 신학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미국 신학생들의 공감을 얻어내는 것을 보며 “이것이 한국인에게만 통하는 것이 아니다”를 깊이 알게 됐다.
사마리아 여인 만큼 좋은 예가 있을까?
“사마리아 여인은 수치심을 갖고 있는 전형적인 여인입니다. 당시 사회적 멸시를 받던 사마리아인이었고 여자였고 윤리적, 도덕적으로 타락해 사회의 지탄을 받는 사람이었죠. 뜨거워서 아무도 물을 기르러 오지 않는 대낮에 우물 가에 나왔다는 것은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은 피해사는 여자라는 뜻입니다.”
이런 그녀가 예수님을 만나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이제까지 숨어서 뜨거운 낮에 물길러 가야 했던 여자가 동네에 뛰어들어간다. 말도 안 섞고 살던 여자가 큰 소리로 소리친다.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라고 증거한다. 극과 극의 변화를 겪은 사마리아여인.
신 목사는 사마리아 여인에게서 수치심 극복으로 부터 오는 변화를 캐치한다. “재밌는 것은 여자에게만 변화가 일어난 것이 아니에요. 이 여자가 변하니까 이 여자를 보는 사람의 시각까지 변한 것입니다. 자신 스스로에 대한 시각이 바뀌었을 때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대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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