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모토는 ‘제일 곤란한 길’을 골라서 걷는 것이다. 승부 결과 따위는 우리의 관심사가 아니다. 우리는 오로지 결과를 분석해서 품질을 높이고, 좀 더 안전한 자동차를 고객에게 선보일 것이다. 혼다는 보다 나은 새 차를 만들기 위해 그랑프리 대회에 출전한 것이다.” 그랑프리를 우승한 혼다의 창업자 혼다 소이치로의 자신감 넘치는 선포이다.

혼다는 우리의 시각을 사로잡는 ‘1등 기업’이 아니다. 2006년 매출액 10조1천626억 엔(약 85조원), 순이익은 6천643억 엔(약 5조 4천억 원)을 기록한 일본 2위의 자동차 업체다. 사실 혼다는 자동차와 모터사이클 외에 전력용 발전기와 모터보트도 생산한다. 이 가운데 자타가 공인하는 혼다의 ‘자랑’이라면 모터사이클이다. 모터사이클에선 911만 대(2003년)를 팔아 부동의 세계 1위를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혼다는 양보다는 질로 따져봐야 비로소 진가를 드러낸다. 특히 ‘엔진의 혼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혼다의 엔진 기술은 유명하다.

그렇다면 혼다의 엔진 기술은 얼마나 대단한 것일까? 혼다는 자동차 레이싱의 최고봉인 포뮬러1(F1)에서 일본 자동차 업체로는 최초로 우승을 거머쥐었다. 혼다는 창업할 때부터 레이싱에 승부를 걸었다. 혼다는 뿌리부터 도전적인 자동차 기업인 셈이다. 창업주 혼다 소이치로(本田 宗一郞) 회장은 1946년 내연기관에 대해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했고, 1959년에 혼다 오토바이를 당시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던 TT 레이스에 내보냈다. 그리고 출전 3년 만인 1961년 1등에서 5등까지를 휩쓸어버렸다. 세계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1964년 독일 F1 그랑프리 출전을 선언한다. 혼다의 첫 번째 자동차인 S500이 양산에 들어간 지 1년밖에 안 된 시점. 그것은 분명 무모하기 짝이 없는 짓이었다. 1964년 독일 그랑프리 대회에서는 페라리, 로터스, 포르쉐 등 그 이름만으로도 기가 질릴 레이싱 카들이 총 출동했다. 물론 혼다는 레이스를 완주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1년 뒤, 혼다는 그랑프리를 따내고야 말았다.

혼다는 밑바닥에서 시작한 기업이다. 혼다의 창업자 혼다 소이치로(本田宗一郞, 1906∼1991)는 일본인들이 가장 존경하고, 본받고 싶어 하는 신화적인 인물이다. 그는 1906년 일본 중부지역인 시즈오카 현 하마마츠(浜松) 시의 작은 마을에서 대장장이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1929년 직원 한 사람과 함께 아트상회 분점을 내고 독립한다. 이것이 오늘날 혼다의 모체다. 그리고 일본이 패전하고 3년 후인 1948년 9월 하마마츠에서 자본금 100만 엔으로 오토바이(모터사이클)를 만드는‘혼다기켄코쿄(本田技硏工業)’를 설립한다.

이것이 본격적인 혼다의 시작이다. 이미 그는 자전거에 발전기 엔진을 단 동력 자전거를 개발, 주목을 받았다. 당시 대부분 일본 업체들이 미국, 영국 등 외국회사와 합작으로 자동차, 오토바이를 만들고 있었으나 소이치로는 독자기술을 고집했다. 그의 학력은 초등학교 졸업이 전부였지만 기술에 대한 집념으로 이를 극복, 어떤 기술자보다도 높은 지식을 갖고 있었다. 창업 후 일본 최초의 본격적인 오토바이 ‘드림’에 이어 혼다의 대명사가 된 소형 오토바이 ‘슈퍼카브’를 개발, 급성장했다.

자동차 사업은 오토바이 기술을 바탕으로 1962년 처음 시작했다. 1967년 첫 출시 후 20개월 동안 20만 대가 팔리는 성공을 거두면서 혼다는 후발 자동차업체 가운데 주목받는 기린아로 등장한다. 그 후 1971년에는 경차 ‘라이프’, 1972년에는 그 유명한 소형차 '시빅(Civic)'을 내놓아 세계적인 자동차 업체로 발돋움한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혼다에선 이공계 출신이 아니면 사장이 될 수 없다는 게 불문율”이라며 “일본에 기술 중시 기업은 많지만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내는 면에선 혼다를 따라올 기업을 찾기 어렵다”고 말한다. 혼다 소이치로는 일본에서 가장 존경 받는 경영자로 꼽힌다. 2003년 니혼게이자이 신문이 조사한 '가장 존경할 만한 일본의 경영자'에서 소이치로는 마쓰시타 전기의 창업자 마쓰시타 고노스케(松下幸之助)와 더불어 공동 1위에 올랐다.

기술밖에 몰랐던 소이치로 소이치로는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잠자는 것도 잊어버렸다고 한다. 모든 일을 잊어버리고 오로지 연구에만 열중했다. 40대까지만 해도 3일 밤낮을 먹고 자는 것을 잊어버리고 연구에 몰두했다. “엔진을 생각하면 머릿속에서 엔진이 돌아가 멈추지 않았다. 그래서 잠을 잘 수 없었다.” 그는 정규 학력은 짧았지만 엔진 설계에 관한 한 최고의 기술자로 꼽혔다. 엔진 설계를 한눈에 문제점을 파악할 정도로 직감력도 대단했다. 소이치로의 인생은 전설처럼 살면서 수많은 일화를 만들어 냈다. 창업자답게 지칠 줄 모르는 불굴의 기업가 정신으로 거대 기업을 키워 냈다. 소이치로는 기술에, 열성을 바친 사람이었다 일에 대한 열정은 밤낮을 가리지 않았고 한번 일에 매달리면 만사를 제쳐두고 끝을 보는 성격이었다. 그러한 성격이 남들이 피하는 제일 곤란한 길만을 갈수 있게 했고, 그 곤란한 길이 그에게는 남들이 흉내낼 수없는 전설같은 성공의 길이 되었다. 누구도 흉내 못낼 성공의 길은 아무나 갈 수 없는 불가능한 길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전설이 된다.

하나님의 사람은 믿음의 길을 가는 사람이요 믿음의 길을 가는 사람은 남이 못가는 길을 갈 수 있고 가야 하는 사람이다. 믿음의 길을 가는 사람은 전능하신 하나님이 내주하시는 삶이요 하나님이 행하시는 삶이기에 인간적인 눈에는 전설같이 보이는 삶인 것이다.